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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 행복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20여 년간의 추방과 망명생활 속에서도 강렬한 휴머니즘과 인도주의적 세계관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도 그랬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잠자는 아이 옆에 누우니 젖내가 확 풍겨왔다. 아, 그것은 내 인생을 스쳐간 천사의 미소였다. 청소년판이나 축약본이 아닌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레미제라블(Les Mis<00E9>rables)』을 처음 읽은 것은 작은아이가 태어나던 해 이맘때였다. 세 권을 합쳐 16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다 읽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했지만, 머릿속은 이상할 정도로 맑아졌다. 미리엘 주교를 소개하는 첫 대목부터 내 정수리를 아주 세게 내리쳤으니까.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5>『레미제라블』과 빅토르 위고

“세상에는 황금을 파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교는 연민을 끌어내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온 세계의 비참은 그의 광산이었다. 가는 곳곳에 고뇌가 있다는 것은 항상 선의를 베풀 기회가 있다는 말이었다. ‘서로 사랑하라’. 그는 이 말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알고,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사랑? 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그 무렵의 화두는 세계화와 국가 경쟁력이었고, 나 역시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달리고 있었다. 개인의 미래는 자기 스스로 개척해야지, 그럴 수 없으면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마들렌 시장이 된 장발장이 이런 내 생각에 비수를 꼽았다.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쐐기풀은 유용하게 쓰이지만, 내버려두면 해로운 것이 되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뽑아서 말려 죽여버리는 거요. 인간도 이렇게 쐐기풀같이 되는 사람이 많소! 명심하시오. 이 세상에는 나쁜 풀도 없고 나쁜 인간도 없소. 가꾸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이 있을 뿐이오.”
『레미제라블』을 읽다 보면 이처럼 삶의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온 문장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불러 세운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큰 줄거리다.

빅토르 위고는 1845년 집필을 시작하면서 이 작품은 어느 성자(聖者)의 이야기, 어느 사나이의 이야기, 어느 여인의 이야기, 어느 인형의 이야기로 할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미리엘 주교와 장발장, 팡틴, 코제트인 셈이다. 여기에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장발장을 집요하게 뒤쫓는 형사 자베르, 사랑과 우정에 온몸을 바치는 열혈 청년 마리우스, 돈만을 추구하는 잔인한 악당 테나르디외 부부 같은 온갖 인간 군상이 프랑스 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다음은 언제 읽어도 명징하게 와닿는 몇 구절이다. “내 형제인 장발장이여,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산 것이오.” “인생 최고의 행복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무서운 계절, 겨울은 허공의 수분과 인간의 마음을 돌로 만든다.” “동굴 속을 잘 모르는 인간이 진정 산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양심의 각성, 그것은 영혼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 이외의 것을 잊게 만드는 맹렬한 불길이다.” “진보란 무엇인가? 민중의 영원한 생명이다.” “소음은 술 취한 사람을 깨어나게 하지 않지만 정적은 그를 눈뜨게 한다.”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신에 대해 부당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오.”

위고는 집필을 시작한 지 16년 만인 1861년 6월 30일 『레미제라블』을 완성하고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창문 너머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침내 끝냈다네. 이제 죽어도 좋아.” 그러나 교정과 퇴고작업에 1년이 더 걸려 출간은 다음해에 이뤄졌다. 분량이 엄청난 만큼 줄거리와 관련 없는 내용도 꽤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가령 워털루 대회전을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에서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운명을 향해 외치는 독백이 나온다. “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걸.” 장발장이 코제트를 데리고 숨어들어간 수도원에서는 백 살 먹은 여인이 포도주를 따른 네 개의 은잔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잔에는 원숭이의 포도주, 둘째 잔에는 사자의 포도주, 셋째 잔에는 양의 포도주, 넷째 잔에는 돼지의 포도주라고 씌어 있는데, 각각의 동물은 취기가 도는 네 단계를 상징한다. 첫 잔은 마음을 유쾌하게 만들고, 둘째 잔은 감정을 돋우고, 셋째 잔은 감각을 둔화시키고, 넷째 잔은 머리를 마비시킨다.

어느덧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장발장이 눈 감는 대목에서는 또 한번 감정이 벅차 오른다. 노인은 코제트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고는 청년 마리우스의 곁에 남겨둔 채 사라져간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무서운 건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지.” 여기서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레미제라블』을 읽고 난 느낌은 늘 그대로인데, 어느새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이제 아이 방에서는 젖내 대신 수능 성적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그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만 생각했었는데.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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