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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트위드 재킷 사진전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인 세라 제시카 파커, 영화 ‘스파이더맨’의 히로인 커스틴 던스트, 모나코 공주 샬롯 카사라기,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 전시장에 걸린 인물들의 명성이 하나같이 쟁쟁하다. 국내 인물로는 유일하게 배우 송혜교도 있다. 파리 에이전시에 이미 등록돼 있던 그를 카를 라거펠트가 단박에 낙점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관전 포인트는 그들의 얼굴이나 몸이 아니다. 입고 있는 재킷이다. “108명이 입고 있는 재킷이 모두 똑같은 것입니다. 이 전시를 위해 만들었죠. 그런데 입는 이에 따라, 입는 방식에 따라 정말 신기하게 달라집니다.” 전시를 준비한 샤넬 측의 설명이다.
과장은 아니었다. ‘한 가지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옷’을 만들겠다던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패션 철학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일까. 자세히 보지 않고는 108벌이 제각각처럼 느껴진다. 귀부인같이 보이는 재킷과 스커트 정장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둘러 대조를 보이는가 하면(배우 클라우디아 시퍼) 청 데님 셔츠에 해진 쇼트 팬츠를 입고 그 위에 재킷을 걸쳐 발랄함을 내세운다(배우 알렉사 청). 만삭이 된 임신부는 짝 달라붙는 탱크톱 위에 재킷을 짝짓고(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 수녀복·히잡과 어우러진 재킷은 특정 직업·종교와 조우하는 매개체가 된다. 또 브래지어와 팬티, 목욕 가운 위에 재킷을 걸친 모델을 보자면 농염하기까지 하다. 모두 ‘반전’에 가까운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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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코코 샤넬은 이런 말을 남겼나 보다. “유행은 퇴색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Fashion fades, only style remains the same).”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샤넬의 아이콘
전시의 주인공인 트위드 재킷은 넘버5 향수, 퀼팅백, 리틀 블랙 드레스 등과 함께 샤넬을 대표하는 아이템이다. 1953년 70세의 나이로 현업에 복귀한 샤넬(2차대전으로 부티크의 문을 닫았었다)은 브랜드의 정수가 될 만한 제품으로 이 트위드 재킷을 디자인했다. 다른 샤넬의 아이콘들처럼 재킷 역시 혁명에 가까웠다. 일단 소재 자체가 여성복에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주로 두꺼운 방한용 코트나 모자에 이용됐던 것이다.
또 재킷의 실루엣 역시 당시 유행과 크게 차이가 났다. 1950년대에는 상체와 허리를 꽉 조이는 ‘뉴룩’ 스타일이 대세였다. 하지만 그는 일자형 라인에 품이 넉넉한 재킷을 고안해 냈다. 여성의 움직임에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칼라도 없애고 둥근 목선을 그대로 살렸다. 또 앞면의 여밈과 밑단을 금속 실로 감싸 포인트를 주었다.
양쪽에 만든 주머니를 통해서는 두 손을 찔러 넣었을 때 표현될 수 있는 여성의 당당함까지 연출해 냈다. 샤넬의 자서전을 쓴 저스틴 피카르디는 이 재킷을 이렇게 묘사했다. “디자이너가 여성성은 유지시키면서도 은근한 권위로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옷”이라고.
카를 라거펠트 역시 1983년 샤넬의 수장이 된 이래 트위드 재킷에 대해 끊임없이 공을 들였다. 페이턴트·데님·시퀸 등을 이용한 변주가 시즌마다 소개됐다. 진주·흑백·더블로고와 더불어 끊임없이 재창조가 가능한 디자이너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줬다. 그리고 이번엔 옷이 아닌 사진으로 그 변화무쌍함을 선보이고 있다. 마치 ‘청바지, 흰 셔츠, 샤넬 재킷은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던 마담 샤넬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