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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식민사관 앞장선 조선사편수회 기생·게이샤 끼고 봄나들이 즐기다

 1915년 6월 박은식은 일제에 나라를 앗긴 아프디 아픈 역사를 기록한 『한국통사(韓國痛史)』를 펴냈다. 그는 식민지 사람들에게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 다시 국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부르짖었다. 그의 외침은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였다. 작은 동심원의 궤적들은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이 땅의 사람들의 가슴에 독립에 대한 열망이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일제는 이 책이 나온 지 한 달 만인 1915년 7월 『조선반도사』 편찬 작업에 나섰다. “사람 마음을 현혹시키는 이 책의 해독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를 멸절시킬 방책만을 강구하는 것은 헛되이 힘만 들고 성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전파를 장려하는 것일지 모른다. 금압하기보다 공명 적확한 사서로 대처하는 것이 첩경이다.” 일제는 한민족을 일본에 동화시켜 다시는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하고팠다. 역사 기억을 둘러싼 전쟁은 그때 이미 시작되었다.

1919년 거족적 3·1운동은 우리와 일본인은 본래 한 핏줄인 ‘동족’이니 일본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억설을 일축해 버렸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위한 한국사 왜곡과 사료 편찬 작업은 계속됐다.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됐다. 편수회는 『조선사』 37권을 비롯해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등 식민주의 사관에 입각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책과 자료집을 무수하게 찍어냈다.

일제 강점기 어느 봄날. 따사로운 봄볕이 싫지 않은 듯 차양 밖에 자리 깔고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는 조선사편수회 임원들의 야유회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기생과 게이샤가 함께한 야유회 자리에서 단군조선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깎아내린 이마니시 류(今西龍)나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그리고 일제의 회유에 절개를 굽혀 민족사 왜곡에 일조한 최남선과 이병도 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며칠 내로 일본에서 ‘새역모(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만든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 더해 자유사판 ‘신편 새 역사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기억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을 모양이다. 아직도 일본의 역사시계는 뒤로만 가려 한다. 역사 왜곡에 맞서 싸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가 새삼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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