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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철수 현상만 남았다

김진국
논설실장
23일 오후, 안철수 후보 사퇴 직후. 카카오톡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안철수 후보 사퇴했어요.” 대학생 아들이었다. 평소 정치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아들이 문자까지 보낸 걸 보면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밤늦게 퇴근하자마자 아들은 안철수 얘기를 꺼냈다.

 종로에서 친구들과 만났는데 갑자기 “안철수, 안철수”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 가봤단다. ‘안철수로 단일화됐나’ 하고 기대하다 사퇴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해 돌아서는데 옆에서 누군가 “이제 문재인 찍어요”라고 홍보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문재인은 아닌데…”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막상 투표장에서 박근혜를 찍을지, 문재인을 찍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안철수 지지자들은 상당 기간 공황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이 안철수 현상이다. 지난해 9월 서울시장 선거 이후 그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지금도 안철수가 문재인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에 정치권이 목을 매고 있다. 이런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가 만든 것일까. 아니다. 안철수가 아니어도 안철수 현상은 있었다. 안철수 현상은 우리 사회, 특히 젊은이들에 잠재된 불만이다. 안철수가 그것을 들어주고 달래주는 ‘힐링’을 통해 드러냈을 뿐이다. 안철수가 사퇴하건 말건, 누구를 지지하건 말건 기존 정치권이 변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제2의 안철수가 나오게 돼 있다.

 안철수 현상은 왜 생겼나. 한마디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을 보자. 전체 실업률은 2.8%지만 청년(15~29세) 실업률은 6.9%다. 청년 실업률만 늘어나는 추세다. 청년들은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불안하다. 20대 고용률이 57.0%. 43개월 만의 최저치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도 중산층이 74%에서 67%로 줄었다. 빈곤층은 두 배로 늘었다. 그마저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라 고용돼 있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97년 0.264에서 지난해 0.313으로 나빠졌다.

 물론 이런 양극화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가 몸살을 앓는 현상이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사회 질서, 기득권층, 특히 이런 체계를 만들어온 정치권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1차 위기는 마르크스의 경고와 혁명의 위협을 받으며 넘겼다. 그 과정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보호조치들이 따르고, 복지에 눈을 떴다. 그러나 경제가 세계화하고, 지식형 산업이 주도하게 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아이는 아프면 울음을 터뜨린다. 치료를 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의사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진통제만 처방할 수는 없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나 재벌 때리기가 당장은 후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해서 일자리가 생기고, 분배 구조가 안정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비전과 큰 그림 없이 내놓는 사탕발림 공약은 진통제에 불과하다.

 지난해 가을 안철수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다니던 시골의사 박경철을 만났다. 그는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 대통령이 집권하면 경제는 더 어려워집니다. 기존 체제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집권해 진보세력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 나라가 곧 거덜 납니다. 그러면 정권을 내놓고 30년간은 진보세력이 집권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집권해 국민에게 고통을 나누자고 호소해야 합니다.”

 성장동력을 살려내 일자리를 만들고,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선거판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를 통해 터져 나온 건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것을 뒤집어 달라는 요구다. 기존 정당은 국민보다는 정파, 국가의 미래보다는 권력 쟁취에 매달렸다. 새로운 비전도 없이 상대방을 헐뜯어 이기려 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라도 제3 후보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는 이유다.

 기존 정치권은 안철수 현상을 보면서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단일화 협상조차 세력 간 권력투쟁으로 몰아갔다. 옳다고 생각해도 상대 당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반대했다. 이념 과잉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가 그런 꼴이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안철수를 기다린다. 차기 대통령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우리에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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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