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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벙커가 암벽등반장? 괴짜 같은 도시 베를린

“서베를린의 한 클럽에서 테크노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죠. 그런데 친구가 뛰어들어오더니 사람들이 장벽을 부수고 있다는 거예요. 집으로 가서 커다란 망치를 챙겨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달려갔어요.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몇 해 전 베를린 출신 뮤지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28년 전만 해도 같은 분단국가 신세였던 독일은 이렇듯 갑작스레 통일을 맞았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어서인지 베를린을 주목하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3년 만에 뭉친 할배들도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베를린부터 찾았다.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통일 당시 독일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베를린을 여행하면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분단 시절의 상처마저 창의적인 에너지로 승화한 흔적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서다.
베를린 슈프레강변에는 독특한 클럽과 바, 문화 공간 등이 늘어서 있다. 화려한 그래피티와 ‘난민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인 ‘얌 베를린’ [사진 서다희]

베를린 슈프레강변에는 독특한 클럽과 바, 문화 공간 등이 늘어서 있다. 화려한 그래피티와 ‘난민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인 ‘얌 베를린’ [사진 서다희]

 
전쟁과 분단의 흔적을 거닐다
독일이 탄생한 1871년부터 베를린은 수도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처량한 신세가 됐다.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한 서독, 구소련이 점령한 동독으로 나뉘었다. 동독에 위치한 수도 베를린도 동서로 찢겼다. 서베를린은 ‘육지 속 섬’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행정상 분할에 불과해 장벽도 없었고, 시민들도 동과 서를 왕래하며 지냈다. 그러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게 되자, 1961년 동독 정부가 철조망을, 뒤이어 두꺼운 시멘트 장벽을 세워 버렸다.
지하철 U8번을 타고 베르나우어 슈트라세(Bernauer Str.)역에 내리면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나온다. 베를린 장벽의 실물과 이에 얽힌 역사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로 보여주는 곳이다. 3층 전망대에 오르면 베를린 장벽과 감시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 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옛 장벽 터. [사진 서다희]

베를린 장벽 기념관 3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옛 장벽 터. [사진 서다희]

장벽 왼편에서는 서독으로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을 기리는 추모비와 이에 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특히 벽을 가득 채운 큼직한 사진 ‘자유를 위한 도약’이 눈에 띈다. 사진의 주인공은 동독 인민 경찰이었던 ‘한스 콘라트 슈만’. 어깨에 총을 멘 채 철조망을 뛰어넘어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다. 분단 시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사진이다.
나치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사진 서다희]

나치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사진 서다희]

베를린 장벽의 여러 검문소 중에 ‘체크포인트 찰리’가 있다. 분단 시절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검문소였다. 지하철 U6번 코흐슈트라세(Kochße)역에 내리면 당시 4개 연합국이 운영하던 검문소가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독일 분단과 통일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벽 박물관’, 나치 기록을 볼 수 있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도 옆에 있다. 
분단 시절 검문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 지금은 관광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사진 서다희]

분단 시절 검문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 지금은 관광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사진 서다희]

 
예술·파티 명소로 떠오른 옛 동독 
동·서 베를린을 가른 상징적인 검문소가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18세기 후반 건축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 베를린의 경계이자 분단 독일의 상징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며 폐쇄됐다가 89년 베를린 시민이 장벽을 부수고 다시 열려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미테 지구는 '섹시한 도시' 베를린의 면모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통일 이후 독일 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가난한 예술가가 모여들어 예술지구로 거듭났다. [사진 서다희]

미테 지구는 '섹시한 도시' 베를린의 면모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통일 이후 독일 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가난한 예술가가 모여들어 예술지구로 거듭났다. [사진 서다희]

브란덴부르크 문 동쪽, 그러니까 옛 동독 지역의 미테(Mitte) 지구도 꼭 가봐야 한다. 알렉산더 광장이 있는 이곳엔 통일 이후 주인을 잃은 동독 정부 관할 건물과 공장이 널려 있었다. 베를린시는 동독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문화 육성 정책을 펼쳤다. 물가가 저렴해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베를린이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로 불리게 된 이유다. 

 베를린 장벽 인근 마우어 공원에 모여든 예술가들. [사진 서다희]

베를린 장벽 인근 마우어 공원에 모여든 예술가들. [사진 서다희]

분단 시절 폐허나 다름없었던 아우구스트(August) 거리와 주변이 예술가와 창작가에 의해 재미난 동네로 탈바꿈했다. 이곳엔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갤러리가 늘어서 있다. 주말이면 곳곳에서 전시 오프닝 파티가 열리는데, 예술가와 미술 매니어가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한데 어우러진다. 
젊은이로 북적거리는 알아베-겔렌데. [사진 서다희]

젊은이로 북적거리는 알아베-겔렌데. [사진 서다희]

특히 ‘갤러리 위크앤드’가 열리는 4월 말이면 동네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갤러리와 더불어 베를린에서 가장 감각적인 패션 숍과 디자인 스토어, 트렌디한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어 여행자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히틀러가 쓰던 벙커는 지금 암벽등반장으로 인기다. [사진 서다희]

히틀러가 쓰던 벙커는 지금 암벽등반장으로 인기다. [사진 서다희]

러시아풍 건축물이 늘어선 프리드리히스하인(Friedrichshain) 지역도 흥미롭다. 기차 정비 공장에서 하위문화(subculture) 중심지로 탈바꿈한 ‘알아베-겔렌데(RAW-Gelände)’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이벤트 공간은 물론이고 바와 클럽도 많다. 풀 파티가 벌어지는 근사한 수영장도 있지만, 가장 ‘베를린다운’ 곳은 암벽등반장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벙커로 쓰던 공간이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루프트한자독일항공을 타고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에서 환승하는 게 보통이다. 베를린 웰컴카드(berlin-welcomecard.de/en)를 사면 여행할 때 편하다.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권과 박물관을 비롯한 20여 개 관광지 입장권과 할인권이 포함돼 있다. 2일권 19.9유로. 7월 3일 기준 1유로 약 1303원. 베를린은 현재 서머타임이 적용돼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베를린(독일)=서다희 여행작가 mynextcity@naver.com

 
여행 기자로 10년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16년 베를린 동쪽에 방 한 칸을 마련했다. 베를린에서 살아보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온라인 가이드 ‘넥스트 시티 베를린(nextcityguide.com)’을 제작∙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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