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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중앙일보 국방부 출입기자

포탄 대신 삽·쟁기 든다···'지뢰제거 전차' 첫 도입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칼을 쳐서 보습(쟁기 끝에 붙은 쇠붙이)으로(Swords into plowshares). 성경에선 평화가 온 시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래서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엔 한 남성이 무기인 칼을 내리쳐 농기구인 쟁기로 만드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다.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앞에 있는 '칼을 보습으로' 동상.  [사진 위키피디어]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앞에 있는 '칼을 보습으로' 동상. [사진 위키피디어]

 

그렇다면 포 대신 삽과 쟁기, 굴삭 팔로 무장한 탱크는 평화의 무기일까. 공병 전차 얘기다. 요즘엔 장애물 개척전차라고 부른다. 튼튼한 장갑이 있어 기갑부대 선두에서 기동로를 개척하고 지뢰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 탱크다. 미국 육군에선 좀 더 공격적인 어감을 가진 강습돌파전차(Assault Breacher Vehicle)로 분류한다.
 
한마디로 평화의 무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전면전에서나 쓰는 무기’라는 이유로 한동안 한국에서 도입 사업이 진행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대통령의 의지, 정주영의 혜안, 군의 소망이 서린 탱크 
 
한국 육군도 드디어 장애물 개척 전차를 보유하게 된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국산 장애물 개척 전차가 시험평가를 모두 통과해 전투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5일 밝혔다. 시험평가 항목엔 실제 지뢰지대에서 통로를 개척하는 능력의 검증도 포함됐다.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뒤 2020~2023년까지 70여 대를 배치하는 게 방사청의 목표다.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그런데 장애물 개척전차 도입 사업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DMZ) 유해 발굴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다. DMZ에서 유해 발굴을 하려면 이 지역에 대량으로 매설한 지뢰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다.
 
장애물 개척전차의 제조사인 현대로템 관계자는 “고 정주영 회장은 1990년대 ‘남북관계가 발전하면 지뢰 제거가 가장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관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그래서 우리 회사가 자체적으로 기술을 축적했다”고 귀띔했다. 장애물 개척 전차는 문 대통령의 의지, 고 정 회장의 혜안, 육군의 소망이 서린 무기라 할 수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 사담 라인 돌파의 주역 
 
전 세계 육군이 장애물 개척 전차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91년 걸프전부터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은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각종 장애물과 지뢰로 ‘사담 라인’ 방어선을 구축했다. 미국 육군은 사담 라인을 뚫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했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미클릭(MICLICㆍ줄에 폭탄을 줄줄이 단 폭탄)을 지뢰지대에서 터뜨린 뒤 특수 쟁기를 단 탱크가 진격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여러 나라의 육군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 전용의 탱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지난달 전투적합 판정을 받은 장애물 개척 전차의 모습. [사진 방사청]

 
한국 육군도 장애물 개척 전차를 오랫동안 원해 왔다. 육군은 1994년 공병전차가 필요하다며 소요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매번 전력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육군 지휘부가 진짜 탱크도 아닌 공병용 탱크를, 그것도 비싼 돈을 주고 사올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1~2002년 DMZ에서 서해선(개성공단)과 동해선(금강산) 도로를 닦을 때 군 당국은 민간 장비를 빌려와 지뢰를 제거해야 했다.
 
26년 만에 장애물 개척 전차 육군에 배치
 
방사청은 2014년에서야 현대로템과 함께 장애물 개척 전차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이런 종류의 탱크는 전면전에서나 필요한데 전면전의 가능성은 아주 작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관련 사업이 승인됐다. 2020년 장애물 개척전차가 일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하면 26년 만에 꿈을 이루는 셈이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한국 육군에 있어 그동안 지원차량은 구난전차와 교량전차가 전부였다”며 “장애물 개척전차 도입으로 기동전을 위한 장애물 돌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애물 개척전차는 기동(기계화) 부대 선두에 서서 장애물을 치워 진로를 열면서, 필요할 때 민간인통제선 지역 등 전방의 지뢰 위험지역에서 지뢰를 제거한다. 이를 위해 장애물 기동 전차는 K1A1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지뢰제거 쟁기, 굴삭 팔, 통로표식 장비, 자기감응 지뢰 무능화 장비 등을 달았다.
 
3단계로 지뢰를 말끔히 제거 
 
장애물 개척전차는 3단계를 거쳐 지뢰를 무력화한다. 먼저 미클릭을 지뢰지대를 향해 발사한다. 미클릭은 100m 구간의 지뢰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다.
 
