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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구수한 단맛 육젓의 계절…생 젓새우 비빔 먹어보니

이택희의 맛따라기 - 새우젓 고장 교동도를 가다 
육젓은 최상품 새우젓이다. 원래는 음력 유월에 잡은 젓새우로 담근 새우젓을 이르지만, 요즘엔 양력 6월에 잡은 젓새우로 담근 새우젓도 육젓이라고 한다. 양력 7월 한 달간, 즉 음력 유월의 대부분이 금어기이기 때문이다. 신인섭 기자

육젓은 최상품 새우젓이다. 원래는 음력 유월에 잡은 젓새우로 담근 새우젓을 이르지만, 요즘엔 양력 6월에 잡은 젓새우로 담근 새우젓도 육젓이라고 한다. 양력 7월 한 달간, 즉 음력 유월의 대부분이 금어기이기 때문이다. 신인섭 기자

새우젓의 으뜸은 음력 6월 젓새우로 담근 육젓이다. 살이 통통하고 껍질은 얇아 맛 좋고 값도 가장 비싸다. 오는 13일이 음력 6월 초하루다. 육젓을 만나러 지난달 24일 새우젓의 본고장인 강화 교동도 남산포항으로 갔다. 7월 1일부터 강화도 젓새우 금어기이므로 일정을 서둘렀다. 
 
서울광장에서 75㎞. 차는 서해 부두로 달리고 미각의 추억은 50년 전 산골 고향, 어머니의 부뚜막으로 달렸다. 새우젓 음식 두 가지가 떠올랐다. 여름 새우젓무침과 애호박새우젓찜. 
 
새우젓무침은 살이 통통한 육젓에 잘게 썬 파∙풋고추,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깨소금을 넣고 참기름 두어 방울 쳐서 조물조물 버무리면 ‘요리 끝’이다. 예전 산골 소년은 초여름 10리 길 초등학교를 다녀와 두레박으로 샘물 길어 찬밥 말고, 새우젓무침 반찬으로 홀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쓸쓸한 밥상이지만, 맛만큼은 나이 들어서도 잊히지 않는다. 
 
점심 준비하던 어머니는 쌀 일어 앉히고 아궁이 불 지핀 뒤 돌담 위 호박넝쿨에서 뽀드득거리는 애호박을 따온다. 즉석에서 한입 크기로 썰어 사발에 담고 새우젓, 숭숭 썬 파, 다진 마늘 넣고 밥물 넘은 무쇠 밥솥에 앉힌다. 뚝딱 만들어도 맛은 달고 구수한 애호박새우젓찜이다. 
갓 잡은 육젓용 젓새우. 몸통이 하얗고 통통하고 껍질이 얇다. 먹어보면 단맛이 난다. 신인섭 기자

갓 잡은 육젓용 젓새우. 몸통이 하얗고 통통하고 껍질이 얇다. 먹어보면 단맛이 난다. 신인섭 기자

새우젓 맛이 달다고 하면 낯설 수도 있지만 바다의 단맛이 있다. 손암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를 보면 물고기 맛을 자주 언급했다. 많이 쓴 표현은 ‘달다(甘)’. 요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단∙짠’의 단맛이 아니다. 신선한 식재료가 품고 있는,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혀에 감기는 달보드레한 맛이다. 
 
