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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예산 흥부네 이불 같아 … 현 지방자치는 ‘2할 자치’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이 ’지방자치를 강화해 주민들의 손에 잡히는 실사구시 정책을 펼쳐야 실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이 ’지방자치를 강화해 주민들의 손에 잡히는 실사구시 정책을 펼쳐야 실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대표로 뽑힌 자들이 유권자의 뜻을 얼마나 책임 있게 정책에 반영하느냐가 민주주의 성패를 좌우한다. 동시에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탄탄한 기반을 필요로 한다. 복잡 다양해진 사회 구조 속에서 주민들의 실제 삶의 질을 높이려면 중앙정치 못지않게 지방자치의 내실화가 필수다.
 
지난달 6·13 지방선거에서 243명의 광역·기초단체장이 뽑혔다. 앞으로 4년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일꾼들이다. 하지만 풀뿌리 자치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엔 여전히 법적·제도적 제약이 산적해 있다. 뭐가 문제고 해법은 무엇일까. 지난 8년간 기초단체장을 지낸 뒤 퇴임한 유종필(61) 전 서울 관악구청장을 만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지방자치의 현실과 과제 등을 들어봤다.
 
초등학생 용돈 타듯 서울시에서 돈 받아야
 
구청장을 해보니 어떻던가.
“중앙정치보다 훨씬 보람도 컸지만 현실적 한계 또한 실감했던 8년이었다. 무엇보다 말이 자치단체지 재정자치가 안 돼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원 배분이 8대 2 정도로 격차가 크다. 말 그대로 2할 자치인 셈이다. 서울도 조정교부금까지 다 합해도 서울시와 25개 구가 7대 3인 구조다. 이래선 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사업을 할 수가 없다. 초등학생이 용돈 타서 쓰듯이 매번 서울시 심사를 거쳐 돈을 받아와야 하는 현실이다. 서울시 담당 팀장·과장·국장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 행정력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 등 법 개정을 통해 재원 배분율을 재조정하는 게 시급하다. 관악구 주민의 사정은 서울시장보다 관악구청장이 더 잘 알지 않겠나. 대통령도 지방자치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이게 현실화되려면 재정자치가 첫째 과제다. 돈이 없는 자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자체 예산은 흥부네 집 이불과 같다. 식구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이불은 작으니 여기저기서 잡아당기느라 아우성이다. 솔직히 이런 구조에선 세종대왕이 맡아도 명구청장 소릴 듣기 힘들겠다 싶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 선진국 사례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얼마 전 헌법을 개정해 제1조 1항에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뤄진다’고 명시했고, 스웨덴도 정부조직법 제1조에 ‘민주주의는 대의제와 지방자치를 통해 실현된다’고 적시하며 지방자치와 대의제를 동격에 올려놨다. 게다가 선진국은 대부분 중앙 대 지방 재원이 5대  5 비율이다. 우리도 한 번에 개선하긴 쉽지 않더라도 3할 자치, 4할 자치까지 꾸준히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또 다른 한계가 있다면.
“입법자치도 중요한 과제다. 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조례를 만들고 싶어도 상위법에 근거가 없으면 무조건 만들 수 없게 해놨다. 법 취지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주민들 스스로 자치 조례를 만들 수 있도록 융통성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양성 아닌가. 세계적으로도 주민과 밀착돼 있는 지자체에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추세다. 그래야 주민들 요구를 훨씬 신속하게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책 배달 ‘지식 도시락 서비스’ 작년 46만 권
 
실제 주민들을 접하며 느낀 소회는.
“주민들의 열정과 지역사회의 다양성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임이나 단체가 하루가 다르게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독서모임만 해도 600개가 넘는다. 주민을 만날 때마다 건의 사항이나 아이디어를 받아 적었는데 8년간 7600건이 모였더라. 주민들이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알고 보니 지방에 길이 있었고 지방이 블루오션이었다. 지방의 잠재력을 일깨워야 활력 넘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중앙정부나 여의도 정치권은 자치와 분권에 대한 인식과 국민의 구체적 삶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결국 지방분권만이 살길이라는 게 구청장 8년 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자면.
“처음부터 사람 중심 관악구를 만들어 삶의 질을 높여 드리겠다는 게 목표였다. 지식복지 개념을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관악은 달동네의 대명사였지 않나. 지금은 다 재개발되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숲이 올라갔다. 하지만 문화가 뒤따르지 않다 보니 삭막한 사막 같은 동네가 돼버렸다. 주민들도 문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동네 작은 도서관부터 확충했다. 상상 외로 호응이 좋아 취임 초 5개였던 게 43개로 늘어났다. 책을 직접 가져다주는 지식 도시락 배달 서비스도 인기가 높아 지난해에만 46만 권을 배달했다. 아, 주민들이 큰 것만 원하는 게 아니구나, 피부에 와닿는 프로그램을 더 원하는구나 싶었다.”
 
아쉬움은 없나.
“주민들의 실제 소득까지 올려 드리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현실적으로 구청장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더라. 그나마 서울대와 협력해 실리콘밸리의 초기 단계쯤 되는 관악벤처밸리의 틀을 만든 게 성과라면 성과다. 사실 한 지역의 책임을 맡는다는 게 생각보다 중압감이 엄청났다. 빗소리도 낭만적으로 듣지 못하는 게 단체장 자리였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했고 8년 전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아쉬움보다는 보람이 더 큰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전직 의원 등 여의도 정치인들이 상당수 자치단체장에 선출됐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차원에서라도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실사구시의 정치이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치다. 반면 중앙정치는 보다 추상적이고 거대담론에 머물러 있다. 흔히들 새 정치를 말하는데, 주민의 삶을 개선할 구체적인 콘텐트가 있어야 진정한 새 정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나무도 너무 위로만 크려고 하기보다 뿌리를 더 깊게 내려야 튼튼하게 자라며 장수할 수 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이제 백수가 됐는데, 뭐 하고 살 건가.
“꿈이 있는 백수는 매일 출근을 한다(웃음). 정치인은 자신만의 테마가 없으면 직업 정치꾼으로 전락하기 쉽다. 나는 도서관·독서·평생학습·인문학을 꿈과 테마로 잡고 앞으로도 매일 주민들 속으로 출근할 거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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