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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야, 이XXX"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고객, "이러면…" 경고 뒤 끊자 공손히 다시 전화

현대카드 콜센터 ‘폭언전화 근절’ 실험 8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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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기자]

“사무실이 감옥이다.” “악마의 공장 같다.”

곽금주 교수팀 제안
상담원, 민원 제기로 피해 볼까 참아
회사가 책임 묻지 않겠다고 약속

달라진 고객들 태도
폭언 절반 뚝, 재전화 땐 97%가 정상
“을이 너무 굽신거려 갑질 만들어”

분위기 바뀐 콜센터
우려했던 고객 민원 월 1건도 안 돼
상담원 53% “스트레스 줄어들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현대카드 콜센터 상담원을 심층면접하면서 들은 하소연이다. 일부 고객들의 폭언으로 인해 상담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구팀은 녹음된 악성 전화 내용을 직접 듣고 깜짝 놀랐다. “내장을 끄집어내겠다”는 협박부터 “너희 부모는 너 낳고 미역국 먹었느냐”는 비하 발언까지 심각한 언어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부 상담원은 “차라리 욕설은 무시하면 그만인데 부모를 비하하면 눈물이 난다”고 마음의 상처를 호소했다. 연구팀은 강경한 대응을 회사 측에 주문했다. 상담사가 위협이나 인격 모독 언어, 욕설을 들으면 전화를 먼저 끊는 ‘단선 정책’을 제안했다. 욕설과 인격 모독은 두 차례, 이보다는 스트레스 정도가 덜한 위협적인 말에 대해선 세 차례 경고를 한 뒤 전화를 끊게 했다. 곽 교수는 “내가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자율감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팀의 연구보고서 내용은 콜센터 관리를 맡은 현대카드 채널관리실엔 충격이었다. 이 회사는 2012년 욕설·성희롱 전화를 먼저 끊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제도가 잘 시행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담사들이 욕설을 들어도 전화를 끊지 않고 참고 있었다. “전화를 끊어서 민원이 생기면 피해는 내가 본다. 그냥 참자”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어떤 말에 전화를 끊을지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하고 경고용 안내 문구를 상담원 전원이 달달 외우도록 교육했다. 혹시 민원이 발생해도 상담사에겐 아무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본사에 전담 인력 4명을 배치해 악성 전화를 끊지 않고 참는 경우가 없는지 매일 녹음 내용을 모니터링하게 했다. 이 회사 노대홍 채널관리실장은 “전엔 우리가 착각했다. 상담원이 전화 끊기를 어려워할 거라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제대로 적용하려고 보니 손댈 게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올 2월 폭언 전화 끊기 실험이 시작됐다.

“야, 이 XXXX야!”

현대카드 영등포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현경(45·여)씨는 최근에 처음부터 욕으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30대 여성 고객은 무슨 일인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보통은 정상적으로 상담하다가 감정이 고조돼 중간에 욕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고객은 다짜고짜 욕이었다. 이씨는 이미 교육받아서 외워둔 대로 경고를 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씀하시면 제가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한 번 더 경고한 뒤 단선 버튼을 눌러 통화를 종료했다. 그 고객은 전화가 끊기기 전 ARS를 통해 이런 안내말을 들었을 것이다.

“지속적인 욕설 사용으로 인해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콜센터 경력 5년인 이씨는 올 2월 이후 고객 전화를 먼저 끊어본 적이 세 번 있다. 이전 같았으면 꾹 참고 끝까지 들어줬겠지만 이젠 망설임 없이 경고하고 전화를 끊을 수 있다. “5년간 별별 고객들을 다 상대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어요. 욕을 듣고 나면 퇴근해서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었죠. 이 시스템은 정말 잘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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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3년 차 상담원 김성재(23)씨는 욕하는 고객 전화를 먼저 끊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전산이 느려서 답변이 늦어지니까 바로 욕하면서 ‘일 되게 못하네’라고 무시하더라고요. 외운 스크립트대로 하고 전화를 먼저 끊었죠. 전화를 끊고 나니까 마음이 진정되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걸 느꼈습니다.” 김씨는 “전반적으로 전화 끊기 제도를 시행한 뒤 욕하는 고객이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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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집계에 따르면 평균 하루에 걸려오는 고객 전화는 8만 건, 그중 1.5%인 1200건 정도만이 불만 고객이다. 그중에서도 욕설·인격 모독·협박에 해당돼 상담원이 경고 내지는 단선을 하는 전화는 35~50건이다. 시행 초기만 해도 하루 80건이던 악성 전화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전체 상담원 1100명 중 전화를 끊어본 경험이 있는 상담원 비율은 지난 8월 기준 76%에 달한다. 전화 끊기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상담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 6월 설문조사에서 새 제도 도입 이후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응답이 53%, 원활한 업무 처리에 도움이 된다는 답변이 79%에 달했다. 특히 문제성 전화를 받은 경우엔 무조건 30분간 휴식을 보장토록 했는데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상담원이 많았다.