장애물 개척 전차의 지뢰제거 쟁기. 땅을 고르면서 땅속 지뢰를 파낸다. [사진 방사청]

장애물 개척 전차의 지뢰제거 쟁기. 땅을 고르면서 땅속 지뢰를 파낸다. [사진 방사청]

 
이후 장애물 개척전차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지뢰제거 쟁기로 땅속에 묻힌 지뢰를 파내 통로 옆으로 밀어낸다. 쟁기 날로 지뢰를 홁과 함께 떠내기 때문에 지뢰가 터지진 않는다. 이렇게 하면 장애물 개척 전차를 따라 폭 4.2m의 지뢰 안전 지대가 만들어진다.
 
자기감응 지뢰 무능화 장비의 작동 원리. [사진 방사청]

자기감응 지뢰 무능화 장비의 작동 원리. [사진 방사청]

 
자기감응 지뢰는 자기감응 무능화 장비로 상대한다. 자기감응 지뢰는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터지는 방식이 아니라 금속물체가 접근하면 폭발하는 방식의 지뢰다. 자기감응 지뢰는 코일에 전류를 흘려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 전방으로 이 자기장을 쏴서 미리 터뜨리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자기감응 무능화 장비는 5m 이상 앞의 자기감응 지뢰를 폭파시킬 수 있다.
 
장애물 개척 전차는 굴삭 팔에 버킷을 달면 민간 굴삭기처럼 땅을 팔 수 있다. 버킷말고도 다앙햔 부가장비가 준비됐다. [사진 방사청]

장애물 개척 전차는 굴삭 팔에 버킷을 달면 민간 굴삭기처럼 땅을 팔 수 있다. 버킷말고도 다앙햔 부가장비가 준비됐다. [사진 방사청]

 
장애물 개척 전차는 앞에서 보면 오른쪽엔 굴삭 팔이 달렸다. 이 굴삭 팔로 바리케이드나 무너진 돌을 치울 수 있다. 굴삭 팔은 민간용 굴삭기와 같이 버킷ㆍ브레이커ㆍ집게 등 다양한 부속장비를 장착할 수 있다.
 
장애물 개척 전차의 통로표식장비. 안전한 통로를 알려주는 표식을 자동으로 땅에 꽂아 준다. [사진 방사청]

장애물 개척 전차의 통로표식장비. 안전한 통로를 알려주는 표식을 자동으로 땅에 꽂아 준다. [사진 방사청]

 
장애물 개척 전차가 지뢰와 장애물이 없는 안전통로를 개척하면 이 통로를 가리키는 봉을 자동으로 꽂아주는 장비도 있다. 장애물 개척 전차는 전반적으로 안전통로 개척 작업을 사람이나 개별 장비로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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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애물 개척 전차는 승조원은 2명이다. 무장으론 기관총 1정이며 연막탄 발사기도 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도 활약한 장애물 개척 전차
모래를 단단히 다지는 보빈을 단 탱크. [사진 Tanks Encyclopedia]

모래를 단단히 다지는 보빈을 단 탱크. [사진 Tanks Encyclopedia]

 
장애물 개척 전차의 역사는 탱크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영국 육군이 탱크를 처음 전투에 투입했다. 당시 탱크는 구멍이나 참호와 같은 장애물을 메우기 위해 장작을 싣고 다녔다. 
 
또 영국 육군의 일부 부대에선 트랙터에 간이 다리를 붙여 끌고 다녔다. 이 다리는 3분이면 2.5m가량의 장애물을 넘는 다리로 변신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육군은 마크5 전차에 간이 다리와 롤러를 단 공병 전차를 실험적으로 운용했다. 롤러를 밀면 땅속 지뢰를 터뜨려 통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실전배치로 이어지진 않았다.
 
쇠도리깨로 지뢰를 폭파하는 크랩(crab)을 단 탱크 [사진 Panzerserra Bunker]

쇠도리깨로 지뢰를 폭파하는 크랩(crab)을 단 탱크 [사진 Panzerserra Bunker]

 
본격적인 장애물 개척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왔다. 영국 육군 공병대의 장군인 퍼시 클랙호른 스탠리 호바트 경의 이른바 ‘우스꽝스러운 것들’(Funnies)이다. 당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은 노르망디를 비롯한 프랑스 해안에 강력한 방어선인 ‘대서양 장벽’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 호바트 장군은 독일의 방어선을 뚫는 목적으로 다양한 탱크를 개발했다. 주로 탱크에다 달았다 뗄 수 있는 부착장비 들이다. 그 가운데 장애물 개척과 관련한 장비는 ▶콘크리트 벽에 폭탄을 설치한 뒤 뒤로 물러나 터뜨리는 고트(Goatㆍ염소) ▶강과 구덩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ARK, 해변의 무른 모래를 카펫과 같은 장비로 단단히 다지는 보빈(Bobbinㆍ실을 감는 실패) ▶지뢰를 롤러로 밀어 제거하는 불스혼(Bullshornㆍ쇠뿔)과 쇠도리깨로 내리쳐 기폭시키는 크랩(Crabㆍ게) 등이 있다. 
 
요즘 장애물 개척 전차의 시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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