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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사람들 <2> 화곡동‘떼제 공동체’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떼제에는 ‘떼제(Taize)공동체’가 있다. 교파를 초월한 수사들의 수도 공동체다. 이곳에선 떼제 특유의 묵상 기도와 노래로 ‘예수’를 찾는다. 그렇다고 수사들만의 ‘닫힌 공동체’가 아니다. 매년 70∼80개국에서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몰려든다. 특히 여름에는 매주 5000명씩 떼제공동체에 들어와 기도와 노래를 체험할 정도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떼제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또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도의 울림’‘침묵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에도 ‘떼제공동체’가 있다. 동북아에선 유일한 곳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주택가 골목 이층집. 이곳에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파견한 외국인 수사 4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오후 7시30분) 떼제의 기도와 노래로 기도모임을 열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개신교 목사도 이곳을 찾는다.


1일 저녁, 그곳을 찾았다. 골목을 몇 번이나 돌다가 겨우 주소(화곡본동 105-51번지)를 찾았다. 출입문 옆에 ‘떼제’라고 적힌 작고 낡은 나무 팻말. 소박하고, 단순했다. 안으로 들어섰다. 8년째 ‘떼제’를 찾는다는 중학교 영어교사 조재선(36)씨는 “다른 기도를 할 때는 경직되는 나 자신이 보인다. 그런데 이 기도는 편하고 자유롭다. 내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느낌,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안토니(66) 수사는 “떼제공동체는 헌금도 안 받고, 선물도 안 받는다. 회원 등록도 필요 없다. 누구든 와서 기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다.

시간이 되자 2층 기도실로 올라갔다. 작고 깔끔한 방이었다. 앞에는 십자가 그림이 그려진 족자가 걸려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대신 큰 양초 네 개가 켜져 있었다. 약 15명의 사람들은 나란히 방석 위에 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건 단순한 침묵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무게의 힘, 깊이의 힘, 위안의 힘이 얹혀 있었다.

그 위로 노래가 흘렀다. ‘떼제의 노래’였다. 뒤에 앉은 안토니 수사가 “어두운 맘 속∼에 주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밝혀주소서”라고 첫 소절을 불렀다. 느리고, 고요하고, 차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마치 마음의 촉수를 ‘톡, 톡’ 건드리는 빗방울 같았다. 사람들은 똑같은 소절을 따라 불렀다. “어두운 맘 속에…주여 영원히…꺼지지 않는 불…밝혀주소서.”그 구절만 계속 반복됐다.

참 묘했다. 거듭 되는 노래에는 분명 ‘힘과 틈’이 있었다. 기도자들은 그 ‘틈’을 타고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깊이 내려갔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랬다. 그건 고요함 속의 절박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짙은 어둠이 깔리는 곳, 거기가 어딘가. 바로 나의 마음, 에고의 마음이다. 그러니 불 밝혀 주십사, 영원히 저물지 않는 불 밝혀 주십사 하는 기도는 간절한 침묵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묵상이 흐르고, 묵상이 끝나면 노래가 흘렀다. 마지막에는 널따란 보자기를 방 가운데 폈다. 그 위에 십자가를 놓았다. 사람들은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다. ‘나’를 위한 기도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남을 위한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소리만 들렸다.

오후 9시, 기도가 모두 끝났다. 사람들은 동그랗게 앉았다. 친구 따라 여길 처음 찾았다는 김보나(26·직장인)씨는 “오늘 기도하면서 ‘멍’했다. 항상 시끄러움 속에 살다가 처음으로 ‘침묵의 의미’를 느낀 것 같다. 성당 미사에도 깊은 의미가 있겠지만, 막상 할 때는 미사 순서를 따라잡기 바빴다. 그래서 의무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선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게 참 좋다. 낯설고, 신기하고, 두근거리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권예란(31·직장인)씨는 “평소 몸이 찼다. 방에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기도와 노래를 통해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하느님께서 날 위로하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떼제공동체가 국내에 들어온 건 1979년이다. 지난 30년간 많은 이들이 떼제의 노래와 기도를 체험했다. 성당은 물론, 개신교 교회에서도 ‘떼제의 노래와 기도’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스위스 출신인 마르크(77) 수사는 “떼제의 노래와 묵상 기도법을 요청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방법을 함께 나눈다”고 말했다. 20년째 화곡동의 떼제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유원혜(직장인)씨는 “프랑스 유학 시절에 ‘떼제’를 처음 접했다. 30대에 ‘떼제’를 시작, 이제 50대가 됐다. 세상에 치여서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떼제’는 나를 씻어내리며 원점으로 되돌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갈 때 외국인 수사들은 문 앞까지 배웅했다. 가벼운 목례와 눈인사.‘세상에 이런 옹달샘도 있구나’싶었다. 그들에게 ‘떼제’는 길이었다. ‘나’를 찾고, ‘예수’를 찾는 길이었다. 문득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장6절)”

