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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국 막을 열쇠는 김명수 손에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영어로 시타델(citadel)은 우리말 ‘성채(城砦)’로 번역된다. 성서에서는 ‘견고한 성’이라고도 표현한다. 단어의 어원은 여러 의미가 있다. 시타델은 왕궁을 방어하고 호위하는 곳을 뜻했다. 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해적의 공격이나 선박 내부의 비상상황 등 선원들이 위급할 때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 도시의 주민들이 긴급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주민 피신용 성채도 시타델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법부를 일컬어 ‘공공 정의와 안전의 시타델’(citadel of the public justice and the public security)이라 표현했다. 해밀턴이 사용한 용어의 뜻을 알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 긴급피난처, 피신용 성채의 이미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날 법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입법부의 돈, 행정부의 칼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라 생각한다.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 국민의 피난처가 법원일 것으로 여긴다.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다음과 같은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법부가 국가의 한 축을 맡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그토록 중시한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권력과 금력의 외압이나 유혹 때문이 아니다. 사법 행정권 남용 논란을 둘러싼 사단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법파동’처럼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다면 해법 찾기가 더 쉬웠을지 모른다. 이번 사태는 법원 내부의 문제라 오히려 해결책 마련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법원행정처가 재판 결과를 가지고 권력과 거래를 했거나, 또는 하려 한 정황이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시론 6/13

시론 6/13

만에 하나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재판에 영향을 미쳤거나, 미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법부 독립뿐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법부가 국가의 한 축을 맡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진상을 밝힘으로써 의혹을 해소하는 것만이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사법부 구성원들도 백가쟁명(百家爭鳴) 하듯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장 판사들은 검찰 고발까지 주장한다. 중견 법관과 법원장들은 검찰 수사에 반대한다. 지난 11일 열린 전국법관 대표회의는 절충적이다. ‘형사 절차를 포함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검찰 고발 또는 수사라는 말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법원행정처에 의해 뒷조사를 당했다는 차성안 판사는 자신이 방청한 이번 회의의 결론에 대해 “얼마나 정무적이고 타협적인가. 법원장 간담회의 의견수렴 내용과 논리구조가 참 닮았다”며 비판했다. 수긍하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민주적 절차에 의한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케 한다. 법리적인 결론을 내야 하는 법원에서 다수결처럼 의견 수렴을 하는 게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처음부터 3차 조사단의 보고서를 신뢰했어야 마땅하다. 두 번의 조사 결과가 미흡하다고 해서 자신이 지시해 구성된 3차 조사단 아닌가. 결과를 신뢰하지 못할 바에야 전권 부여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제 김 대법원장의 결단만 남았다.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면 누구도 성역일 수는 없지만,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김 대법원장의 말처럼 최대한 ‘내부 해결’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 그런 노력도 없이 ‘형사 처벌’을 먼저 운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직권남용’과 ‘직권남용죄’는 다르다는 것을 법관들이 잘 알지 않는가. 검찰이 수사해도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를 아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평의는 공개하지 못한다고 법에 명시된 사실 역시 법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판사들이 법복을 입는다고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법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치우치지 않고 독립적이며,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닐 고서치 미국 연방 대법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자 밝힌 소감이다.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 사법부, 국민의 최후 보루와 피난처가 되는 사법부. 그런 법원이 되는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공정하고 독립적이며 용기를 가진 법관들로 구성돼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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