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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체중 10kg이나 빠져"

[사진=박종근 기자]
개그맨 신동엽(41)은 웃기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진지한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근황을 물으며 분위기를 띄우고, 나중에 치고 나가려던 질문들에 그가 먼저 운을 뗀 탓이었다. 연예기획사를 차렸다가 자기도 모르게 회사가 넘어가고, 또다시 신발업체를 꾸렸다가 빚만 지고 송사에 휘말렸던 사업 실패담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방송처럼 사업에서도 뭔가 보여주려 했던 욕심, 냉정한 판단 없이 사람을 그저 믿었던 미련함이 문제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패 그 자체보다 그 속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제 방송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그. 긴 고백을 끝내고서야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전날 밤 늦게까지 녹화를 하고 왔다고 말하는 그는 얼굴이 푸석해 보였다. 하지만 군살이 없어 보이는 몸, 웃을 때가 아니면 잘 드러나지 않는 주름 덕에 데뷔 22년차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여전하다”라는 덕담을 건네며 특유의 애드리브를 기대했건만 “운동을 꾸준히 해요”라는 모범 답안이 돌아왔다.

●늙지 않는 것 같아요.

 “컨디션이 좋아져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6~7년 동안 다른 일들을 하고 뭔가 꼬이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했죠. 그게 방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하더라도 베스트는 아니었죠. 이젠 문제도 얼추 다 마무리됐고.”

 ‘다른 일’ ‘문제’는 사업이었다. 그는 2005년 국내 정상급 개그맨 MC들을 영입한 예능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 ‘DY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개그맨 김용만·유재석·이혁재·노홍철 등과 한식구가 되면서, 국내 코미디 오락계의 큰손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듬해 동업자가 그에게 말도 안 하고 회사 주식 55.19%를 다른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에 넘기면서 사달이 났다. 당시를 두고 그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처절하게 느꼈고 체중이 10㎏이나 빠졌다”고 했다. 방송 활동에서도 슬럼프를 겪였다. 회사는 이후 수차례 사명을 바꿔가면서 고전했다. 그는 2009년 이후 경영권 분쟁에서도 아예 손을 뗐다.

●방송계 인맥과 달리 사업에선 배신이 문제였네요.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젠 다르게 봐요. 배신이라는 게 100% 제 생각이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걸 감지하지 못하고 철석같이 믿은 제 잘못이죠. 사람을 믿었던 이면에는 제 욕심이 있었던 거죠.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객관적으로 보고 벌어지는 일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평소엔 사람 보는 눈이 있을 듯한데요.

 “방송 쪽에선 그래요. 그런데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막연하게 ‘청사진대로 됐음 좋겠다’ 꿈만 꿨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촉이 흐려졌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이 그래서 깜짝 놀랐죠. ‘쟤가 저렇게 사람을 못 보나’ 해서요. 돌이켜 생각하면 신이 저에게 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연예기획사를 차렸나요.

 “(이)수만이형이 제 고등학교 18년 선배예요. 우연히 고등학교 때 선배가 진행하는 ‘젊음은 가득히’라는 프로에 출연하면서 친해졌어요. 1990년대 초 SM엔터테인먼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저도 소속 연예인이었죠. 옆에서 형 회사가 점점 커지는 걸 보니까 저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형한테 말하니까 같이 해보자고 했는데 내키지가 않았어요. ‘만약 일이 틀어지면 관계가 깨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쨌거나 사업한다니까 형이 이렇게 저렇게 조언을 해줬어요. 그게 당시에는 잔소리처럼 들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딱 그대로 되더라고요.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나중에 형을 만나 그랬어요. ‘처음에 좀 세게 말해주지’라고요.”

●부자가 되려면 빌딩을 샀어야 했는데요.

 “돈 버는 목적으로만 사업을 한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싶었어요. 당시 드라마·교양에 비해 예능이 저평가된 우량주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시청률은 좋아도 24부작인데 예능은 한번 잘되면 3~4년도 가는 데 말이죠. 언젠가 달라질 때를 대비하자 싶었어요. 주변에서 다들 그랬거든요. ‘신동엽이란 사람은 참 선별력·예지력이 좋다’고요. 그래서 ‘진짜 뭔가 보여줘야겠다’ 그랬는데, 방송이 아닌 사업에 뛰어든 거죠.”

●왜 실패했을까요.

