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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즐기는 야한 소설에 남편들은 '멘붕'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세상의 엉뚱한 뉴스들을 빈틈없이 커버하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내년에는 영어권 국가들에 베이비붐이 일 예정이란다. 영국작가 E L 제임스의 로맨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때문이다. 이 책은 세계 출판계를 뒤흔드는 중이다. 3부작(총 6권)으로 나눠 출간된 시리즈는 미국에서 석 달 만에 2100만 부를 돌파했고, 영국에서는 『다빈치 코드』가 세운 기록(36주)을 제치고 11주 만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아마존닷컴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최초의 전자책’으로도 기록됐다.

 8일 한국에도 출간된 이 작품의 처음 몇 장을 읽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교과서 사이에 몰래 끼워 읽던 할리퀸 로맨스의 익숙한 설정들이 반가워서다. 연애 한번 안 해 본 아나스타샤 스틸이라는 여주인공이 스물일곱 살의 부호 크리스천 그레이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그와 마주치는 순간 ‘기이하게 흥분된 떨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거나, ‘그에게서 갓 세탁한 리넨과 비싼 바디워시 냄새가 풍겼다’는 오글거리는 표현. 당연히 그레이는, 로맨스 소설 남자 주인공의 필수 요소인 ‘깊이를 알 수 없는 회색눈’을 가졌다.

 그러나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별명답게 할리퀸 로맨스보다는 훨씬 수위가 높다. 완벽해 보이는 그레이는 소위 ‘BDSM’이라고 불리는 ‘결박(Bondage)과 훈육(Discipline)의 SM(사디즘·마조히즘)’을 즐기는 남자였던 것이다. 순진한 여주인공은 도망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다. 왜? 그는 너무 매혹적이니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권 표지.
 문학적 가치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든 이 야한 소설의 인기에 대해 “현대 여성의 감춰진 욕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미니즘의 끔찍한 퇴보”라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이 가진 ‘유치할 정도의 비현실성’이 인기의 원인 아닐까 싶다. 모델 같은 외모에 엄청난 재력, 제멋대로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다정다감, 거기에 슬픈 과거와 기이한 성적 취향을 지닌 남자. 현실에는 없는 캐릭터임을 알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기게 된다. 판타지 소설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남자들에겐 당연히 ‘비호감’인 모양. 부인들이 이 책에 푹 빠져 남편을 무시한다며 미국 남성 50여 명이 책을 불태우는 시위까지 벌였다. 과연 그레이의 치명적 매력은 한국 여성들에게도 통할까. 어느 날 아침 부인이 느닷없이 회색 넥타이(소설 속 주인공들의 은밀한 관계를 암시)를 꺼내 놓는다면 ‘그레이 중독’을 살짝 의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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