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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대우 잘 해주는 나라 찾아 다니는 ‘난민 쇼핑객’도 있다

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달 29일 제주시 일도 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순회 인권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이 지난달 29일 제주시 일도 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순회 인권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전이 한창인 중동·이슬람 국가 예멘의 난민 약 500명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한국 사회가 뜨거운 논쟁에 빠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 중 난민 자격을 신청한 사람은 486명이다. 사실 예멘인이 아니더라고 올해 들어 난민 신청자 자체가 늘고 있다. 1~5월 신청자는 77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337명의 두 배 이상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839명으로 전체 누적 신청자의 4.1% 수준이다.
 
이는 전 세계 난민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를 2130만 명으로 추정한다. 지역별론 아프리카 441만, 유럽 439만, 아시아·태평양 380만, 중동·북아프리카 274만, 미주 75만 등이다.
 
난민은 왜 이리 많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사회학자인 헤인드하스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1948년 국제인권선언 이후 자유로운 이동은 인류의 보편권리가 됐다”며 “연구 결과 국제 이동은 68년 이후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인구의 0.3%(현재 기준 2100만) 수준을 계속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사람들이 떠날 자유를 얻었지만 입국 제한이 심해지면서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됐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대 이주연구소의 마티아스차이카 박사는 “60년대 이후 난민이나 이주민은 더욱 많은 나라에서 발생하는데 이들을 받는 나라는 더욱 줄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미국 하와이대 지리환경학과 리스 존스 교수는 “심지어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국경에 철망이나 장벽을 설치한 나라가 90년엔 15개국이었는데 2016년 70개국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물리적 수단 외에도 엄격한 비자 발급 등 출입국 관리 수단을 통해 입국을 통제하는 것은 현재 보편적이 됐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이 대거 늘면서 이런 통제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난민들의 입국 시도 국가가 유럽을 넘어 아시아 등지로 확대되는 추세다. 관광객을 늘리겠다며 비자 면제를 하는 제주도로 예멘 난민이 몰린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번에 도착한 이들이 한국인의 인식 속에 도식적으로 자리 잡은 난민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예로 국제구호기구들의 모금 광고에 나타난 난민은 한결같이 당장 생명이 위협받고 질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거나 난민촌에서 고립돼 지낸다. 하지만 우리가 제주에서 본 예멘인들은 비록 저가항공기지만 그래도 항공편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입국심사대에 여권을 내밀어 무비자로 한국 입국을 허가받은 다음 망명 신청을 하고 대기 중이다. 휴대전화는 기본이다. 배보다 데이터나 전원이 더 고픈 상황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 때문에 난민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러 온 ‘경제 이민자’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예멘은 분명히 교전이 벌어지는 내전 국가로 일부 종교적 광신주의와 테러리즘으로 주민들의 고통 받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실제로 난민과 경제적 이민자를 구분하기도,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준은 당연히 있다. 국제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51년의 ‘난민 협약’과 67년의 ‘난민의정서’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소속집단·정치견해 등의 이유로 박해받을 염려가 있는 사람’이다. UNHCR은 폭을 더욱 넓혀 ‘전쟁·박해·기근·자연재해·빈곤은 물론 폭력·테러 등으로 망명했거나 원하는 사람’으로 잡는다 ‘빈곤’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서 경제 이민자와 난민을 구분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선 난민으로 받아주는 나라를 찾아 여러 나라를 방랑하거나 심지어 대우와 조건이 좋은 망명 대상국으로 옮겨 다니는 ‘난민(망명객) 쇼핑객’들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사람이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면 가족이나 친지를 줄줄이 초청하거나, ‘망명하기에 좋은 나라’라는 정보를 흘려 자국민을 부르는 ‘연쇄 이민’ 현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도 난민 대우는 국제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난민 구호는 단순한 의식주 공급 수준을 넘어 교육·보건·복지·구급 등의 원조와 인간 개발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인간적인 생활까지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난민 수용 여부는 물론 수용 이후 이들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도 각국 정부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난민 처리 방식에 대한 접근은 한 사회의 글로벌화, 국제사회 인도적 기여 수준 척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독일에선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는 난민을 대학과 연구소에서 적극적으로 받는다. 드레스덴에선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쾌적한 공간에서 독일어를 교육한다. 심리·가족 상담, 현지인 가족과의 1대1 맞춤 교류 서비스 등을 제공해 난민 정신건강까지 고려한다.
 
