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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극복이다

오석근 현대디자인센터장은 미국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거기서 현대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를 열었다. 빈 사무실에서 시작, 현대차의 첫 컨셉트카 ‘HCD-1(사진)’을 만들었다. HCD-1은 19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올해의 컨셉트카’로 선정됐다. 한국차가 저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디자이너 오석근
1975년 12월 1일 첫 국산차 고유모델 포니가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만들었다. 그로부터 15년. 우리 힘으로 디자인한 첫 차가 나왔다. ‘스쿠프’다. 오석근(53)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의 첫 작품이다.

K-디자인, 10인이 말한다 ④ 오석근 현대디자인센터장



 한국 자동차 디자인과 동고동락한 오 부사장을 22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그룹 4층 선행디자인팀. 이 회사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를 모색하는 곳으로, 보안 검색이 철저했다.



 오 부사장은 원래 조각가를 꿈꿨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반서 활동했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4학년 때 울산 현대차로 연수를 갔다. 83년 여름방학의 일이다. 클레이(점토)로 자동차 모델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조각가처럼….



 그는 입사 예정이었던 전자 회사를 접었다. 현대 울산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식당엔 ‘조국 근대화의 기수, 자랑스런 산업역군이 되자’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월화수목금금금 근무,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됐지요. 질주하기 위해 시야를 가린 경주마와 같았달까. 그땐 다들 그랬죠.”



 입사 5년차에 미국 유학을 갔고, 거기서 현대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를 열었다. 현대의 첫 번째 컨셉트카 HCD-1을 만들었다. 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올해의 컨셉트카’로 선정됐다. 한국 차로는 처음으로 미국 자동차 전문지 표지에 실렸다.



 오 부사장은 2007년부터 현대디자인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입사 당시 10여 명이던 이 회사 디자이너는 현재 500여 명에 이른다.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에 350명, 독일·미국·중국·인도·일본 디자인센터 5곳에 150명이 있다. 그는 국내외 디자인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국내 첫 자체 디자인차 스쿠프(1990, 사진 왼쪽), 디자인 철학 확립 후 내놓은 첫 모델인 YF소나타(2009, 오른쪽).
 - 한때 현대차에서 신차를 내놓으면 ‘뭘 베꼈다’는 말이 많았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큰 치욕은 ‘새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디자인이 좋지 않다’는 말보다 더 상처주는 말이다. 새로움은 과거 선두주자들을 뒤쫓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을 때는 중요하지 않던 가치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차와 비슷하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새로워서 촌스럽다거나 과장됐다는 말을 듣는 게 낫다.”



 오 부사장은 2009년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라는 디자인 철학을 만들었다. ‘유연한 조각’쯤 될까.



 “자동차 디자인은 협업이다. 차 한 종을 디자인하는데 내·외장 디자이너, 칼라&트림(trim) 디자이너, 기술팀과의 업무를 중재하는 엔지니어 등 4종의 디자이너 직군 20여 명이 참여한다. 디자인에 18개월, 양산에 18개월, 총 3년을 매달린다. 그러니 공통의 디자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는 공기의 흐름을 반영하는 곡선미, 적은 저항으로 속도를 내는 친환경성, 다른 직군과 협업하는 유연성, 예술적 창의성에 무게를 실었다. 예로 포니에는 미쓰비시 엔진을 달았다. ‘알파 엔진’(1991)을 개발하기 전까진 그랬다. 오랜 기간 외국 선발주자들과 일했다.



 “미쓰비시적 방법, 일본적 방법은 개량화·모듈화였다. 그들 역시 자동차 산업에선 후발자였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그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 당신에게 디자인이란.



 “열정이다. 그러나 그 뒷면엔 극복하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모든 것을 남에게서 받아들이고 배워야 했던 그때, 어떻게 하면 저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열정으로 일했다.”



 - 자동차의 핵심은 안전성·연비 같은 기술적 요소 아닌가. 디자인의 비중은.



 “소비자 관점에서 얘기해 보자. 소비자들에게 ‘왜 이 차를 샀느냐’ 물으면 ‘모양’이 1, 2위를 다툰다. 저가차는 가격, 고가차는 안전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디자인이 불변의 1위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것이 투자 대비 효율 면에서 유리하다.”



 - 대기업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면.



 “신차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합의를 이끄는 것, 그럴 때 우리의 강점이 빛을 발한다. 말보다 그림, 생각을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디 미남미녀 판단에 오래 걸리던가.”



 - 현대차 디자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여전히 포니 아닐까.



 “포니는 최초의 독자 모델이라는 역사성이 있다. 그러나 포니를 디자인한 주지아로는 폴크스바겐이나 이스즈(ISUZU) 등 다른 회사와도 일했다. ‘우리 디자인’이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 스타일, 우리 방향성을 만들어 왔다는 점이 디자이너로서 의미 있지 않을까.”



 - 좋은 디자인의 요건은.



 “비례(proportion)다. 비율이 좋고 균형이 잡혀야 디테일도, 기능과의 조화도, 전체 조형미도 살아난다. 스포츠카는 감성, 소형차는 경제성 등 차종 별로 으뜸 가치는 다르지만 공통되게 추구하는 것은 비례미다. ‘얼굴보단 몸매’랄까, 하하.”



 - 궁극의 지향점은.



 “아트다.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가치 창조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소변기를 ‘샘’(1917)이라 명명해 전시한 것 아닐까.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문화예술의 반열에 든다면 영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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