교동도에서는 모든 음식 간을 새우젓으로 한다고 한다. 김치 외에도 호박찌개∙애호박두부젓국∙(돼지)갈비젓국∙가지무침∙계란찜 같은 음식을 해 먹는다. 남산포에서 만난 새우잡이 배 대흥호(6.06t 연안자망) 선장 현상록(64)씨 가족은 새우젓 맛을 얘기할 때 ‘달다’는 말을 자주 썼다. 현 선장과 아들 지훈(40)씨의 새우젓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섞여 잡힌 고기에서 새우를 골라 바닷물 담은 통에 띄워 젓새우만 건지고, 소금에 버무려 통에 담는다. 간을 약하게 하면 새우젓이 빨리 익고 맛도 달착지근하다. 하지만 오래 저장할 수 없어 유통기한이 짧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냉동 보관해야 한다. 저온 저장시설이 없던 예전, 쉽게 상하는 한여름엔 젓새우와 소금을 50 대 50으로 버무렸다. 그래도 상할까 불안해 장화 신고 통에 들어가 꼭꼭 밟았다. 요즘엔 75 대 25로 한다. 간을 싱겁게 해야 단맛이 잘 난다. 간이 세면 같은 새우로 담가도 단맛이 덜해 경매 가격이 잘 안 나온다. 젓새우가 상하기 직전 상태의 간일 때 단맛이 가장 좋아 가격이 잘 나온다. 소금에 절여 10일쯤 상온에 뒀다가 냉동창고에서 숙성한다. 절인 후 보름이면 젓갈로 먹어도 되지만 1년은 익혀야 제대로 숙성된다. 영하 4~5도에 두면 오래 익을수록 단맛이 난다.”  
육젓으로 쓸 생새우를 초고추장에 비벼 먹어봤다. 단맛이 강하게 돌았다. 신인섭 기자

육젓으로 쓸 생새우를 초고추장에 비벼 먹어봤다. 단맛이 강하게 돌았다. 신인섭 기자

그 단맛의 근본을 알아보려고 갓 잡은 젓새우를 한 마리 먹어봤다. 살은 실하고 껍질은 없는 듯 얇았다. 조그만 새우 한 마리인데도 달금하면서 응축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이런 새우를 소금에 절여 살에 밴 맛을 고스란히 우려내면 새우젓이 된다. 다시 새우를 크게 한술 초고추장에 무쳐 먹어봤다. 생선이 ‘달다’는 표현의 진수를 보여줬다. 
 새우잡이 작업을 하는 어선. 젓새우 어장은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 앞바다다. 신인섭 기자

새우잡이 작업을 하는 어선. 젓새우 어장은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 앞바다다. 신인섭 기자

젓새우 잡는 현장을 보려고 오후 1시 10분 출어하는 대흥호에 탔다. 고기가 없어 나가지 않겠다는 걸 거의 억지로 배를 띄웠다. 젓새우 어장인 교동도~석모도 사이 앞바다는 맑았다. 이곳은 한강∙임진강∙예성강 강물이 모여 바다와 만나는 해역이어서 바닷물 맑은 날이 별로 없다. 물이 맑으면 물살은 고요하고 고기는 없다. 빠른 물살에 바다 밑바닥이 뒤집어져야 그때 떠오른 미생물이나 유기물질을 먹기 위해 고기가 몰려온다. 
 
2.5~5㎞ 바다 건너 북한 연백평야가 보이는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이라 주민들만 섬 주위 1㎞ 이내에서 조업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가본 적 없는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요즘 교동도에도 평화의 바람이 불고는 있으나 어민들에겐 먼 얘기다. 당장 어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인천 석모도 앞바다에서 새우잡이 배 '대흥호'가 그물을 거두고 있다. 그물에 새우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올라왔다. 신인섭 기자

지난달 24일 인천 석모도 앞바다에서 새우잡이 배 '대흥호'가 그물을 거두고 있다. 그물에 새우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올라왔다. 신인섭 기자

출항 2분 후 닻자망 첫 틀을 걷었다. 그물 안엔 고기보다 비닐조각이 훨씬 많았다. 비닐들은 바다의 절망이다. 한때는 어민들이 바다 청소도 했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3강의 민물이 모이는 바다이니 쓰레기도 그만큼 많다. 선장은 “어선인지 청소선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우선 물때가 안 맞았다. 찾아간 24일(음력 5월 11일)은 두 물 날. 21일 조금, 22일 무시, 23일 한 물이었다. 이 3~4일 동안엔 물 흐름이 약하다. 조금은 물이 들고나는 차이가 가장 적은 날이다. 다음날은 무시. 지훈씨는 “무시 날엔 임금님께 진상할 고기도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왼쪽이 추젓이고, 오른쪽이 육젓이다. 육젓이 살이 더 통통하다. 신인섭 기자

왼쪽이 추젓이고, 오른쪽이 육젓이다. 육젓이 살이 더 통통하다. 신인섭 기자

게다가 올 상반기 젓새우 어황은 고갈이라 할 만큼 대흉이다. 추젓까지 이런 추세면 김장철 새우젓 대란이 불가피하다고 어민들은 말한다. 이날 1시간 35분 동안 닻자망 8틀을 양망해 잡은 고기는 병어 5마리, 장치 3마리, 밴댕이(제 이름은 ‘반지’) 수십 마리, 젓새우 한 되가량이었다. 처참한 수확이다. 
 
