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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과 중국의 위기 탈출법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들었다. “오늘 또 무슨 우울한 소식이 없는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정말 무엇 하나 시원스러운 것이 없는 때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기업인이나 갈수록 살림살이가 궁색해지는 서민들의 눈빛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는 지금 금융이 산업을 지배해 왔던 거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고 있고 허탈해할 틈도 없이 ‘따로 또 같이’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위기는 이제 막 시작이고 그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엔진이라는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 성공이라는 달콤한 기억도 잠시,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경신하고 있고 ‘집 한 채 사면 다른 한 채를 덤으로 준다’는 광고가 나올 만큼 부동산시장도 얼어붙었다. 이뿐인가, 사회적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실업률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에너지 수급의 불균형도 심해지고 있고 멜라민 파동이나 광산 매몰 사고에서 보듯 사회적 기강이 흐트러져 있으며 밑으로부터의 집단시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미국발 경제위기가 불어닥쳤다.

최근 중국의 인민논단잡지사 등의 공동 인터넷 여론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 설문은 ‘작은 일이 왜 크게 되는가(小事搞大)’라는 것이었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든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73.5%가 ‘법치가 건전하지 못하고 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인치(人治)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도자들이 이러한 사태를 막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하는 방식이 들떠 있고 관리가 느슨하며 현실에 맞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와 고통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국 속담에 ‘사람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멀리 있는 높은 산이 아니라 신발 속에 있는 작은 모래’라는 말처럼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없으면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중국 지도부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공산당 17기 3중전회를 열고 정국타개 방안을 내놓았다. 그 화두는 농촌 경제, 국제경제 위기, 기강 확립이었다. 중국은 최근 발간된 『2008년 중국 외교백서』에 나타난 바대로 미국발 경제위기 가능성을 줄곧 염두에 두어 왔다.

그래서 올림픽 이후 소비위축과 수출부진을 예상하고 내수회복에 총력을 기울였고, 농민들이 경작권을 양도하거나 거래할 수 있도록 토지개혁을 시행하기로 한 것도 민족경제의 내실을 향한 대전환이었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현실화하자 기다렸다는 듯 국무원 부총리를 축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정교한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래서 책임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위와 심복을 막론하고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베는(泣斬馬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여론조사와 중국의 대응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법의 잣대가 자의적이었고 민의는 효과적으로 소통되지 않았으며 말이 행동보다 앞서 나갔다. 아직도 진행 중인 품위없는 인사정책, 동떨어진 정책 우선순위, 인치(人治)의 그림자, 끝도 모를 도덕 불감증이 넓게 퍼져있다. 더구나 문제가 생기면 초기 대응에 실패해 일을 크게 벌여놓기 일쑤였다.

최근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뒷북 대응, 부처 간 엇박자, 심지어 ‘오럴 해저드(oral hazard)’가 드러났다. 그래서 보수에게서 어떤 덕목을 배울 것인지, 보수가 정말 실력이 있기나 한 것인가를 심각하게 묻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신뢰야말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호소했다. 위기극복에 국민적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듣기 위해 모든 국민이 귀를 기울였던 그런 감동이 없다. 이것은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는 서민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고 정부의 팔이 너무나 안으로 굽어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이 잣대를 바꾸어야 한다.

단풍이 한창이다. 나뭇잎들은 겨울나기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뿌리와 줄기에 아낌없이 준 채 지상으로의 낙하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단풍이 더욱 아름답고 그 꽃말도 양보와 절제인지 모른다. 여기에서부터 길을 찾아 긴 행군에 나서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정외과


[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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