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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인프라와 체계적 지원, 창조적 커뮤니티 꽃피워

2008년 5월 개최된 제5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파울리나 올로우스카(Paulina Olowska)가 기획한 조피아 스트리옌스카(Zofia Stryjenska)의 작품 ‘콜라주 스트리옌스카(Collaged Stryjenska)’. Copyright berlin biennial for contemporary art, Uwe Walter, 2008
최근 글로벌 미술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베를린(과거 동베를린)으로 이사 가기’다. ‘직업=예술가’라고 등록되기만 하면 매달 150만원가량의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노르웨이의 작가들조차 베를린으로 향한다. 1980년대는 파리, 90년대는 뉴욕, 2000년대는 런던이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다면 앞으로는 베를린이 그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들린다.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지에 따르면 2009년 2월 현재 베를린에는 약 2만1000명에 달하는 음악가·시각 및 공연 예술가가 거주하고, 약 80만 명이 광고·컴퓨터그래픽 같은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베를린은 뉴욕의 MOMA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같은 기관의 파워(Institutional power)가 있는 곳도 아니고, 미술 시장에 영향을 주는 유명한 컬렉터가 많이 살고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베를린으로 몰리는 이유가 뭘까.

물론 좀 더 큰 작업실에서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생활하려는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장소를 찾아나서는 현실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이 작가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데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 비스마르크 정부 시절 이래 독일의 수도(1871~1945)였던 베를린은 동서가 분할되면서 양 국가의 서로 상반된 문화 정책을 통해 매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서독은 1979년 슈미트 총리 시절 문화부장을 맡고 있던 호프만(H. hoffmann)에 의해 문화민주화 정책이 시작됐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한 문화 』라는 책을 출간했을 정도로 철저한 지방분권 정책과 교육 및 제반시설의 변화를 통해 문화의 일반 수혜자를 늘려 나가는 정책을 실행했다.

반면 동독은 강력한 중앙집권형의 문화 정책으로 재정 지원을 총괄하는 기관을 베를린에 설립한 뒤 그곳에서 모든 일을 관할해 왔다. 그래서 뒤셀도르프는 현대미술, 함부르크는 미디어센터, 프랑크푸르트는 도서·기록 등 도시별로 특색 있는 문화를 가꾸게 된 것이 서독이었다면 동독은 베를린에 집중했다. 이 때문에 독일 통일 이후 연합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이렇게 서로 다른 베를린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융합하고 새로운 모습의 도시로 탈바꿈시킬 것이냐였다.

서독 입장에서 보면 중앙정부에 의해 어떤 문화 정책이 진행되는 것은 사실 처음일지도 모른다. 서독은 ‘문화 권력’이 어느 한곳에 집중되면 안 된다는 강한 원칙에 따라 16개의 지방정부 및 문화재단 설립을 통해 문화 정책을 운영해 왔다. 문화부 없이 문화 재정을 약 5%만 연방정부에서 지원하고 35%를 주정부에서, 60%를 지역사회에서 담당하게 하는 식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 이후 ‘수도 베를린’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 연합정부는 3~5% 정도였던 문화 예산을 거의 10% 정도로 증가시켰다. 90년 8월 31일 통일조약 35조 문화약관을 보면 ‘문화국가로서의 위상 확립’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독의 문화적 기반시설 및 ‘저변문화의 보호’라는 항목도 적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연방 차원의 예외적 지원까지 가능하게 했다.

공산주의 체제임에도 매우 유기적으로 발전해 온 동독의 공연예술계는 통일 당시 68개의 극단과 200개의 공연장을 소유해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고 유기적인 극장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연간 1000만 명이 움직이며 객석 점유율도 무려 90%에 달했다. 여기에 특별문화진흥기금으로 34억 마르크가 지원돼 독일 통일 과정에서 문화인프라 지원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분야로 꼽힌다. 옛 서독은 이러한 지원까지 통일 비용으로 부담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유기적으로 발전된 문화기반을 지키면서 변화를 만들어 나간 것이 현재 베를린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중요한 요소가 됐다.

현대미술의 경우 처음엔 렌트비가 싸다는 이유로 몰리기 시작한 유럽의 작가들에게 작가로서 일정 경력이 있다면 작가 비자를 통해 거주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경제적 독립성을 보여 주는 은행 계좌 정보가 있으면 비자를 더 쉽게 얻도록 했다. 또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기 시작했다. 작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시스템도 갖췄다. 런던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베를린으로 옮긴 작가 다이앤 바우어는 “사람들이 베를린으로 오는 이유는 렌트비가 싸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작가 및 비평가들이 함께 있는 창조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동독 시절 시작된 ‘베를린 골드 라우슈:예술가 프로젝트(Goldrausch
Knstlerinnenprojekt Art IT)’라는 지역기관을 꼽을 수 있다. 82년 설립된 이곳은 여성 작가들의 전문성 강화를 돕는 곳이다. 매년 15인을 초청해 작가로서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비롯, 미술 시장과 관련된 법적 내용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지난해 이 과정을 마치고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작가 조영주씨의 소감은 이랬다. “지난 1년은 타이트하게 짜인 프로그램을 수행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우연히 알게 돼 지원했는데 작가 입장에서 무척 알차고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다양한 작가들과의 네트워킹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었다.” 동독 시절부터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여성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기관들이 통일 이후 더 활력을 얻고 있음을 보는 것은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옛 동독 지역의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트렌디한 장소다. 갤러리와 디자이너숍·미술관·식당들이 계속 증가하며 글로벌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연방정부는 최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베를린 문화 명소의 하나이자 대형 박물관 콤플렉스인 ‘박물관 섬(museuminsel)’을 2015년까지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을 하기로 했다. 또 베를린 축제극장(Berliner Festspielhaus)과 유서 깊은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 Gropius Bau) 전시장도 보수 후 재개관, 베를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96년에 시작된 베를린 비엔날레도 이제 자리를 잡고 수많은 현대미술 작가를 유혹하고 있다.

통일 이후 20년간의 기간이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통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한 세심하고 배려 깊은 정책이 추진됐다. 그 덕분에 베를린은 한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가 아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21세기 가장 각광받는 문화도시로 부상 중이다. 그리고 이는 통일이라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문화가 만들어 내는 융합의 힘이 과연 무엇이며, 그러한 통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하는 덕목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는 고찰을 다시 한번 해 보게 된다.




미술사 및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런던에 거주하며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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