놀라운 건 전화 끊김을 당한 고객들의 변화다. ‘감히 고객 전화를 끊느냐’고 난리 칠 줄로 알았는데 실제론 그 반대였다. 전화가 끊긴 뒤 다시 전화를 걸어온 고객의 97%는 아무런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단선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에 제기된 민원 건수는 8개월간 6건에 불과했다. “처음엔 수시로 민원이 터지진 않을까 겁도 났습니다. 실제 전화로는 ‘민원 넣겠다’고 하는 고객도 많았고요. 그런데 월 1건도 안 되더라고요. 본인들도 잘못한 걸 아니까 안 하는 거겠지요.”(김경진 채널관리실 차장)
 
곽금주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봤어요. ARS로 전화가 끊긴다는 안내를 듣는 몇 초 동안 ‘아, 내가 실수했구나’라고 깨닫고 반성하게 된 겁니다. 그런 작은 반성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원래 자기 화에 자기가 넘어가는 상승작용이 있어 화난 사람은 아무 데나 가서 화내거든요. 그런 사람을 적절히 막아주는 게 사회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을(乙)이 좀 더 당당해져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갑을관계로 인한 사건이 많은데 을이 갑에게 너무 굽실거리는 게 갑질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었을까요. 진정으로 친절한 것과 비굴한 것은 다릅니다.”

상담원들은 한 번의 경고만으로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상담원 박주희(23·여)씨는 “지난해엔 고객이 욕을 하면 ‘죄송하다’ 하고 계속 듣고만 있었다”며 “지금은 스크립트 내용대로 ‘자제해 달라’고 얘기하면 대부분이 ‘상담원님한테 그러는 건 아니에요’ ‘욕해서 미안해요’라고 바로 사과하고 정상적으로 상담이 진행되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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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악성 전화 10건 중 6건은 1차 경고를 듣고 바로 고객이 태도를 바꾼다고 한다. 경고했을 때 고객이 흥분해 스스로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20%, 계속 폭언을 멈추지 않아 결국 상담원이 단선까지 하는 경우가 나머지 20%다. 상담원들이 폭언 전화를 무조건 끊으려고 하기보다는 정상적인 상담으로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고 안내를 하는 것을 보고 회사 측도 놀랐다. 이 역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긍정적 효과다. 8개월간의 실험만으로 아직 성공을 말하긴 이르다. 노대홍 실장은 “여전히 시스템을 계속 보완 중이고 완벽하진 않다. 최소 2년은 꾸준히 관리해야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감정노동자’ 보호 안 하는 금융사엔 과태료 1000만원
지난달 27일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해 상담원에게 1시간40분 동안 항의하며 욕설을 퍼부은 50대 남성이 검거됐다. 이 남성은 5년간 총 154차례에 걸쳐 이런 식으로 전화를 걸어 상담원을 괴롭혔다. 전화에 시달린 일부 상담원은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러한 언어폭력에서 금융회사 상담원을 보호해 줄 법적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다. 상담원을 포함한 금융권의 ‘고객 응대 직원(감정노동자)’ 보호를 의무화한 5개 금융법(보험업법·은행법·자본시장법·저축은행법·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지난 6월 30일 시행됐다(여전법은 9월 30일 시행). 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고객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는 직원이 요청하면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분리하고 담당 업무를 교체해야 줘야 한다. 직원에 대한 치료나 상담을 지원하고 상시적인 고충 처리 기구도 갖춰야 한다. 형사고발 같은 법적 조치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금융회사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법 시행 이후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까지는 기업의 인식 변화가 더딘 탓이다. 금융권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국회에선 감정노동자 보호 관련 법안이 16건 발의됐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백화점 폭행사건 등으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았다. 그러나 이 중 11개 법안은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대형마트 종사자 등이 기댈 법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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