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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요즘 이 책] 살벌한 인터넷 공간, 인민재판 보는 것 같다

지난해 7회까지 연재했던 동영상 기획 '작가의 요즘 이 책(작책)'을 다시 시작한다. '히든싱어'도 아닌데 시즌 2, 2018년 버전이다. 첫 번째 순서는 '우리들의 소설가' 이문열이다. 우리들의 소설가, 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는 걸핏하면 논쟁에 휘말렸다. 그가 자초했거나 사태를 더욱 확산시킨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많은 소설을 팔아치운 작가다. 국민작가였고, 문단의 황제였다. 작책은 이 시대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그들 글쓰기의 뿌리에서 자양분 역할을 하는 책 얘기를 듣는 자리다. 1시간 이상 동영상 촬영분을 10~15분 길이로 편집해 생생히 전한다. 영상에 못 담은 얘기는 기사로 함께 소개한다. '시즌 2'는 요리하는 소설가 천운영씨와 함께 진행한다. 기자는 주로 근황을 묻고, 천씨는 좀 더 깊은 문학 얘기를 나눌 계획이다. 지난해 작책은 김훈·김연수·정유정·권여선·은희경·조남주·성석제를 만났다. '2018 작책'은 인터파크도서와 함께 공동기획했다. 
 
"세상에 그처럼 과대평가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처럼 과소평가된 사람도 없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인터뷰 앞머리에서 이런 얘기를 꺼냈다. 얼마 전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그런 평을 들었다고 했다. "참 재미있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그런 말이었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1948년생이니까 만 칠순, 79년 동아일보 중편 공모로 등단했으니 작가가 된 지 40년째를 핑계 삼아 그의 경기도 이천 자택에서 지난 4월 30일 이뤄진 만난에서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이문열을 우회하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또 다른 맥락에서 이문열을 읽어야 했다. 소설 첫머리 흐드러진 정사 장면 상상에서 자극받아 『사람의 아들』을 읽어나갔고, 자전적인 3부작 『젊은 날의 초상』의 책장을 넘기며 존재의 고통에 공감했다. 손창민·홍경인 등이 출연한 영화를 통해 그의 소설을 접했다. 평역 『삼국지』 1800만 부, 『사람의 아들』 196만 부, 『시인』 40만 부…. 모두 합쳐 3000만 부나 팔아치운 말 그대로 '국민작가'였으나, 그는 언제부턴가 '시대와의 불화'가 자신의 삶의 양식으로 고착됐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페미니즘 논쟁, 영혼의 자식과도 같은 자신의 소설들에 저질러진 책 장례식에 휘말렸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과대 혹은 과소 평가' 발언은 그 모든 인생 궤적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발언이다. 
 
-만 70세, 등단 40년째인데, 감회가 있을 것 같다.
"글쎄, 감회가 없지 않겠지만 이상하게 내가 아직도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쫓겨나 있거나 벌 받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든다."
-작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인가.
"아마 내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일 것 같다."
 과대·과소 평가 발언은 이 대목에서 나왔다.
-그런 불안정한 상황이 오히려 창작에 도움이 되지는 않나. 
"작가적 긴장이랄까, 그런 거에는 도움 되겠지만 (불안정한 상황이) 오래 연장이 되니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2001년) 책 장례식이 벌어질 때 눈에 보이는 저 사람들 말고 말 안 하는 다수는 내 편일 거야,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점점 말 안 하는 다수가 내 적은 아닐지언정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고(故) 박완서 선생님만이 유일하게, 어떤 경우라도 책 장례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다는데. 
"공적으로 그런 의견을 낸 유일한 분이었다. 박범신 같은 또래 작가들이 술 취해 울면서 '내가 화는 나지만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전화를 한 적은 있다."


-화제를 바꿔보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예전에는 아직 안 쓴 작품, 쓰려고 하는 작품이라고 답했다. 앞으로 5년 이상 문학적 생산을 기대하지 못할 테니 이제는 하나 골라야 할 텐데, 『변경』을 대야 하지 않을까."
 86년에 쓰기 시작해 98년에 완간한 12권짜리 『변경』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그의 가족사 3부작 중 2부 격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월북한 아버지, 남은 가족의 고통을 그린 84년 장편 『영웅시대』가 1부. 3부는 시기적으로 『변경』 이후 80년대를 다룬 '둔주곡 80년대'로 지난해 8월 월간 신동아에 연재를 시작해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중단했다.   
-누구보다 큰 인기를 누렸다. 비결이 있다면.
"취향이든 배우기 위해서든 감상 때문이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소설 독자로서 소설을 읽을 때 기대했던 거, 그 이상을 절대 하지 말자, 그런 게 있었다. 나중에 싸움하다 보니 준비 안 된 얘기를 억지스럽게 한 경우도 있었지만."
-문체가 화려하고 리듬감이 느껴진다. 중앙일보 문학 담당 기자였던 고(故) 기형도 시인은 '그윽한 격조의 의고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젊은 날 한문 공부의 영향을 그렇게 본 것 같다. 우리 말이 대개 삼사조, 사사조가 되는데 유려하게 들리게 하는 방법이라는 게 그런 자수율을 써먹은 거다."
-79년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을 때 성경 구약을 15번, 신약을 10번 읽으며 소설을 썼다고 밝혔었다. 대단한 집념이라고 느껴진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여행 밑천이라고 믿었다. 힘든 줄 모르고 그렇게 했다."
 
