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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보다 벤처 꿈 선택한 네오이뮨텍 양세환 대표

기자
이상원 사진 이상원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25)
2003년 가을 개봉했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주인공 남녀의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열정과 냉정으로 표현해 큰 인기를 끌었다. 2016년 재개봉됐는데, 전국 1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명작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보여줬다.
 
항암신약개발 스타트업 ㈜네오이뮨텍(NeoImmuneTech-NIT)의 양세환(49) 대표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바이오 회사 대표 하면 차가울 것이라는 흔한 선입견과는 달리 따듯한 영화감독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선택이 중요하다고 밝히는 양세환 ‘네오이뮨택’ 대표. [사진 이상원]

’냉정과 열정 사이’ 선택이 중요하다고 밝히는 양세환 ‘네오이뮨택’ 대표. [사진 이상원]

 
면역항암제 '하이루킨' 임상시험 중
우선 회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했다.  
“포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지도교수가 창업한 제넥신(Genexine)이라는 학내 벤처회사에 입사했어요. 거기서 연구소장, 사업본부장, 경영본부장 등의 경험을 쌓은 후에 2014년 미국에서 창업했습니다.

면역항암제 개발회사로 ‘하이루킨(Hyleukin)’이라는 신약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요. 하이루킨은 면역세포인 T세포를 증폭시켜 암세포의 발견과 파괴를 돕는 물질이에요. 올해 초 미국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을 받아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중입니다.”
 
이공계생들이 흔히 가는 진로는 아니지 않냐고 물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요. 보통은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해외 유명대학으로 포닥(Post-Doctor: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갔다가 귀국해 교수가 되죠. 당시 우리 연구실에서 해외로 포닥을 가지 않고 남은 건 저 하나였으니까요.”
 
포스텍에 남아서 임상개발 할 때 논문들 앞에서 결의를 다지던 시절. [사진 이상원]

포스텍에 남아서 임상개발 할 때 논문들 앞에서 결의를 다지던 시절. [사진 이상원]

 
인생이 걸린 순간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셨나요? 주인공 남녀가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잖아요. 뜨거운 감성으로 만나는 것을 열정, 차가운 이성으로 헤어지는 것을 냉정이라고 표현한 제목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제 인생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의 선택을 반복해 온 것 같습니다. 선택 기준이 현실을 따라가는 것은 냉정이고, 자기 꿈을 따라가는 것은 열정이라 할 수 있겠죠. 열정에 따라 결정하고, 이후에는 냉정에 따라 행동하며 결정에 책임을 지려고 했어요.”
 
실제 맞닥뜨렸던 결정의 순간들을 예로 들어달라고 청했다.
“지금까지 크게 결정적인 순간이 네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01년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남들처럼 해외로 포닥을 할 것이냐 아니면 국내에 남아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임상실험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순간이었어요. 냉정하게 현실을 따른다면 해외로 나가야 했지요. 열정적으로 꿈을 좇아 학교에 남는 선택을 했습니다.”


교수 꿈 접고 학내 벤처에 취업
해외로 나가서 논문을 쓰고 교수 자리를 잡는 것이 꿈을 좇는 것일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저는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했던 일을 비슷하게 반복해 논문을 몇 개 더 쓰고 교수가 되는 것에 그다지 끌리지 않더라고요. 그때 교수님이 제안한 임상실험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였어요. 물론 결과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고 다들 안 될 거라고 부정적인 반응이었죠.

이때 참 우연히도 박사학위 시절 미국 암학회에 갔을 때 처음 만난 어느 선배가 해 준 조언이 기억나더라고요. 미국에서 포닥하던 분이었는데 ‘미국으로 오지 마라, 생명과학 하는 사람 너무 많다, 일도 많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나라면 안 온다’고 했습니다. 고민 끝에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죠.”
 
제넥신 사업본부장, 경영본부장을 맡았던 시절. [사진 이상원]

제넥신 사업본부장, 경영본부장을 맡았던 시절. [사진 이상원]

 
열정에 따라 선택을 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을 던졌다.
“워낙 바빠 후회할 겨를도 없었는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두 번째 ‘냉정과 열정 사이’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그때 막내가 태어나 아이 셋의 30대 중반 가장이 되고 보니 안정된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군데에서 교수 제안이 오기도 했고요.

이때 지도교수로부터 학내 벤처 제넥신 입사를 권유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회사 관련 발표회에 직원들이 참석하니 같이 가서 한번 보기만 하라고요. 신약 물질을 발굴하고, 제품으로 개발해 나가고, 코스닥에 상장하는 등 회사를 키워가는 청사진이 담긴 발표였지요. 서울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가슴이 뛰더군요. 아내를 설득해 또 한 번 열정에 따른 결정을 내렸지요.”
 
과연 청사진대로 일이 잘 진행됐을까에 대해 의심하는 눈초리가 느껴졌는지 양 대표가 먼저 덧붙였다.
“성영철 교수님이 대표이사를, 제가 연구소장을 맡아서 신나게 일했습니다. ‘하이브리드Fc(HyFc)’라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코스닥 상장까지는 잘 진행됐습니다. HyFc 기술을 약에 적용하면 약이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것을 막아 약효를 크게 증가시켜 주고, 매일 투여하는 약을 한 달에 1번이나 2번만 투여하는 약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환자에게 큰 도움을 주는 기술로, 지금은 제약회사라면 거의 다 알 정도로 유명하죠.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될 때쯤, 세 번째 ‘냉정과 열정 사이’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그냥 연구소장을 계속하고 싶은데, 회사로부터 사업본부를 맡아보라는 제의를 받았죠. 기술을 아는 사람이 사업도 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요.