스웨덴에선 난민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스웨덴어는 물론 영어까지 가르친다. 영국 진보지 가디언, 카타르 범아랍권 아랍어·영어방송 알자지라는 ‘난민’ 디지털 섹션을 운영하며 전 세계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지구촌엔 현재 난민을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한다. 반이민정책으로 유명한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무슬림의 천막으로부터 서구 문명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선 지난해 독립기념일인 11월 11일 6만 명이 시위하며 “하얀 유럽”“순수한 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전쟁을 극복하고 전체주의와 싸워온 우리는 평화와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사람과 같은 편에 서서 관용·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도 이젠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모카커피의 나라 예멘 내전으로 혼란 … 2009년 한국 관광객 폭탄테러도
 예멘 시밤

예멘 시밤

지금은 내전과 대량 탈출 사태를 겪고 있는 예멘도 한때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위치한 이 나라는 이웃 오만과 함께 고대~근대 주요 통상국가의 하나였다. 육상에 실크로드가 있었다면 해상에는 ‘인센스 로드(Incense road)’, 즉 ‘향(香)의 길’이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와 인도 사이의 아라비아 해에 부는 계절풍을 이용한 교역로다. 예멘을 포함한 아랍 뱃사람은 돛단배인 다우선을 개발해 여름엔 남서 계절풍을 타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인도도 항해했다가 겨울에는 북동 계절풍을 타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 2세기 사이에 활발하게 가동됐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뱃사람 신밧드가 오만 출신인 것도 이런 사연이 있다. 이 무역로는 서쪽으론 지중해, 동쪽으론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중국·한반도까지 이어졌으며 남쪽으론 아프리카 서부 해안까지 연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의 길’을 거친 향료 이야기는 성경에도 등장한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세 가지 보물 가운데 금을 제외한 유향과 몰약은 모두 예멘이 주요 산지다. ‘진귀한 선물’을 들고 솔로몬 왕을 만나러 왔다는 시바의 여왕이 에티오피아가 아닌 예멘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멘은 동서남북으로 향을 수출하고 중계무역까지 하면서 부를 누렸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과의 교역이 줄면서 예멘의 향료 무역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 자리는 새로운 상품인 커피가 대신했다. 예멘인들은 커피 원산지라는 에티오피아에서 원두를 들여와 스스로 재배했으며 각국에 전파까지 했다. 예멘 서남부의 알모카 항구는 예멘산과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가 집결하던 교역장이었다. 초콜릿 향과 신맛이 어우러진 ‘모카 커피’가 바로 이곳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알모카 항구에서 다룬 예멘산과 에티오피아산을 합친 듯한 향미라고 한다. 오스만튀르크 지배 시절, 홍해를 오가는 모든 배는 알모카항에 잠시 기항해 통행료를 낸 다음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지정학적 이점과 커피 교역으로 번성하던 항구도 유럽 국가들이 세계 각지에 커피 농장을 건설하면서 쇠락해갔다.
 
예멘의 또 다른 자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시밤(사진)’이라는 마천루 도시다. 16세기에 진흙 벽돌로 지은 5~16층짜리 건물 500여 채가 몰려 장관을 이룬다. ‘사막의 맨해튼’으로 불린다. 사막에 사는 베두인족의 기습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밀집형으로 도시를 설계한 ‘궁즉통’식 지혜의 결과다. 2009년 이곳을 찾았던 한국인 관광객 일행 18명이 폭탄 공격을 당해 4명이 숨졌다. 1998년엔 에멘에서 외교관 부인 등 한국인 3명이 현지 부족에 납치됐다 86시간 만에 풀려났다. 이 외교관은 나중에 거스 히딩크 감독의 통역관을 지냈다. 한국과의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바꿀 순 없을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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