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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 D-DAY…성소수자 인권 바꾼 ‘세기의 판결’은?

① “사건 본인 윤씨의 성별을 ‘남’에서 ‘여’로 정정한다”
 
2002년 부산지법은 국내에서 최초로 성전환자 대한 호적 정정을 허가했다. 이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성별 정정 재판에서는 ‘성염색체’설이 우세했다. 성염색체설의 요지는 인간의 성은 태아 시기 성염색체의 구성에 의해 구분되며, 외관상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서 염색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성별을 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고종주 부산지법 판사는 성전환자 호적 정정을 허가하며, 당시 언론을 통해 “성 전환 수술 이후 호적상 성별과의 차이로 사회활동에서 겪는 어려움이 너무 큰 만큼 성별 전환을 통해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이후 보수적인 법조계에서조차, 성별은 단순히 염색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 생활에서 수행하는 성 역할(사회적 성)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정신적 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2009년 7월 28일 열린 2009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서 트렌스젠더 최한빛(한국에술종합학교 무용원 재학)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2009년 7월 28일 열린 2009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서 트렌스젠더 최한빛(한국에술종합학교 무용원 재학)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같은 해 12월 인천지법에서는 연예인 하리수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정정 허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변화는 2006년 50대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신청을 허가한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이어졌다. 
 
② “피해자는 호적상 남자지만, 여성으로 살아온 점이 인정되므로 강간죄가 성립한다”
 
2009년 부산지법은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피고인에게 최초로 강간죄를 적용했다. 당시 형법은 강간죄의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했다. 즉, 남성이나 성전환자를 강간해도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당시 이용훈(오른쪽)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호적상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내라는 결정문을 읽고 있다.[중앙포토]

2006년 당시 이용훈(오른쪽)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호적상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청주지법으로 돌려보내라는 결정문을 읽고 있다.[중앙포토]

 
당시 사건에선 성전환 수술을 받은 피해자를 ‘부녀(婦女)’로 볼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1996년 비슷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성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으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남자로 생활한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성전환자인 피해자를 ‘부녀’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강간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3년 뒤인 2009년 부산지법은 “형법상 강간은 부녀자로 한정돼 있지만 김씨가 30여년 간 여성으로 살아왔으며, 적절한 절차를 거쳐 육체적으로도 여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는 점과 여성으로서 완벽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범행이 이뤄질 당시 여성으로서 피해를 입은 것이 인정된다”며 강제추행죄가 아닌 강간죄를 적용했다. 이는 법원이 형법상으로 성전환자의 정체성을 인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③ “동성 군인 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위법 행위가 아니다”
 
2018년 서울북부지법은 동성 군인 간 성관계에 대해 첫 무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2월 22일 다른 부대 소속 장교와 동성 간 성관계를 맺은 예비역 중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군형법 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군인이 동성 간 성관계를 맺으면 합의 여부과 상관 없이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간통죄 폐지 이후 합의된 성관계를 형사 처벌하는 법은 군형법이 유일하다.
 
지난해 7월 15일 오후 퀴어축제 행사로 경찰 펜스가 세워진 서울광장 바깥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상지 기자

지난해 7월 15일 오후 퀴어축제 행사로 경찰 펜스가 세워진 서울광장 바깥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상지 기자

법조계 안팎에서도 군형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비판이 수차례 나왔으나 헌재는 2002년과 2011년, 2016년 3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결정 당시 헌재는 “군 내부의 건전한 공적 생활과 성적 건강을 유지하는 등 군기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동성 군인 사이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북부지법은 헌재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북부지법은 판결문을 통해 “군형법 조항의 보호법익은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라며 “당사자들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구강 성교, 항문 성교 등의 성적 만족 행위가 이 같은 보호 법익에 위해를 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변화를 속단하긴 이르다.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인숙 변호사는 “같은 시기 군형법 92조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군인 8명 중 북부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A 중위 1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군사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며 “A 중위 역시 검찰의 항소로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2017년 5월 24일 군형법 제92조 6항을 폐지하는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중앙포토]

2017년 5월 24일 군형법 제92조 6항을 폐지하는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중앙포토]

 
한편 인천지법은 지난해 2월 17일 군형법 92조의6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헌재에 1년 넘게 사건이 계류돼 있다. 헌재가 대체복무제 등에 대해 전향적 판단을 내리면서, 군형법에 대해서도 과거의 합헌 결정을 뒤집는 결정이 나올지 주목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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