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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면 6시간 근무, 육아휴직 2년으로…미투가 바꾼 기업문화

기업 미투 1호 한샘 ‘회식은 1차서 1가지 술로 9시까지’
기업에 대한 호감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었다. 한샘이 그랬다. 지난해 11월 미투 운동의 열풍 속에서 사내 성폭력 사건이 공개된 후 소비자들은 순식간에 신뢰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지난 반 년 동안 한샘은 여론의 질타, 불매운동, 주가 폭락, 매출 감소, 사기 저하 등 한 기업이 겪을 수 있는 위기는 거의 다 겪었다. 지금까지도 기업 ‘미투’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돼 있는 한샘에 다녀왔다.
 
지난 월요일, 한샘 직원들은 성차별·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책자를 모두 한 권씩 받았다.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의 개념 정리부터 발생원인·대응원칙과 회사가 마련한 다채널 신고시스템까지 상세하게 정리된 책자였다. 김룡 법무팀장은 “지난 반 년 동안 네 번이나 다시 만들어 겨우 확정한 매뉴얼”이라고 했다. 그동안 양성평등전문가, 심리전문가, 신경정신과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부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작업했다. 그러나 이전 버전들은 전문가들에게서 “여전히 성차별적 관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물려진 것만 세 차례. 네 번째에야 전문가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법무팀장은 “고생해 만든 매뉴얼인 만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중소기업들에게도 오픈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기업 성폭력 나쁜 사례 모두 보여준 한샘=한샘의 여직원 성폭력 사건은 기업내 성폭행의 나쁜 사례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사례여서 큰 충격을 던졌다. 사건은 신입사원 교육현장에서 한 교육생이 한 여성교육생의 몰카를 찍은 일로 시작됐다. 더 나쁜 일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교육담당자 A가 오히려 그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A를 고발하자 이번엔 인사팀장B가 나섰다. B는 피해자에게 A의 징계를 낮출 수 있도록 사유서를 번복할 것을 요구했고, 이 번복진술서를 근거로 피해자까지 징계했다. B는 한 술 더 떠 이 여직원을 출장을 핑계로 부산으로 가서 성폭행을 시도했다.
 
은폐와 무마로 해결하려 했던 번복진술서를 근거로 A는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했다. 피해자는 무고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최근 해당 사건이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의 은폐 시도에 피해자는 이중고를 겪었다. 게다가 뒤늦게 회사 측이 새로 진상을 파악해 피해자 징계를 철회하고 가해자들을 징계했음에도 사내에선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다. 결국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견디지 못해 회사를 떠났다.
 
#하루 아침에 무너진 기업 이미지=이 사건이 알려진 후 한샘의 좋은 이미지는 와르르 무너졌다.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계약했던 고객이 계약 취소를 통보하고, 주문을 취소했다. 시공기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했고, 대리점들은 소비자들의 항의방문을 받았다. 홈쇼핑 방송이 두 달 동안 중단돼 매출기회 손실만 1200억원이 발생했다. 주가는 이 사건이 알려지기 직전인 지난해 10월31일 17만500원이었던 종가가 최근엔 10만원선을 맴돈다. 매출액은 지난해 4분기 11%, 올 1분기 5.6% 등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하고 있다. 직원들도 동요했다. 김경희 디자인실 부장은 “여직원들은 대다수 친지들로부터 성추행 등을 당하지 않았느냐는 안부전화를 받거나 질문을 받아서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사라진 배려와 존중=회사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가동되기 시작했다. 최양하 회장이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회사의 성평등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외부 전문가위원회와 내부적으론 기업문화위원회를 구성했다. 위기관리는 성폭력문제뿐 아니라 ‘우리 조직과 문화는 지금 잘못됐다’는 전제에서 시작됐다.
 
‘성장을 쫓아가느라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 이 회사의 위기는 이렇게 요약됐다. 한샘은 2009년 건재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2012년엔 기존 4000억원대 매출의 회사가 2조원대로 급성장했다. 본부 직원만 1000명에서 3000명으로 늘었다. 인력의 외부 충원이 거의 매달 진행됐고, 업무는 영역별로 쪼개졌다. 대리점주부터 간부들까지 오너회장과의 핫라인 통화가 가능했던 끈끈하고 탄탄했던 중소기업이 갑자기 대기업이 되면서 대기업병도 나타났다. 대리점과 벤더들에 대해 실적을 재촉하는 대기업적 행태가 시작되며 일부에선 갑질을 한다는 불만도 나왔고, 부서 간 장벽이 생기고, 소통이 늦어졌다. 조직원들도 자기 성과를 쫓으며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던 전통을 잊어가고 있었다.  찜찜한 이상 조짐들은 계속 나타났었다. 그러나 워낙 빠른 성장과 발전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젠 모성보호가 최고 목표=최근 한샘에선 임신한 여직원들은 무조건 6시간 근무하는 원칙이 생겼다. 근무시간을 채우면 PC가 자동으로 꺼진다. 육아휴직도 2년으로 늘렸고, 사내 어린이집 규모도 늘렸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지난 반 년간의 작업이었다. 김태욱 인사담당 이사는 “우선은 모성보호 등 양성평등 기업을 만드는 걸 기업문화개선 1기 목표로 삼았고, 이제부터 시작될 2기는 사람을 챙기는 조직문화로 바꾸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최근 수시충원과 업무 기술 중심의 연수도 뜯어고치는 중이다. 영업직 충원도 연간 세 차례 ‘영업 공채’로 뽑고, 과거 기업의 가치를 공유하던 신입사원 연수제도도 되살리고 있다. 김 이사는 “우리가 위기를 넘기고 여성·남성 모두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든 과정이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도록 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했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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