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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바다 속에 잠긴 산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통영에 처음 오면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인지 헷갈린다. 동해나 서해에서는 바다 쪽을 기준 삼아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통영에선 잘 먹히지 않는다. 길 앞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남쪽으로 여겨 달리다 보면 느닷없이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바다가 나타난다. 게다가 통영대교와 충무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넌다. 방향은 고사하고 어디까지 뭍이고 어디부터 섬인지조차 헷갈린다. 지도를 보면 통영은 학의 목처럼 가느다란 길로 뭍과 연결되고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다. 그리고 뭍보다 큰 미륵도가 운하를 사이에 두고 통영대교와 충무교로 이어진다. 이러다 보니 바다는 동서남북으로 보이고 길은 단순하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헷갈릴 수밖에 없다.  
 
통영까지 오는 길을 물으면 통영 IC 대신 북통영 톨게이트 쪽으로 알려준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따라 진주를 거쳐 북통영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온다. 바다를 메운 죽림 신도시를 지나면 언덕이 보이는데 원문고개다. 이 고개를 넘으면 절로 짧은 숨이 터져나온다. 종려나무가 늘어선 가파른 내리막길 아래로 섬과 섬을 닮은 뭍과 연못 같은 바다가 펼쳐진다. 고속도로가 완공되고 죽림으로 터미널을 옮기기 전까지 모두 이 길을 거쳤다. 통영 사람들한테는 원문고개를 넘으며 보는 섬과 바다, 바람과 하늘이 곧 고향이었다.  
 
실제로 통영엔 섬이 많다. 한산도ㆍ욕지도ㆍ사량도ㆍ연화도처럼 사람이 사는 섬은 40여 개이며 무인도는 520개가 넘는다. 통영이 섬을 닮았고 섬까지 많다 보니 ‘통영이 곧 섬’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섬이 많다 보니 섬과 관련된 이야기도 참 많다. 그 중에 ‘성룡’ 섬 이야기도 있다. 십여 년 전에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바다 쓰레기를 줍는 성룡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는 명예시민 홍보대사로서 “나 혼자 쓰레기를 주우면 20년이 걸리겠지만 시민 여러분이 다함께 주우면 하루 만에 주울 수 있습니다”라며 바다 환경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그때 통영이 너무 좋아서 비밀리에 섬 하나를 통째로 샀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다.(비밀리에 샀으니까요!) 아무튼 빨간 니트에 흰 바지 입고 쓰레기 줍는 성룡 사진은 지금도 통영시청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통영이 섬이고 섬이 가장 큰 자산인데도 통영 사람들은 어째 섬보다 뭍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하려면 섬 아닌 뭍에서 하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집값이나 임대료도 같은 조건이라면 뭍이 더 비싸다. 심지어 뭍이냐 섬이냐 따질 거 없이 통영 사람은 아예 통영을 벗어나야 출세한다고까지 한다. 왜 그런지 무척 궁금하다.  
 
섬이란 바다에 잠긴 커다란 산이다. 섬에 오른다는 건 곧 물이 차오른 산마루부터 시작해 끝까지 오르는 일이다. 몇십 미터만 오르면 꼭대기라고 여기다간 식겁한다. 보기보다 훨씬 가파르고 거칠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통영 사람들에게 섬은 여전히 섬이다. 하지만 통영 밖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산 꼭대기가 아닐런지. 그래서 통영 사람은 떠나야 된다는 말 뒤에 꼭 “객지 사람은 통영에서 출세한다”고 덧붙이나 보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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