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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절벽’이 눈앞에 보이는데…

미국은 재정절벽 앞에 서서 경기부양이냐 재정건전성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재정지출을 감축하고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감축한다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고, 오바마식(式) 부자증세를 강도 높게 추진하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 기반이 약화될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무역적자와 더불어 치유하기 어려운 쌍둥이 적자라고 인식돼 왔으나,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적자가 해소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진 덕이었다. 중국은 재정적자보다 금융부문 부실이 걱정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은행들이 별 탈 없이 굴러가는 이유는 고도성장을 계속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달리는 자전거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는 진리가 국가경제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최악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지고 있는 일본도 1990년대 초까지 재정건전성에 별문제가 없던 나라였다. 그러다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재정적자가 누적돼 지금은 국가 예산의 60%를 차입금으로 조달해야 하는 취약한 구조로 빠져들고 말았다. 거의 1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정치적 불안정 구조 속에서 선거를 치르기 바빴던 일본 정치인들이 증세를 금기시하고 선심 공약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저성장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생긴 문제였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진보주의 폴리페서들이나 정치인들은 보편적 복지가 경제 활력을 높여주고 민간 소비를 증가시켜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은 모든 경제 현상이 갖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보지 못하고 한쪽만 바라보는 이념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편적 복지 확대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시켜 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겠지만 국가 부채 증가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를 수반한다. 시장 경쟁원리 확대가 양극화를 초래해 정치적 긴장을 불러오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경제의 역사는 인간의 창의적 노력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준다. 사회적 복지는 성장 주도 역할이 아니라 자유 경쟁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 그친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유럽·중국·일본 등 세계경제의 기본 축이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이명박 정부 5년간 연평균 3% 수준의 저성장을 겪어야 했고, 이런 추세가 앞으로 5년간 더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성장절벽(Growth Cliff)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성장이냐 복지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좀 더 긴 눈으로 성장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것인지, 아니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겠다고 복지 확대에 주력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저성장은 기업의 투자 의욕은 물론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약화시키고 재정의 성장 추진 능력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체력이 약화되면 없던 병이 자꾸 생기는 것처럼 저성장의 절벽에 부딪히면 평소에 잘 돌아가던 경제가 악순환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런 성장절벽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15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시절처럼 피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결정하는 3대 요소인 노동·자본·기술의 증가를 뒷받침하는 데 복지 정책과 경제민주화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 공급 확대를 위해선 반값등록금에 매달리기보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취업능력을 높여주는 기술교육과 직업훈련 기회를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우수한 인력은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증을 치유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대기업 취직 못지않는 자기 발전 기회가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기업 투자 의욕을 약화시키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 입지 규제, 세무조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경직적 구조가 되고 있는 정규직의 과보호와 비정규직 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술혁신은 정부가 법석을 떤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정하고 자율적인 경쟁 풍토에서 가능한 것이다.

보름밖에 남지 않은 대선 기간 중 이런 성장절벽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돼 차기 정권 탄생 후 우리 국민의 경제위기 대응능력이 다시 한번 결집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강봉균 군산사범학교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행시 6회(1969년). 관료 생활 31년 동안 정보통신부·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3선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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