지훈씨는 “지난해는 봄 새우젓(오젓∙육젓) 10드럼(1드럼=240㎏)을 했는데 올해는 아직 1드럼도 못 채웠다. 작년 새우젓이 10드럼쯤 남았는데, 올해는 이걸로 김장철에 대비하면서 9월을 기다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동도에서는 양력 기준으로 ▷5월 하순 열흘쯤 오젓 ▷6월 한 달 육젓 ▷9월 12일(이르면 8일)부터 두 달간 추젓 ▷10월 말부터 12월 첫눈이 올 무렵까지 동백하젓 새우를 잡는다. 동백하는 중하라고도 하며, 김장용 생새우로 많이 쓴다. 음력 6월에 해당하는 양력 7월 한 달은 젓새우 금어기다(전남 신안은 7월 15일부터 한 달). 그러니 전통적 의미의 육젓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살이 가장 많이 오른 양력 6월 새우젓을 육젓으로 친다. 
 
 육젓∙생새우로 맛 낸 묵은지+병어회…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 
인천 교동도 남산포항 '별해별식'의 상차림. 꽃게조림과 김장김치, 벤댕이 회로 한 상이 가득하다. 별해별식은 직접 잡은 생선으로 음식을 하고, 직접 잡은 새우는 젓갈을 담아 판매한다. 신인섭 기자

인천 교동도 남산포항 '별해별식'의 상차림. 꽃게조림과 김장김치, 벤댕이 회로 한 상이 가득하다. 별해별식은 직접 잡은 생선으로 음식을 하고, 직접 잡은 새우는 젓갈을 담아 판매한다. 신인섭 기자

대흥호가 건진 물고기는 시장에 내지 않고 직접 가공해 판매한다. 꽃게나 횟감은 식당 ‘별해별식’에서 요리해 팔고, 나머지는 젓갈을 담그거나 말려서 집 앞에 진열해 놓고 관광객에게 판다. 새우젓 2㎏ 한 통에 육젓 7만원, 추젓 3만원. 가격은 강화 외포리 위판장의 경매가격에 따라 변한다. 2014년 7월 1일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연결돼 주말 관광객이 제법 온다. 
 
식당에는 꽃게조림(7만~9만원)이 유명하다. 꽃게탕보다 국물을 적게 잡아 별다른 재료 넣지 않고 이 집 특유의 양념으로 자작하게 졸여 낸다. 농어∙병어∙밴댕이 회를 주문하면 상을 차리고 마지막에 배추김치 한 쪽을 내온다. 꼭지도 따지 않고 담글 때 모양 그대로 큰 접시에 길게 담는다. 맛이 조금이라도 변할까 봐 저온창고에서 맨 나중에 꺼내온다. 취재 간 일행은 꽃게조림보다 김치에 열광했다. 김치 한 가닥에 병어 한 토막이나 밴댕이 한 마리 둘둘 말아 입에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다른 양념이나 반찬 찾을 일이 없다. 
 
이 집엔 김치 단골이 많다. 배추∙무∙고춧가루∙파∙마늘∙생강을 직접 농사짓고, 육젓 넣어 담그니 맛이 없을 수 없다. 11월 중하도 갈지 않고 통으로 듬뿍 넣고, 밴댕이∙황석어(황강달이)젓도 통째 들어간다. 꺼내온 김치에 그 모양이 살아있다. 좋은 농산물에 싱싱한 새우와 젓갈, 넉넉히 들어간 김치가 저온창고에서 6~7개월 익어 맛이 달고 시원하면서 깊고 진하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현 선장네는 해마다 고추 8000주(6612㎡), 김장배추 1000포기를 재배한다. 
 
‘별해별식’에 가려면 미리 전화해봐야 한다. 재료가 없는 날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바다가 하는 일이니 사전 확인만이 헛걸음을 막을 수 있다. 032-932-5235.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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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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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