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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엔 안 진다” 40년 전 김일성 오산

1971년 6월 북한의 김일성 주석(왼쪽)이 평양을 방문한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국가평의회 의장을 맞이하고 있다. 차우셰스쿠는 북한 체제를 모방해 개인 숭배를 강요하면서 공포정치를 하다가 89년 민중혁명으로 쫓겨나 부인과 함께 총살당했다. [중앙포토]

40년 전 북한 김일성 주석은 절대로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워싱턴의 외교안보전문 연구소인 우드로 윌슨센터가 2일(현지시간) 공개한 『한반도에서의 데탕트 부상과 추락:1970~1974』 자료집에 수록된 김일성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당시 루마니아 국가평의회 의장의 대화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

 김일성은 71년 6월 북한을 방문한 차우셰스쿠 의장에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설명하면서 “그(박정희)는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될 때 그것(통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단순한 꿈이라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일성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동안 우리가 잠을 자고 발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가 상상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무찌르고 통일을 하겠다는 그의 슬로건에 우리는 겁먹지 않는다”고 강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김일성은 차우셰스쿠에게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 뒤 당시 남한 내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이 더욱더 가열되고 있다면서 혁명의 기대감도 나타냈다.

 71년 6월은 제7대 대통령 선거(71년 4월)에서 3선 개헌으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 당시 야당 후보의 통일론에 자극받아 대북한 통일정책을 강화하는 시점이다.

 김일성은 뒤이어 73년 방북했던 토도르 지프코프 불가리아 국가평의회 의장과의 대화에서 “문화혁명 당시 중국이 북·중 국경 지대에서 대형 스피커와 홍보 수단을 동원한 대대적인 홍보전을 북한을 상대로 진행했다”며 “아들(김정일)이 국경지대를 방문하고 돌아와 ‘아버지, 하룻밤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하더라”고도 했다. 또 중국이 소련과 군사적 갈등을 이어갈 당시 중국군 100여 명이 무단으로 북한 영토에 침입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대화가 오간 지 40년이 지난 2011년, 한국과 북한의 국력은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김일성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됐다.

 2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2010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치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24만원으로 한국(2400만원)의 19.3분의 1 에 그쳤다. 교역규모 격차는 더욱 크다. 북한이 2010년 한 해 동안 41억7000만 달러어치를 수출입하는 동안 한국은 8915억 9000만 달러어치를 사고팔았다. 북한의 213.8배다.

 산업구조도 한국에 비해 후진적이다. 북한 산업구조는 여전히 농업(20.8%)·광업(14.4%) 비중이 커 서비스업(58.2%)·제조업(30.6%) 중심의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안혜리 기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65~89년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 도청을 통한 불만세력 색출과 친위대 조직 등을 통해 공포정치를 펼쳤으며, 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해외로 도망가려다 붙잡혀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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