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94) 장제스





장제스, 쑹메이링 모친 설득하러 류지원과 도쿄행

쑨원 사망 7개월 후인 1925년 10월, 장제스는 국민혁명군을 이끌고 광둥(廣東)을 통일했다. 장제스가 광저우(廣州)에 입성하는 날, 정부 요원들은 일렬로 서서 38세의 개선장군을 맞이했다. 신문들마다 정경을 상세히 보도했다. “가장 젊은 혁명영수의 탄생을 보며 다들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열릴 것 같지 않은 꽉 다문 입, 앞을 응시하는 두 눈, 세상의 부귀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자태에 입을 헤 벌린 원로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듬해 1월, 광저우에서 국민당 제2차 대표자대회가 열렸다. 상황은 2년 전 1차 대회 때와 달랐다. 1차 대회 때 입장권도 받지 못했던 장제스는 중앙집행위원 선거에서 249표 중 248표를 획득했다.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한 100여 명의 공산당원들도 장제스에게 몰표를 던졌다. 반대표 1표에 관심이 쏠렸다. 여기저기서 “장제스가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술렁거렸다. 1표의 위력은 엄청났다. 248표가 249표보다 더 강해 보였다.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는 중앙 상무위원까지 꿰찬 장제스를 북벌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245표를 얻어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된 쑹칭링도 장제스의 공로를 인정했다. “그간 우리는 정치와 군사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선생이 생존해 있을 때보다 형편이 더 좋아졌다.” 여기서 선생은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쑨원을 의미했다. 정치와 집안일은 별개였다. 장제스가 동생 쑹메이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었다.



1926년 7월, 북벌전쟁의 막이 올랐다. 농민과 노동자의 지지를 등에 업은 장제스의 북벌군은 파죽지세로 군벌들을 제압했다. 장제스의 야심과 군사력에 위협을 느낀 국민당 중앙당은 우한(武漢)으로 천도(遷都)했지만 장제스는 난징(南京)을 고집했다. 군사위원회 주석, 중앙당 조직부장, 군인부장,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중앙 상무위원회 주석 등 요직이란 요직은 다 차지하자 쑨원이 추진했던 공산당과의 연합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쑹칭링을 비롯한 국민당 좌파도 공산당과 한통속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밀결사들을 부추겨 반공사건들을 한두 개씩 일으켜봤다. 효과가 있었다.







전선에서 북벌전쟁을 지휘하던 장제스는 틈만 나면 상하이로 달려와 쑹씨 집안의 맏딸 쑹아이링에게 매달렸다. 쑹아이링은 세상 보는 눈이 남달랐다. 동생 메이링 설득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네 형부들은 큰소리나 칠 줄 알았지, 장제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 매한가지다. 누가 뭐래도 앞으로는 장제스의 천하다.”



쑹메이링도 공감했다. 머리가 맑아졌다. 온갖 계산 다하며 만나던 남자가 형부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쑹메이링은 큰언니에게 가족들을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다.



엄마 몰래 가족 회의가 열렸다. 작은 언니 쑹칭링은 장제스를 여전히 싫어했다. 들을 필요도 없다며 자리를 차고 나가버렸다. 오빠 쑹즈원도 장제스라면 질색이었다. “워낙 투기성이 강한 사람이라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앞날이 불투명하다. 게다가 건달 출신이다. 남편감은 류지원 같은 사람이 좋다.”



쑹즈원과 류지원은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쑹메이링도 이제는 꿈만 좇는 소녀가 아니었다. 바야흐로 난세(亂世)였다. 류지원 같은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국민정부 재정부장 쑹즈원은 한동안 비밀결사들의 협박에 시달렸다. 무릎을 꿇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류지원은 신사였다. 파혼을 요구하자 순순히 응했다.



쑹메이링은 큰언니를 통해 장제스에게 결혼조건을 제시했다. “부부는 신앙이 같아야 한다. 우리 집안은 모두가 기독교를 신봉한다.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가 돼라. 남자는 한 여자에게 예속돼야 한다. 부인과 정식으로 이혼하고 여자관계를 깨끗이 정리해라. 결혼한 후에 장제스의 개인비서 자격으로 대외활동을 하겠다. 공직을 권하지 마라.” 장제스는 무조건 수락하고 전쟁터로 나갔다.



1927년 3월 26일 밤, 쑹메이링의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다과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쑹메이링은 말끔한 군복을 입고 나타난 장제스의 청혼을 수락하며 세 가지를 부탁했다. “류지원을 건드리지 마라. 해외에서 편안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백만 불 정도면 된다. 어떻게 된 사람이 엄마가 싫어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직접 설득해라.”



역시 장제스였다. “류지원은 인재다. 국내에서 할 일이 많다. 돈푼이나 집어주며 해외로 나가라는 것은 모욕이다. 엄마는 내게 맡겨라.”

이튿날 장제스는 류지원을 찾아갔다. “우리 두 사람은 무슨 놈의 인연인지 모르겠다. 모든 걸 운명으로 생각하자. 메이링보다 더 훌륭한 여자를 내가 직접 구해주마. 내 결혼식 날 들러리를 서주기 바란다. 네 결혼식에는 내가 들러리를 서겠다. 메이링 엄마가 나 만나기 싫다며 일본으로 가버렸다. 결혼 승낙 받으러 갈 때 같이 가자.” (계속)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