글=백성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가톨릭·장로교·루터교 … 초교파 수도 모임
1940년 프랑스에서 창설 … 79년 국내에 상륙


떼제공동체는 1940년 가톨릭의 로제 수사가 프랑스 동부의 떼제라는 작은 마을에 창설한 수도공동체다. 처음부터 가톨릭,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이 모이는 초교파적인 공동체였다.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들을 숨겨 줬고, 해방 후에는 복수의 공포에 떨던 독일군 포로들을 초청해 식사를 나누었다.

수사들이 직접 작곡하는 떼제 노래와 묵상 기도는 이곳의 대명사가 됐다. 86년 이곳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떼제를 지나가는 것은 샘터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젠 매년 영성에 목말라하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국내에는 79년에 들어왔다. 77년 말 김수환 추기경이 홍콩에 들렀다. 우연치않게 그때 로제 수사가 홍콩의 떼제공동체를 방문했다. 김 추기경은 로제 수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했다. 그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한국에 떼제 수사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김 추기경은 72년에 이미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방문, 기도하는 풍경을 보고 감동을 받은 터였다. 떼제 수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 김 추기경은 서울 화곡동에 비어있던 이층짜리 수도원 건물을 거처로 내줬다. 떼제 수사들은 지금도 거기서 살고 있다.



안선재 수사가 말하는 ‘떼제’
말없이 기도하면서 주님 목소리 기다려


떼제공동체의 안선재(66·사진) 수사의 세례명은 안토니다. ‘안선재’는 한국식 이름이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서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는 선재동자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영국 출신인 그는 옥스퍼드대(중세문학 전공)를 졸업했다.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갔다가 ‘떼제’에 반해 수사가 됐다. 필리핀 빈민촌에 파견돼 살다가 80년에 한국에 왔고 94년에 귀화했다. 그에게 ‘떼제의 노래, 떼제의 기도’를 물었다.

-기도 중에 왜 침묵하나.

“기도 중 침묵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거다. 침묵이 꼭 생각하는 침묵은 아니다. 침묵 중에 주님 품에 쉴 수도 있고, 침묵 중에 주님께 모든 걸 맡길 수도 있다. 말보다 침묵 속에서 주님과 더 가깝게 하나되는 것이다.”

-얼마나 침묵하나.

“한 10분 정도 한다. 시간은 중요치 않다. 마음이 답답한 사람에겐 너무 길게 느껴지고, 기도를 잘하는 사람에겐 너무 짧게 느껴진다. 기도하는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말이 너무 많으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그 미풍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떼제 노래는 너무 아름답다.

“떼제 노래는 아름답고, 조용하다. 그렇다고 노래할 때 센티맨탈해서는 안 된다. 그럼 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센티맨탈은 진짜가 아니다.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노래나 기도를 통해 내 안으로 기∼이∼피, 깊∼이 들어갈 뿐이다.”

-떼제공동체는 헌금도 안 받고, 선물도 안 받는다. 뭘로 생활하나.

“직접 번다. 한국에 있는 떼제 수사는 4명이다. 나는 23년간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다 지난해 퇴임했다. 또다른 수사는 다른 일로 돈을 번다. 그리고 각자 번 돈을 모아서 함께 생활한다. 프랑스 떼제공동체 본원에서 받는 금전적 지원은 없다.”

-떼제공동체의 설립자인 로제 수사의 죽음이 안타깝다.

“2005년 8월이었다. 당시 90세였던 로제 수사는 한 루마니아 여성의 칼에 목이 찔려 죽었다. 떼제공동체의 본원 성당에서 기도 중에 말이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로제 수사는 맨 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자 수사 몇 명이 로제 수사를 업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나를 포함해 남은 수사들은 평소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계속했다. ‘그 여성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그게 떼제공동체다 .”

그는 로제 수사의 죽음을 말하며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다. 거기서 ‘떼제의 힘’이 느껴졌다. 그건 삶과 세상, 그리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힘이었다.

글=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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