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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공작단 ‘스타게이트’ 해체한 정보 수장

현재 전 세계 114개국이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큰 나라는 국내 방첩, 대외 공작, 군사 정보 등 세 갈래로 나눠 기관 상호 간 경쟁을 유도하며 관리한다. 근대 정보기관의 시조는 1909년 창설된 영국 비밀정보청(SIS, 속칭 MI 6)이다.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은 세계 각지에서 많은 식민지를 경영했으므로 해외정보 수집과 공작에 능했다. 러시아는 공산혁명 후 반혁명분자(실제로는 파워게임에서 밀린 세력) 색출과 처단을 위해 국가특수위원회(Cheka)-국가정보처(OGPU)-내무인민위원회(NKVD) 등을 차례로 운영했다. 그러다 공산주의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국가보안위원회(KGB)를 만들어 세계를 상대로 공작을 벌였다. 소련 붕괴 후 KGB는 연방보안국(FSB)과 대외정보국(SVR)으로 개편됐다. 한때 중동·아프리카 지역 식민지를 거느렸던 프랑스도 국방부 산하에 대외안보총국(DGSE)을 두고 있다. 독일 연방정보처(BND), 중국 국가안전부(MSS),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등도 대외정보활동을 벌인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가장 효율적인 공작 역량으로 정평이 있다. 그러나 모사드는 이스라엘 한 나라의 안보만을 위해 활동한다. 따라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움직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인원·예산, 그리고 활동 범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보기관이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미 CIA 국장 지낸 화학자 존 도이치

이민자로 첫 국장…여성·소수민족 요원 늘려
CIA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인 1947년 창설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시 첩보기관이었던 전략사무국(OSS)을 확대, 개편한 것이다. CIA는 냉전 초기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얼마 전 혼외정사 추문으로 사임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을 포함해 모두 22명의 CIA 국장이 재임했다. 대체로 군부 인사가 많았지만 정치인·학자·변호사 출신도 적지 않다. 역대 CIA 국장 중 유대계 인사는 두 명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재임한 9대 국장 제임스 슐레진저는 오스트리아-리투아니아계 유대인이다. 다른 한 명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임명된 17대 CIA 총수 존 도이치(사진)다.

도이치는 1938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유대인 가계다. 유럽 유대인 박해 와중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45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공계 분야에 흥미가 있었던 도이치는 애머스트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이어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7년 에너지부 발족을 계기로 정부에 몸담았고 오랫동안 주로 연구 분야에서 일했다. 94~95년간 국방차관을 지냈다. 95년 5월 클린턴 대통령은 군축 전문가인 제임스 울시의 후임으로 각료급으로 격상된 CIA 국장직을 도이치에게 제의했다. 그는 이 자리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란 점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국장직을 받아들였다. 당대 미국 이민자 최초의 CIA 국장이 나온 것이다.

도이치는 재임 중 몇 가지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우선 요원의 구성을 다양화했다. 창립 초기부터 CIA 상층부는 예일대 등 미국 명문사학군인 아이비리그 출신이 장악해 왔다. 그는 신규 요원 충원 때 여성과 소수민족의 비중을 늘렸다. 또한 냉전시대 CIA가 수행한 비밀공작문서의 비밀 해제와 공개를 추진했다. 그리고 냉전 종식 후 달라진 국제 환경에 대응하는 정보기관의 새로운 활동 방향을 설정했다. CIA 업무목표를 정치공작에서 경제·산업·첨단과학정보 중심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시대적 요청이긴 했지만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다. 또한 CIA가 72~96년 비밀리에 운영해온 초능력자 공작단, 일명 ‘스타게이트’를 해체시켰다. 과학자인 그의 시각에서 볼 때 원거리 투시능력자, 최면술사 등이 수행하는 비과학적 비밀공작은 적중도가 극히 미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도이치를 괴롭힌 몇 가지 사건도 있었다. 루마니아 주재 CIA 거점장을 지낸 해럴드 니컬슨이 10년간 소련에 CIA 기밀을 넘긴 사건이다. 니컬슨은 정보기관이 가장 극비리에 관리하는 공작원 명단까지 소련에 넘겼다. 또한 전직 마약담당 형사 마이클 루퍼트가 CIA의 마약밀매 연루설을 폭로한 일도 있었다. 86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CIA는 니카라과 반군 지원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미국 내 마약밀매를 묵인했으며 이 마약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흑인들에게 집중 공급됐다는 주장이다. 도이치는 96년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이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정보 수집을 위해선 부정과 비리를 감수하고 좋지 않은 자들과도 접촉할 수 있다”고 말했다.

CIA 주특기 하루아침에 바꾸려다 무리수
도이치는 96년 12월 사임했다. 퇴임 후 중대한 보안규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클린턴이 퇴임 직전 시행한 특별사면에서 구제됐다.
공직을 마친 뒤 그는 씨티그룹, 방산업체 레이시온 등 대기업의 이사를 맡고 있다. 또한 유럽·북미·아시아 지역 파워 엘리트의 모임인 삼극위원회(TC)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화학자 도이치는 세계 최대 정보기관의 수장을 맡으면서 냉전 종식 후 정보기관의 중점사업을 경제·금융·산업·통상·에너지 등 분야로 바꾸는 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정치·군사 공작에 길들여진 CIA가 하루아침에 주특기를 바꾸는 건 무리였다. 클린턴의 전적인 신임이 있었지만 그는 항상 내부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CIA는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친미세력을 육성하고 강화하거나 미국 국익에 반하면 우방 지도자도 정변으로 바꾸는 등의 정치 공작을 주로 수행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업무를 돌연 수행하는 데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결국 도이치는 정보기관의 체제전환기에 재임하면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CIA 국장이란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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