 “가수 토니안 같은 경우는 사장이지만 실제 경영자는 따로 있죠. 저도 방송과 병행하지 않고 매일 회사로 출근해 실무를 배웠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 당시에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단을 못 내렸어요. 몰라서 그런 게 아니죠. 계속 현실을 회피하고 ‘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야, 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했죠. 연예인·정치인이 망가지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확대될 일이 아닌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을 하니까 나중엔 생명이 딱 끊기는 거죠.”

 실패가 한 번으로 끝난 것도 아니다. 2008년 그는 다이어트용 신발 사업의 투자자 겸 공동대표가 됐다. 처음엔 중국 진출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쟁 제품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결국 지난해 사업으로 진 빚을 다 갚지 못해 고소를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에 신씨 측은 “개인이 진 빚이 아니라 법인이 진 채무”라고 반박하며 이미지 회복을 위해 뛰어야 했다.

●재도전한 이유가 있나요.

 “당황했어요. 뭔가 빨리 다른 모습으로 만회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그러면서 다른 사업에 또 뛰어들었고요. 사업이란 것도, 조직생활을 해본 적도 없어서 ‘대표이사’로 등재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몰랐어요. 당시에는 또 믿고 보증을 서고. 자리만 차고 있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투자까지 한 거죠. 어찌 보면 방송에서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사업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업 때문에 방송을 못했다’라는 핑계인 거죠.”

●그런데도 방송을 쉬진 않았어요.

 “사실 방송을 하면서 제정신으로 하지 못했어요. 잠깐 쉬는 시간에도 뭐가 자꾸 터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죠. 사실 개그는 컨디션이 많이 작용해요. 상대의 말에 촉을 잔뜩 세우고 탁탁 받아쳐야 하는데. 그게 안 됐죠. 찰나지만 누가 말하고 있는데 딴 생각이 드는 거죠. 그때 주위 사람들이 얼굴 안 좋다는 말을 수없이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넋이 나간 것 같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사업 실패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뭘까요.

 “그 일을 당한 것 자체는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큰 상처가 되지 않아요. 다만 그 일로 뭔가 깨닫지 못하면 심각한 거죠.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까 봐 항상 두려워요. 제 인생 자체에 실패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겠죠. 잃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신동엽(오른쪽)과 부인 선혜윤씨.
●되돌아 보니 누가 가장 힘이 됐나요.

 “아내죠. 2006년 결혼과 동시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가 물밀듯이 몰려 왔어요. 그때 결혼을 안 하고 그런 일을 겪었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속을 내비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은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어요. 진짜 존재 자체가 의미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부인이 PD(MBC 선혜윤 PD)라서 방송활동에 도움이 크겠어요.

 “아뇨. 둘 다 일에 대해선 전혀 얘기 안 해요. 서로 모니터링도 안 해요. 아내가 ‘위대한 탄생’ 시즌1을 연출할 때에도 그랬고, 제가 요즘 새로운 프로 출연하는 데도 아무 말 안 해요. 가족은 그냥 가족으로 살아야죠.”

●아이들한테는요.(그는 여섯 살짜리 딸과 세 살 난 아들이 있다)

 “아이들한테 무서운 아빠는 아니죠. 장난을 많이 쳐요. 자주 못 보고 일주일에 같이 노는 날이 토요일 딱 하루라서. 아이들한테는 나중에 커서도 계속해서 장난치고 재밌게 끊임없이 웃기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웃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커서 유머러스하고 멋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방송가에서 그는 ‘동엽신’으로 불린다. 각종 시상식 사회 섭외 1순위는 물론이고 연기력이 필요한 콩트,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특히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JTBC ‘신동엽·김병만의 개구쟁이’ 등 5개 프로에서 고정MC로 활약 중이다. 하지만 그가 ‘외도’를 한 몇 년 사이 ‘대세’는 달라졌다. 유재석·강호동이 양대 강자로 올라섰고, 이수근·김병만·최효종 등 후배들이 톱MC 대열에 들어섰다.

●라이벌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어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라이벌이 누구냐’ 이런 질문도 헷갈려요. 옛날부터 사람들이 정해준 라이벌들이 있었죠. 처음엔 양원경씨였다가 이휘재, 그러다 김국진, 그러다가 박수홍, 그렇게요. 하지만 전 모두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예능이라는 장르가 더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우리 가게만 잘되는 것보다 먹자골목이 형성되면 좋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예전부터 제 출연료를 다 공개했어요. 그러면서 동료 개그맨에게도 ‘당신도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당당히 주장해라’ 그렇게 말했죠. 예능이 제 대접을 받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그림이죠.”

●바람대로 예능이, 개그맨이 대세가 됐네요.

