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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연봉 자동차 공장’ 광주의 실험, 떠나는 제조업 붙잡을 수 있나

SPECIAL REPORT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요람이 될 광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대한 실사에 들어갔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완성차 공장을 운영해 연봉 4000만원 일자리 1만 개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지난 4일 현대차 실무자들이 산단 개발 현황과 완성차 공장 부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요람이 될 광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대한 실사에 들어갔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완성차 공장을 운영해 연봉 4000만원 일자리 1만 개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지난 4일 현대차 실무자들이 산단 개발 현황과 완성차 공장 부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경제엔 숙명이 하나 있다. 이른바 ‘제조업 천이(遷移)’다. 어떤 산업이 혁신성을 잃어 초과 이익을 낳지 못하면 인건비가 싼 나라로 이전되는 현상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섬유산업이 일본→한국→방글라데시로 이전됐다. 천이는 산업화의 글로벌 확산 과정이기도 하다. 신흥국은 낮은 임금을 무기로 선진국에선 한물간 분야를 받아들여 산업화했다.
 
그런데 이런 숙명에 대한 도전이 국내에서 시작됐다. ‘광주형 일자리’ 실험이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차가 연 10만 대를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을 세운다. 7000억원 정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 직원들은 기존 자동차 회사의 연봉보다 낮은 4000만원을 받는다. 대신 광주시가 주택·육아·교육·의료 서비스를 지원해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해 주기로 했다. 잘만 되면 현대차로선 고비용 부담을 덜고, 노동자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으며, 지방정부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윈-윈(win-win) 게임이 될 수 있다.
 
낯선 실험은 아니다. 2001년 독일에서 한 차례 실험이 이뤄졌다. 독일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에서다. 프로젝트명은 ‘아우토(Auto) 5000’이었다. 이는 폴크스바겐이 독일 볼크스부르크 기존 공장 안에 세운 별도 회사다. 당시 독일 일간지 빌트는 “월 5000마르크(약 350만원)를 받는 노동자 5000명을 신규 채용해 티구안 등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기존 직원보다 20% 정도 낮은 임금으로 주당 세 시간 더 일하는 조건으로 고용을 늘린 것이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일본 도요타 등이 높은 생산성과 품질을 앞세워 압박했다. 폴크스바겐은 최고급 차종을 제외한 대중적인 차량의 생산기지를 임금이 낮은 체코 등으로 옮겨야 했다. 짐 러셀(도시경제)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교수가 최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선진국 도시의 제조업 공동화”가 시작될 찰나였다. 당시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조금 낮은 연봉과 조금 긴 노동시간”을 내세웠다.
 
 
정규직·파견직의 양극화도 완화 기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광주형 일자리에 현대차 노동조합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노조도 강력히 반발했다. 한 회사 안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으면 결국 전체 임금 수준을 끌어내린다는 게 당시 노조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우토 5000은 성공적으로 역할을 다하고 2008년 해산됐다. 경영 성과가 좋아지면서 직원들이 처우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자 폴크스바겐이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자동차 내 별도 법인이 아니라 폴크스바겐식 정규직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일자리 양극화를 어느 정도 완화해 줄 수는 있다. 국내 제조업체의 임금 구조는 연 8000만원짜리 정규직과 2000만원대의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다 보니 비정규직과 파견직 비중이 커지고 실업률도 높아진다. 광주형 일자리는 4000만원짜리 정규직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부담으로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옮기는 국내 제조업체들에 매력적인 투자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으로 연봉 4000만원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면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늘고 2, 3차 협렵업체로 연쇄적인 고용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선진국형 제조업 자동차 포기해선 안 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광주 실험이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 한국에서 제조업을 지켜낼 수단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최근 흥미로운 현상이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제조업 르네상스’다. 세계적인 컨설팅그룹인 맥킨지의 리처드 돕스 이사는 최근 보고서에서 “범용 기술과 고 에너지 소비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은 신흥국으로 이전됐지만 친환경, 정보기술(IT) 등과 관련된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탄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돕스가 예로 든 선진국형 제조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동차다. 그는 “자동차가 끊임없는 혁신의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점에서 수익성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자동차 산업을 성급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광주 실험이 국내 자동차 산업이 신흥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고 기술혁신을 이룰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주형 일자리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대표되는 노동환경 변화에 대한 제조업체의 대응방안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광주시는 자동차업계 평균 연봉의 절반 미만인 4000만원을 주는 대신 주거·의료·교육 등의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주 52시간, 연 52주 근무 기준으로 4000만원의 연봉은 시간당 1만4000원 수준이다. 사실 지난해 평균 9200만원의 연봉을 받은 현대차 직원들도 기본급은 이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시간당 임금이 높은 야근과 주말근무를 최대한 늘리는 한편 다양한 수당으로 보전해 임금 총액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제조업체들과 초과근로를 원하는 노동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특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올 3월 기준으로 한국의 15~29세 청년실업률은 11.6%에 달한다. 20%를 넘나드는 유럽 국가들보다는 상황이 낫다지만 미국(8.2%)·일본(4.5%)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자리 잡는다면 고용을 늘리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동시에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누리는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박해광(광주시 더나은일자리위원회 실무위원장)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처럼 임대료를 낮춰주고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지역 산업단지를 운영하긴 어렵다”며 “적정 임금으로 기업 투자를 이끌고, 근로자는 평균 연봉 4000만원을 받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주택·의료·돌봄 등의 복지혜택을 받는 방식의 광주형 일자리가 새 일자리를 만드는 중요한 실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광주 실험이 성공하려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현대차는 만약 광주시의 구상대로 4000만원 정도의 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5개 한국 자동차업체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2%다. 임금 수준을 30% 정도만 낮출 수 있다면 일본 도요타(7.8%)나 독일 폴크스바겐(9.5%)과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는 것이다.
 
 
“AI 아무리 발전해도 첨단차 다 못 맡아”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도전도 극복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을 직접·간접으로 고용하던 아디다스는 수십 년 만에 독일 안스바흐에 신발 제조 스마트팩토리를 세웠다. 연간 100만 켤레를 생산하는 독일 스마트팩토리의 상주 인력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일반 신발 공장에서 600명이 매달려야 하는 일을 로봇이 거의 다 한다. 온라인으로 맞춤 주문을 하면 단 하루 만에 만들어낸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중앙SUNDAY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직업 가운데 90%가 AI 때문에 사라진다”며 “자동차 조립이 가장 빨리 사라질 직업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광주 실험은 부질없는 노력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200년간 기술과 일자리의 관계를 분석한 이언 스튜어트 딜로이트 파트너는 중앙SUNDAY에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첨단 자동차를 모두 생산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자동차 공장에서 AI는 아주 긴 세월 동안 보조고 인간의 지능과 손이 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강남규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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