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분수대] 노약자석 노인들은 그곳에 가시라는 무언의 압력 ? 차라리 노약자석을 없애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서울 갈 일이 생겼다. 추운데 차 끌고 가기 귀찮아 여러 번을 갈아타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앉아 가는 비법. 노약자석 표시 없는 곳에 줄 서기다. 벌써 다들 아는지 오늘은 그 줄이 제일 길다. 잽싸게 몸을 움직여 일반석에 앉았다.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한 귀퉁이에 있는 노약자석은 일반석보다 더 붐빈다. 낮 시간이니 병원에라도 다녀오시는지 서너 분이 좌석 옆에 붙은 봉을 붙잡고 서 계셨다. 서신 분이나 앉은 분이나 내 눈에는 연세가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그분들 나름 자리 양보도 하시고 고맙단 인사도 나누시고 하신다.



 궁금한 게 있다. 일반석에는 노인이 없던데, 노인들은 노약자석으로 가야 하나.



 언젠가 들은 얘기다. 어떤 어르신 말씀. 일반석으로 가면 요즘은 자리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눈들을 내리깔고는 ‘노약자석으로 가시지 왜 이곳으로 오셨느냐’는 듯 언짢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젊은이들이 치사하고 밉살스러워서 차라리 노인끼리 뭉쳐 서 있는 게 맘이 편하단다. 이에 젊은이의 변명.



 ‘시간 조절을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출퇴근 시간은 피해주시면 서로가 편할 터인데. 죽어라 일하고 퇴근길엔 너무 힘들다. 자리 양보 못하고 눈감고 앉아 있는 맘은 편하겠는가’ 하던데. 40대 초반의 한 주부는 몸이 안 좋아 노약자석에 앉았는데 등산복 차림의 한 아주머니가 일어나라고 했단다. 등산 가실 기력이 있으시면 더 이상 노인도 아니실 터인데 ‘여긴 노약자석’이라면서. 변명하기 치사해 아픈 몸을 이끌며 자리를 비켰노라 하던데.



 그런데 오늘, 노약자석에 오밀조밀 모여 계신 노인들을 뵈니 ‘노인 우대’가 아닌 ‘노인 차별’이란 느낌이 든다. ‘지하철 속 외딴 섬’ 같다.



 지난해인가. 지하철 성추행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자 여성 전용 칸을 만들자는 안이 있었다. 여자들이 극구 반대했다. 한 칸에 몰아넣는 행위 자체가 차별이고 ‘여성은 여성 전용 칸으로 가라’는 무언의 압력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약자석과 같은 처지로.



 어느 칸이든 성추행은 막아야 맞는 거다. 마찬가지로 노약자에겐 어느 자리든 양보해야 맞는 거다. 노약자석을 지정해 놓으니 나머지가 다 젊은 사람용이 돼버렸다.



 노약자석이 노약자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간혹 그곳에 젊은 사람이 앉았다면 그 사람은 아픈 사람일 게다. 오죽 힘들면 그랬을까. 내 딸이나 손자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자. 노인들도 노약자석은 다 찼는데 몸이 힘들 때는 일반석으로 가시고, 또 젊은 사람들은 양보를 좀 하자. 하지만 당당하게 일어나라고 요구하는 건, 또 아니다. ‘속으론 당당해도 겉으론 겸손하게’ 양보 받으시라.



 어쩌면 노약자석 없애는 게 노인을 우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벌써 서울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