이 시기에 회사 주식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임시로 경영본부장도 맡았습니다. 재무·회계를 담당했던 본부장이 퇴사하면서 제가 그 역할까지 맡은 것이죠. 당시에는 힘든 선택이었습니다만,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주 종목인 연구 외에 사업·재무·인사 등 회사의 중요한 업무를 경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되었죠.”


네 번째 ‘냉정과 열정 사이’의 선택 
창업 초기 신약개발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양 대표와 임직원들. 왼쪽부터 사업본부장 박재한 이사, 있는 양세환 대표, 이병하 연구실장, 강정구 운영본부장. [사진 이상원]

창업 초기 신약개발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양 대표와 임직원들. 왼쪽부터 사업본부장 박재한 이사, 있는 양세환 대표, 이병하 연구실장, 강정구 운영본부장. [사진 이상원]

 
공학박사, 과학자라고 하면 비교적 보수적이고 안정적일 듯한데 의외로 도전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인 것 같아 물어봤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요. 그런 성격 때문에 40대 중반에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의 선택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제넥신도 자리를 잡아 안정된 상태였고 글로벌로의 진출을 모색할 때였어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가 미국으로 가겠다고 자원을 했죠. 새롭게 창업을 해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라는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주위에서는 그동안 번 돈으로 미국에 건물 사 자회사를 만든 다음 가면 임대료, 월급, 체재비를 받으며 편히 살 수 있지 않냐고 말렸어요. 그렇지만 그냥 밀어붙였고 당시 벌었던 대부분의 돈을 스타트업 회사인 네오이뮨텍에 투자했습니다. 모두 걱정하는데 회장님과 저만 서로 박수 치며 응원해 줬습니다.”
 
미국에서 창업한 지 4년째인데 현재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다만 직원들과 똘똘 뭉쳐 개발 중인 ‘하이루킨’이 미국에서 반응도 좋고 임상실험도 잘 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유치한 투자금도 400억 원 가까이 되고 시가총액도 1000억 원이 넘는 등 순항 중입니다. 미국 임상이 본격화했고, 내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미국, 중국, 한국을 오가면서 다이나믹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넨텍에서 발표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왼쪽부터 박재한 전략본부장, 남수연 의학본부장, 이병하 연구실장, 양세환 대표. [사진 이상원]

제넨텍에서 발표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왼쪽부터 박재한 전략본부장, 남수연 의학본부장, 이병하 연구실장, 양세환 대표. [사진 이상원]

 
본인 입으로 말하기 조금 쑥스러울 수 있겠지만 ‘아, 내가 성공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었는지, 있다면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 벤처기업 ‘제넨텍(Genentech)’이라고 있습니다. 시가총액 100조원이 넘던 바이오텍 회사로, 글로벌 제약기업 ‘로슈’가 인수했죠. 작년에 제넨텍 과학자 임원 20명 앞에서 ‘하이루킨’을 소개했습니다.

미팅이 끝난 다음 고생한 임직원들과 맥주 한잔하고 있는데 바로 연락이 왔어요. 멋진 발표였고, 우리랑 공동개발하기로 즉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이때 마치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최고의 회사, 최고의 과학자들에게 인정받은 거니까요.”
 
비슷한 선택의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부탁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고 권해 주고 싶어요. 열정으로 선택하고 냉정으로 준비하면서 눈앞의 이익보다는 조금 멀리 보면서 뚝심으로 버티면 10년, 20년 단위의 승부에서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5~10년 이내 '매출 1조 클럽' 가입할 터
지도교수, 직장상사, 멘토인 성영철 제넥신 회장과 함께. [사진 이상원]

지도교수, 직장상사, 멘토인 성영철 제넥신 회장과 함께. [사진 이상원]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아달라고 청했다.
“1991년 신입생 시절 첫사랑으로 만나 7년간 연애하고 결혼한 아내죠. 남들이 뭐라 해도 항상 제 편에서 믿고 참으면서 기다려주었고, 바쁜 저를 대신해 우리 가정을 밝게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이래 거의 25년 가까이 지도교수, 직장 상사, 멘토가 되어 주신 성영철 회장님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은 직관적이고 빠르고 카리스마 넘치고, 저는 잘 소화해 기획하고 집행하고 두루두루 잘 챙기는 등 콤비가 잘 맞습니다.”
 
혹시 앞으로 예상되는 또 한 번의 ‘냉정과 열정 사이’ 선택의 순간이 있을지 궁금했다.
“내년에 상장하고 신약개발에 성공하고 5~10년 이내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자가 돼 생명공학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을 돕고 싶어요. 돈도 투자해 주고 경험과 노하우도 전수해 줄 겁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강연도 듣고 도움도 받을 수 있게 만남의 기회도 만들어 줄 거에요. 말로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가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잖아요. ‘가라’가 아니라 ‘가자’라고 해야죠.”
 
마지막 꿈과 계획에 대해 들으면서 양 대표가 실행 중심의 뚝심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내내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운이 좋았어요’, ‘너무 좋은 얘기만 하는 것 같아요’, ‘결과론이죠’라며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면서도 회사의 계획과 남을 도울 꿈 부분에서는 꽤 신이 나 설명했다.  조금도 즉흥적으로 꾸며낸 얘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양 대표의 꿈이 실현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 암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 함께 고생하고 있는 회사 임직원에게는 고생 끝의 낙이 될 것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그의 꿈이 실현되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양세환 대표 같은 사람이 가진 힘이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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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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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