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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기싸움서 졌다"···이재명의 명찰 굴욕

이재명 경기지사. 오른쪽 아래 사진은 경기도가 만든 명찰 제작 시안 [사진 연합뉴스ㆍPixabay]

이재명 경기지사. 오른쪽 아래 사진은 경기도가 만든 명찰 제작 시안 [사진 연합뉴스ㆍPixabay]

6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경기도청 북부청사 로비.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정진상 경기도 정책실장이 유관희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마주쳤다. 정 실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그를 보좌한 측근이다.
 
이 자리에서 유 위원장은 이 지사의 명찰 패용 지시에 대해 정 실장에게 항의했다. 유 위원장은 “이미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일하는데 명찰 추가 패용을 왜 강제하느냐”며 “예산낭비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 지사에게도 이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비서실장에겐 전화로 항의했다. 결국 경기도는 노조에 “공무원 명찰 제작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 직원 반발에 이 지사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명찰 패용에 대한 경기도 공람 자료 [연합뉴스]

명찰 패용에 대한 경기도 공람 자료 [연합뉴스]

이재명 지사의 도정 리더십이 취임 1주일 만에 암초를 만났다. 첫 암초는 ‘명찰 리더십’ 논란이다.
 
이 지사는 5일 “도민 앞에서 책임감을 갖고 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공무원 명찰 제작과 패용을 지시했다. 명찰을 달아야 하는 대상은 5049명 전원이다.
 
노조가 즉각 반발하며 낸 입장은 크게 3가지다. ▶도청은 광역지자체로서 대민업무보다 정책업무를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명찰을 달고 일하는 실익이 없고 ▶기존 공무원증 이외의 신규 명찰을 제작함으로써 예산 낭비가 우려되며 ▶가슴에 다는 명찰이어서 옷감 훼손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경기도청공무원노조의 명찰 패용 관련 입장문 [사진 경기도청공무원노조]

경기도청공무원노조의 명찰 패용 관련 입장문 [사진 경기도청공무원노조]

 
반면 경기도는 9일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설명자료를 통해 ▶이름과 직위를 쉽게 알도록 해 책임 행정을 강화하고 ▶기존 공무원증은 글씨가 작아 상대방이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명찰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대민업무가 별로 없다’는 노조 입장에 대해서도 경기도 고위관계자는 “총무과와 같은 정책 현장과 거리가 있는 부서도 외부 기관과 미팅을 하게 된다”며 “꼭 정책의 직접 수요자를 만날 때만 명찰을 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다만 경기도는 직원과의 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한 도 관계자는 “유니폼이나 명찰과 같은 의복을 지정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획일성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하고 직원 설득을 해야 했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형수 지사 비서실장도 “앞으로 의견 수렴을 거쳐서 이 지사의 선의가 오해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망자 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서울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사망자 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이 지사 측에선 노조와의 취임 초 기싸움에서 이 지사가 물러선 점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도 관계자는 “노조가 이 지사 취임 초기에 뭔가 기선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며 “조합원들에게 ‘뭔가 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명찰 문제를 세게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도 관계자도 “경기도에 노조가 3곳이나 있다 보니 이 지사 취임 초 서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과정에서 명찰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도가 명찰 제작 무기한 보류를 결정했지만, 이미 전체 물량의 15%(760명분)는 제작을 물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전형수 비서실장은 “이미 제작된 명찰에 대해서도 패용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게 이 지사의 뜻”이라며 “직원이 자율적으로 활용 방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도청 직원 760명은 새 명찰을 달지, 책상이 둘지 고민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한편 이 지사가 속한 더불어민주당 일부에선 “노조가 이른바 ‘비문’ 세력의 차기 대선 주자인 이 지사를 공격하기 위해 명찰 논란을 일으킨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진상 실장은 “정파성의 시각을 버리고 순수하게 직원과의 소통 문제로만 명찰 논란을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수원=최모란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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