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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해야 지원한다...큐레이터들, 열린 마음으로 작가 발굴

르 콩소르숌이 기획한 릴 페스티벌에 전시된 김수자의 작품‘플라워 파워’. 사진 르 콩소르숌 제공
2회(1월 24일자)에서 자크 랑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의 차별화된 지역문화 육성정책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디종의 현대미술 지원기관 ‘르 콩소르숌’(Le Consortium)을 잠깐 언급했다. 현대미술 이론이나 전시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지난 30년간 이곳이 미술계에서 어떤 존재 가치를 지녀왔는지 이미 알고 있으리라.얼마 전 파리 출장길에 짬을 냈다. 파리에서 TGV로 1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부르고뉴의 지방도시 디종. 시내 중심에 있는 교회당을 지나 시장 터 부근에서 작은 문을 하나 발견했다. 그 옆 조그만 푯말에 적힌 ‘르 콩소르숌’이라는 글씨가 겸손해 보였다.

이곳은 국가에서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지방 미술관도 아니고 유명 건축가가 지은 전시장도 아니다. 단지 전시 기획력만으로 지금까지의 가치를 만들어 온 곳이다. 르 콩소르숌의 역사는 1977년 디종의 작은 2층 책방에서 시작된다. 현재까지 디렉터를 맡고 있는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와 자비에 두루(Xavier Douroux) 등에 의해 시작된 이 대안적인 공간은 82년 디종시를 통해 현재의 공간을 지원받으며 작가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안식처가 됐다.

다니엘 뷔랑·칼 안드레·리처드 세라·단 그래함·리처드 프린스·솔 르윗 등 거장들이 프랑스에서의 신작 전시 장소로 이곳을 택했다. 왜일까. 당시 파리에는 르 콩소르숌과 같은 해 건립된 퐁피두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프로그램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작가들에겐 함께 의논하고 작품을 만들어낼 동시대 큐레이터들이 필요했다.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산 역시 중요했다. 르 콩소르숌은 여느 기관과는 다른 자세로 작가를 대했다. 이날 만난 디렉터 프랑크 고트로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동시대성’이었습니다. 그것은 시각적인 미술의 형태로 표현될 수도 있고,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것을 존중했고, 그런 비전을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뛰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예산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들이 제안하는 내용이 얼마나 오리지널하고 흥미로운지가 저희에겐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질을 지니고 있어야 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었을까. 국제기획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김승덕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작가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쌓아온 자신들의 가치관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틀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나 새롭게 세상 보는 눈을 갖고 있어야 하겠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은 기발한 제안서였고, 르 콩소르숌은 그 제안들을 작가들과 함께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미국 작가 한스 하케는 르 몽드와 디종의 지방 일간지를 1년간 정기 구독하고 나서 뭘 전시할지 생각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르 콩소르숌은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보석회사 까르띠에의 남아프리카 노동 착취 내용을 폭로하는 하케의 대형 작품이 탄생했다.

또 아나운서의 뒷배경을 다니엘 뷔랑의 작품으로 만들고 아무 고지 없이 한 달간 저녁 TV 뉴스를 진행해오다 마지막 날 스페셜 토크쇼에서 대중과 만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우도 화제가 됐다. 난해한 동시대미술을 대중이 가장 쉽게 접하는 TV를 이용한 경우는 80년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고, 그 아이디어를 기관이 수용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창조적인 사고란 기존의 틀에 안주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산을 투자하고 지원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작가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이 없다면, 아무 결과도 낼 수 없는 것이다.

작가를 선정하고 그들의 작업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르 콩소르숌은 자연스럽게 출판사 ‘레 프레스 뒤 레알’(Les Presses du Real)과 ‘아나 산더스’(Anna Sanders)라는 영화사를 탄생시켰다. ‘레 프레스 뒤 레알’은 미술계 작가들이 가장 초청받아 책을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 중 하나가 됐다. 90년대 초반부터 제작을 시작한 아나 산더스가 만든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2002년)·심사위원상(2004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사업은 어떤 비즈니스 계획에 의해 시작됐다기보다는, 동시대 문화(Contemporary Culture)라는 시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큐레이터들의 비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퍼포먼스·영상·미디어 등의 시각적 문맥이 더욱 넓어지는 현상으로써의 통섭적(interdisciplinary) 미술의 형태가 새로운 트렌드가 된 가운데, 이 같은 형태와 구조를 먼저 발굴하고 진행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르 콩소르숌이 감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르 콩소르숌의 활약을 보면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그들이 일하는 구조다. 일하는 인력은 10명 남짓, 전체 운영 예산의 60% 정도만 지방자치단체 및 국가가 지원한다. 인력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이들은 어떻게 이 많은 전시 프로그램과 출판 및 영화 제작 등을 소화해 내는 것일까.프랑크 고트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부자 기관이라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40% 이상을 차지하는 프로젝트 비용을 자발적으로 충당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외부 전시기획·출판 그래픽 디자인·미술 컬렉션 자문 등 각자 외부 활동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한다”고 털어놓았다.

96년 에릭 트롱시(Eric Troncy)가 새 디렉터로 들어오고, 99년 국제 기획 디렉터로 한국인 김승덕이 초청되면서, 더욱 글로벌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시작한 르 콩소르숌은 사실 이 4명의 큐레이터 출신 디렉터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다. 이들은 ‘동시대 문화를 연구하고 발굴한다’는 개념은 공유하지만, 각자 다양하고 방대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내부 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퐁피두 및 그랑팔레의 프로그램 및 파리 전차 공공 미술, 릴 도시 공공미술 운영 자문으로도 일한다. 안양공공미술제(2007), 발렌시아(2005년) 및 리옹(2003년) 비엔날레와 같은 외부 전시 커미셔너로도 활동하며 주인 의식과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2011년, 이제 르 콩소르숌은 디종시 및 정부의 지원과 개별 투자 등 700만 유로의 예산과 1300평 규모의 아트센터를 개관한다. 건축 디자인은 마스(Mass) 지역에 새로 문을 여는 퐁피두 분관을 건축하는 시게루 반이 맡았다. 공사 현장에서는 여느 아트센터 건축 때와는 다른 감회가 느껴졌다. 아마 30년간 헌신적으로 동시대미술에 불어넣은 노력과 정성이 바람결에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런던 골드스미스대 미술사(MA), 시티대 예술행정(MA)을 공부하고, 지난 10년간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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