 “점점 유머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저 사람 재미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많이 얘기하잖아요. 방송도 뉴스가 아니라면 장르 구분 없이 순발력 있고 유머러스하게 이끌어가는 걸 좋아하게 됐죠. 뭔가 벌어지는 상황을 재미있게 요리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있어요.”

●그래도 신동엽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할 텐데요.

 “글쎄요. 각자 자기가 제일 잘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김병만씨랑 ‘개구쟁이’를 하고 있는데 ‘달인’ 이런 건 김병만 말고 누가 하겠어요? 정글의 법칙도 그렇고. 저는 신동엽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봐요.”

●콩트 아닐까요.

 “10년 전쯤엔 시트콤을 자체 제작해 볼 요량도 있었어요. 그래서 언젠가 콩트 형태의 코미디를 해보고 싶긴 해요. 지금도 ‘개구쟁이’에서 잠깐씩 하긴 하는데. 함께 대본 짜고 하는 게 재밌거든요.”

●다시 연예대상이 욕심 나지는 않나요.

 “음, 전 연예대상이 3사에 다 생겼다는 게 기뻐요.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개그맨한테 주는 상이라는 게 연기대상에서 잠깐 지나가는 한 코너 형식이었거든요. 2002년 제가 받았던 KBS 연예대상이 최초였죠. 세월이 흐르니까 이제는 방송 3사에도 다 생기고, 그런 게 너무 행복해요. 이경규씨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꼬꼬면으로 회자되고 돈도 벌고…. 예능에서 계기가 돼 성공하는 게 참 좋아요. 그러니까 ‘아, 그래 나도 열심히 해서 다음에 대상을 한번 받아봐야지’ 라는 욕심이 생겨요. 진짜.”

“야외 버라이어티 쇼는 안 맞아요 방송서 게임하라면 이걸 왜 하나 싶죠”

지금까지 신동엽이 출연한 프로그램에는 특징이 있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반면 요즘 예능의 주를 이루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거의 없다. 야외보다는 스튜디오, 여럿보다는 두세 명의 출연자를 선호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 일반인과 어울리는 프로그램이 궁합이 맞나 봐요.

 “연예인들과 같이 하는 건 오히려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신인 때부터 일반인과 하는 걸 개그맨 중에서도 제일 많이 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분 좋은 밤’의 ‘악마의 속삭임’ 같은 코너는 보통 사람들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하는 내용이었고, ‘결혼할까요’는 일반 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었죠. 새로 가게를 차려주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신장개업’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집을 개조해주는 ‘러브하우스’ 등등 너무 많아요. 전 오히려 참 편하게 했는데 연예인들과만 출연하는 분들은 굉장히 힘들어하더라고요.”

● 리얼 버라이어티를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전 기본적으로 소리를 못 질러요. 말을 오랫동안 큰 소리로 하면 성대나 기관지가 약해서 안 되죠. 그러니까 야외에서 힘차게 진행하는 게 맞을 수 없지요. 그리고 재미있게 놀지도 못해요. 무슨 게임 같은 걸 하면 ‘지금 내가 이걸 왜 해야하나’ 싶죠. 옛날에 연예인들끼리 나오는 짝짓기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진짜 사귀는 것도 아니면서 정말 서로 구애하고 거절당하면 당황하는 것처럼 해야 하고…. ‘다른 출연자들은 정말 사석에서 만나는 건가’ 할 정도였죠. 시트콤도, 콩트도 아니고, 리얼인데 리얼이 아닌 걸 못 받아들였어요.” 


j 칵테일 >> “개그맨 허경환·장도연, 진짜 웃겨요”

신동엽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재치 있는 입담이다. 그렇다면 그가 주목하는 후배 개그맨은 누굴까. 신동엽은 허경환·장도연을 꼽았다. “둘 다 제가 처음에 기획사 차릴 때 발탁한 사람들이에요. 개그맨 시험 한번 봐라 그랬는데 정말 붙더라고요. 지금 둘 다 개콘에 출연하고. 원래 둘은 말을 훨씬 더 잘하고 재밌거든요.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 하는 코너로도 인기가 많고 하지만 나중에 한번 보세요. 깜짝 놀랄 날이 올 거예요.”

WhatMatters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꿈인 것 같아요.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발악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려 했다면 굉장히 퇴보했을 거 같아요.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현실을 유지하는 거죠. 전 친구들한테도 이렇게 말해요. 꿈꾸지 않는 사람은 비웃어도 다른 사람의 어떤 꿈도 비웃지 말라고.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몇십 년 동안 살아오며 쌓아온 꿈들이 있어야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거나, 경제적으로 달성하겠다는 거나 뭐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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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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