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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파멸시킨 순결함의 상징 먼로, 신화가 되다

1, 2 피렌체의 페라가모 본점의 쇼윈도. 뮤지엄은 같은 건물 지하에 있다.
메릴린 먼로는 남성에 의해, 남성을 위해 창조된 여성의 이미지로서 자신이 육체적·물질적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에 갈등을 느꼈지만 곧 남성의 욕망을 최대한 이용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관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먼로는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시대의 비밀을 간직한 불멸의 전설로 남았다. 올해 사망 50주년을 기념해 그녀를 추모하는 전시가 이탈리아 곳곳에서 열렸다.

그녀의 극단적 정신세계 드러낸 흑백 의상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6월 20일~2013년 1월 28일)는 색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해석했다. 즉 영화 촬영이나 일상생활, 그리고 각종 공식석상에서 먼로가 직접 사용했던 손때 묻은 물건을 중심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타 가르보 등 할리우드의 다른 디바들이 신었던 페라가모의 역사적인 구두들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면 메릴린 먼로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첫 번째 방은 사방이 먼로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그녀가 남긴 짧은 말들로 가득했다. 가운데 천장에는 현대미술가 파올로 카네바리가 만든 작은 거울 조각으로 뒤덮인 폭탄이 매달려 빛을 반사하며 빙빙 돌고 있었다. 이 작품은 미군부대 콘서트에서 먼로가 입었던 드레스를 연상시키면서 폭력시대의 상징인 핵폭발의 이미지도 암시하고 있다. 먼로의 섹시한 이미지를 착취한 것이 할리우드나 광고계뿐 아니라 국가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미국 정부는 먼로를 이용해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승리에 도취한 미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과시하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그녀의 여성성은 권력에 의해 이용됐다.

3 1962년 8월 5일 메릴린 먼로가 숨진 채로 발견된 LA 자택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4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복제본(1865)과 알렉산더 두상의 로마시대 복제본 사이에 놓여 비교된 메릴린 먼로의 흑백사진.5 체사레 단디니의 클레오파드라(오른쪽)와 함께 걸린 누드화.
두 번째 코너는 먼로가 취했던 모든 제스처와 포즈, 표정을 고전미술 속 여성성의 신화와 현대 팝아트 아이콘의 측면에서 비교해 보는 자리였다.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상과 죽어가는 알렉산더의 두상 사이에 걸려 있는 먼로의 흑백사진은 영국 사진작가 세실 비튼이 1959년 촬영한 것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가 느껴졌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체사레 단디니의 ‘클레오파트라’, 이브 클랭의 ‘청색 비너스’와 같은 미술 작품과 비교되면서 그녀의 비극적 결말은 사랑을 위해, 또는 권력의 암투 속에서 죽어간 고대 여인들의 운명과 자연스레 연결됐다. 결국 이 전시의 핵심은 육체적 욕망을 일으키는 세속적 비너스가 아닌 고대의 신성한 비너스로서 먼로를 해석하고자 한 데 있었다.

20세기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였던 만큼 유명 사진작가들의 대표작들을 통해 인생 경로를 따라가는 코너가 이어졌다. 세실 비튼, 버트 스턴, 조지 배리스, 밀튼 그린 등이 포착한 사진들은 먼로가 왜 신화가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공간에는 먼로가 1950년 중반부터 죽기 전까지 착용했던 페라가모의 구두 20켤레도 함께 전시됐다. 모두 페라가모 뮤지엄 소장품으로, 대부분 199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먼로의 소지품을 경매할 때 낙찰받은 것들이다.
이어지는 코너는 먼로가 사적인 자리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모아놓았다. 검은색과 흰색 옷이 대부분이었다. 흑백으로 된 그녀의 옷장은 마치 부정과 긍정, 어둠과 밝음을 오가는 먼로의 극단적인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6 안토니오 카노바의 작품 ‘잠자는 요정’복사본(1822).
매디슨 스퀘어 가든 파티에 참석해 존 F 케네디에게 “생일 축하합니다, 대통령님”이라며 축가를 불렀던 먼로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문서 자료와 필름 클립, 그녀가 입었던 상징적인 드레스 복제품은 정치판과 막 접속한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섹션에 이어지는 흰색 방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먼로의 마지막 모습이 발견된 듯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방 안 뒤 벽에는 그녀가 세상을 뜨기 몇 주 전 버트 스턴이 찍었던 흑백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60년대 스타일의 TV에서는 먼로가 죽고 난 뒤 영화감독 파졸리니가 제작한 짧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파졸리니는 “먼로는 어리석은 고대세계와 흉포한 미래세계가 아름다움을 향해 품었던 탐욕으로 인해 파멸된 순결함의 상징”이라고 아쉬워했다.

먼로의 얼굴을 커버로 내세운 각종 잡지로 장식된 액자의 복도를 지나면 영화 속 유명 장면을 재연한 마지막 코너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에서 지하철 환기구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을 잡는 장면을 연기할 때 입었던 흰 드레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에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최고 친구’라는 노래를 부를 때 입었던 분홍색 원피스 등이 다시금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잔주름·수술자국 선명한 사진들
이에 앞서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바르드 요새에서는 ‘더 라스트 시팅(The Last Sitting)’ 전시(6월 9일~11월 4일)가 열렸다. 1962년 6월 말, 먼로가 죽기 약 6주 전 사진작가 버트 스턴이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의뢰로 찍은 그녀의 모습 60여 점이다. 당시 약속시간보다 5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먼로는 화장 없이 나체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스턴의 요구에 응했고, 이 둘은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너무 대담하다는 이유로 잡지에 실리지 못했고, 스턴은 어쩔 수 없이 화장하고 옷을 입은 그녀를 다시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사진이 실린 보그 잡지가 발행되기 바로 전날, 그녀는 숨진 채 발견됐다. 먼로 사망 직후 발행된 보그 잡지에 먼로의 사진은 8개 면이 나왔고, 82년이 돼서야 그녀의 누드 사진이 같은 잡지에 12개 면에 걸쳐 실렸다.

스턴은 두 번의 촬영이 진행된 3일 동안 총 2571장을 찍었다. 붉은 잉크로 X 표시가 된 사진들은 먼로가 직접 표시한 삭제 표시다. 눈가의 잔주름이나 사진 촬영이 있기 몇 주 전 받은 오른쪽 옆구리 쓸개 수술 자국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면모를 느끼게 했다.

피렌체·바르드 요새(이탈리아) 사진 살바토레 페라가모 뮤지엄·‘라스트 시팅’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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