-동료 작가 가운데 이런 건 부럽다, 고 느끼는 작가가 있나. 
"당연히 그런 게 있어야지. 한 번은 일본 작가 하루키의 단편 '렉싱턴의 유령'을 읽는데, 미국인 친구가 여행가는 동안 집 봐달라고 해서 봐주다가 귀신을 만나는 얘기인데, 화자가 누구인지 설명을 안 한다. 우리 같으면 내가 만약 톰 만났다면 톰 설명한다고. 미국 놈이고 언제 만났고, 그런데 하루키는 그런 설명을 하나도 안 하는 거야. 끝까지 안 해요. 그런 식으로 가뿐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한국 작가 중에도 있다. 설명하려 하지 않고. 저건 새로운 세대다, 라는 기분이 든다."
-문학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결국 뭘 쓰고 싶었던 건가.
"내게 문학은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것 같다. 제일 컸던 게 아버지 얘기, 아버지의 부재 얘기였다. 이제는 변해서, 내가 마치 뭔가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표현하고 갈 텐데, 나는 문학이라는 양식, 소설이라는 양식으로 표현하려고 마음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아버지 얘기는 더 이상 안 쓰나. 
"이제는 별 쓸모가 없다.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사실 북한에 잘못 간 거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도 사실은 자기 게 아닐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내가 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질 지분이 없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결국 민주화와 군부독재가 충돌한 건데,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러셨다. 정치하는 저놈들 맨날 저런 거라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씨의 아버지 이원철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다. 그런 가족사는 『영웅시대』 등 가족사 3부작뿐 아니라 초기작인 81년 중편 '하구' 같은 작품에서도 묻어난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곧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런 말이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모두 목숨 걸고 줄 타고 있을 텐데, 간단한 문제이겠나. 가끔 짜증이 나거나 불안해서 간섭하고 싶다가도 내가 할 건 아닌가 싶어서 안 하기는 했는데, 글쎄 기분은 조금 걱정스러운 데가 있다. (하지만 막상 하려 해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거다. 서로 추측을 얘기하는 건데 추측이라는 게 서로 감정 상하기 쉬운 거지. 저쪽의 추측은 속고 있다, 이쪽의 추측은 아니다, 이번에는 진짜다, 라는 건데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그것보다 요즘 우리가 어떤 목표보다 목표를 달성하려고 선택하는 방식들이 대단히 마음에 안 든다. 아주 야비하고 너무 잔인해. 양쪽 다 잔인한데, 더 웃기는 것은 적 규정을 할 때 범주라고 할까, 그런 것이 굉장히 나빠져 있어서 이런 식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면 대단히 안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지난 정권도 그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정권도 정권을 놓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감옥 가는 시간이라고 믿어야 될 거다. 이번에는 우리가 감옥 갈 차례다, (이런 식이 반복되면) 이러면 그 세계가 얼마나 각박하게 될지 알 수 있는 거다."
 '논란의 이문열'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특히 불편해할 발언이다. 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일까.
 이씨는 "우리 사회의 최종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아주 왜곡돼 있고, 그러다 보니 의사결정이 정상적으로 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대의정치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정치권을 대신해 인터넷이 강력한 대안 공론장으로 떠올랐지만, 그마저도 합리적인 민의 도출과는 동떨어진 '다수의 횡포'가 자행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뜻인 듯했다. "살벌한 인터넷 공간을 보고 있으면, 인민재판이 그런 건데, 내용이나 실질보다 (여론이 형성되는) 방식과 형식이 굉장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문열이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반동이라고까지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문열을 구출해내는 유력한 알리바이는 이런 것이다. 
 "다수가 몰려가는 것을 보면 수상쩍습니다. 이념이나 원리에 대한 감동에서가 아니라 힘에 대한 아첨 같습니다. 다수의 열정이 맹목화될 때 싸늘한 회의 정신, 진득한 평화 정신도 필요합니다. 사회를 배로 볼 때 사람들이 다 우로 몰리든 좌로 몰리든 그 배는 파시스트 혹은 마르크시스트로 침몰하고 만다는 것을 세계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변경』을 완간한 98년 11월 본지와의 인터뷰 발언이다. 이런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떤 경우든 책 장례식을 지낸 건 너무했던 것 같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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