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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규제 개혁은 대기업 특혜란 재벌 포비아

정경민 경제담당 부국장

정경민 경제담당 부국장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세 축으로 돼 있다. 공정경제, 소득주도, 혁신성장이 그것이다. 공정경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소득주도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혁신성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휘자다. 그런데 유독 혁신성장만 지지부진하다. 지난달 31일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에서는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달라”고 타박하기까지 했다.
 
이후 김동연 부총리가 바빠졌다. 8일엔 제1차 혁신성장 장관회의를 열었다. 오후엔 스타필드하남을 찾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일 오전 문 대통령에게 한 월례 독대 보고도 소개했다. 기업과의 소통 계획을 설명했더니 문 대통령이 “기회가 될 때마다 준공식 등 격려가 필요한 기업 현장에 가겠다”고 했다는 거다. 혁신성장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더라는 말이었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이틀 만에 1차관을 중심으로 혁신성장본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될 일 같았으면 혁신은 진작에 되고도 남았다. 혁신성장의 성패는 규제 혁파에 달려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전봇대로 달려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부터 빼겠다며 직접 끝장 토론을 주재했다. 그러나 규제 몸통은 옴짝달싹 안 했다. 규제 혁파는 그만큼 어렵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도 꿈쩍 안 한 상대를 경제부총리더러 단기필마로 해치우라니 미심쩍은 거다.
 
경제부총리와 경제팀이 굼떠서 혁신성장이 더딘 걸까. 오히려 대통령의 귀를 독점한 청와대 정책라인에 온통 소득주도 성장론자가 포진돼 있는 게 더 위태로워 보인다. 소득주도 성장의 뿌리를 캐가면 포스트 케인지언이 나온다. 이들은 시장을 믿지 않는다. 규제 혁파와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의 종착역은 부익부빈익빈과 세계적 성장 정체였다는 게 포스트 케인지언의 진단이다. 규제를 풀어주면 결국 돈과 기술을 쥔 대기업이 열매를 독식할 거란 재벌 포비아가 생길 법하다.
 
한데 구직자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어디 있나. 공공기관 아니면 대기업 아닌가. 하지만 대기업이 새 사업에 뛰어들거나 공장을 증설하는 건 탐탁지 않다. 그러니 공무원 늘릴 궁리만 하는 거다. 일자리를 늘려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으니 돈 퍼줄 생각뿐이다. 그러나 공무원 증원과 복지비 증액으로 지탱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몇 년이나 지속할 수 있겠나. 더욱이 한국은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5.5%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위다. 사업자금 5000만원 미만인 영세업자가 71%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영세자영업자에게 고용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혜택 보는 근로자는 월급이 몇 푼 오를 뿐이다. 반면 영세사업자에 고용된 근로자는 생계가 막연해진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청와대의 반쪽짜리 통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식당 아줌마가 속 터지는 까닭이다.
 
혁신성장으로 새 일자리를 공급하지 못하는 한 소득주도나 공정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고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린들 일자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대기업을 뺀 혁신성장은 구두선에 불과하다. 구직자라면 누구나 대기업 취직을 바라는데 청와대만 자꾸 중소기업 가라고 등 떠미니 일자리 정책이 겉도는 거다.
 
그렇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냥 놔둘 순 없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상속은 더 철저히 단속하라. 봉건시대에나 통했을 갑질도 봐주지 말라. 대신 대기업이 새 사업에 뛰어들고 벤처기업이 신기술을 사업화하는 걸 가로막는 규제는 풀어주라. 대기업만 혜택 볼까 봐 규제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재벌 포비아가 청와대를 지배하는 한 혁신성장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정경민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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