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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자서 내려왔을 때 홀가분 … 바둑은 승패 싸움 아니야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일인자로 군림한 김인 9단. 올해로 입단 60년을 맞이한 김 9단은 ’ 최근 바둑은 스포츠가 되면서 승부를 중시한다. 마음과 실력의 조화를 중시했던 과거가 그립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일인자로 군림한 김인 9단. 올해로 입단 60년을 맞이한 김 9단은 ’ 최근 바둑은 스포츠가 되면서 승부를 중시한다. 마음과 실력의 조화를 중시했던 과거가 그립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거칠 것 없었던 ‘일인자’ 김인 9단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중반부터다. 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9연패를 기록 중이던 조남철 9단을 꺾고 국수를 물려받았으니, 그의 독주 시대는 10년을 채우지 못한 셈이다. 후배 기사들은 김 9단이 약해진 걸 틈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1974년 조훈현 9단은 부산일보 최고위전에서 김인 9단을 3대 0으로 꺾고 첫 타이틀을 따내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조 9단뿐 아니라 다른 신예기사들도 김 9단을 위협했다. 같은 해 ‘한국의 면도날’로 불리던 정창현 9단이 기왕에서 우승했고, 76년 속기파 김희중 9단이 기왕을 이어받는 등 절대군주였던 김 9단이 어느덧 일개 성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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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9단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상하게도 일인자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며 “일인자 자리에 있는 내내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후배의 앞날을 내다봤던 걸까. 김 9단에게 국수 자리를 물려줬던 조남철 9단은 1966년 제10기 국수전 축하연 자리에서 김 9단에게 “국수로 처신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인 9단은 이후 승부사에서 서서히 물러났지만, 바둑계를 멀리 떠나지는 않았다. 농심신라면배 한국팀 단장, 시니어바둑리그 대회장 등을 맡으며 대회가 열릴 때마다 시합장을 찾아 후배들과 함께했다. 김 9단은 “사실 승부사를 떠나면 프로기사직을 은퇴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은퇴하고 난 뒤 바둑계와 연이 점점 끊어지는 게 싫었다. 아직은 바둑 동네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 9단은 현장에서 만나는 후배에게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후배에게 직언하는 게 예전 같지 않아졌다. 김 9단은 “이세돌까지만 해도 내가 바둑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박정환부터는 나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세대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쉽게 이야기를 붙이기 어렵다”고 했다.
 
1977년 조훈현 9단(왼쪽)과 왕위전 타이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김인 9단. [사진 한국기원]

1977년 조훈현 9단(왼쪽)과 왕위전 타이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김인 9단. [사진 한국기원]

어린 후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자 김인 9단은 “요즘 후배들은 우리 세대와 다르게 술과 담배 등에 대한 절제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때만 해도 선후배들 술자리가 많았고, 뒤풀이가 있으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음날 대회가 있건 없건 무조건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다”며 “나는 그렇게 살았지만, 후배들에게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내가 평생 술을 많이 마셔서 그 단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후배들에게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승패에만 집착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인 9단은 “지금은 바둑을 스포츠로 보고 승패만 중요시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둑이 스포츠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고한 오청원(吳淸源) 9단이 ‘바둑은 조화’라고 했다. 한 수 한 수가 조화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둑 공부뿐 아니라 심신 수양도 필요하다. 요즘엔 이런 부분이 잊히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했다.
 
최근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미투’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김인 9단은 “나는 김성룡이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그를 봐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일단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 대처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사과하던 의견을 표명하던 공개적인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인 9단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그는 “나는 진정한 고수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 바둑은 세계를 제패하고 찬란한 개화기를 맞이했다. 이점만은 분명 나로서 미력하나마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나의 바람은 오늘날 한국 바둑을 유지·발전시켜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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