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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가더라도 생명이 먼저” 생체 폐이식 길 연 선구자

[이성주의 명의보감]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생체 폐이식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생체 폐이식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부디 이 아이가 다시 숨 쉬게 해주십시오.”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흉부외과 박승일(59) 교수는 열아홉 살 화진을 내려다보며 기도했다. 폐 이식 팀 의료진 50명은 수술실 4곳에서 박 교수의 수술 시작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고혈압 탓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던 딸에게 부모의 폐 일부를  이식하는 대수술. 평일에는 수술실을 구할 수 없어 토요일을 잡았다.
 
이 수술은 법에서 허용하지 않아 행여 잘못되면 의사들이 감옥에 갈 수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4번 수술실에서 아버지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 7번 수술실에서 어머니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떼어냈고 중간 방에서 처리한 뒤 5번 수술실의 딸에게 이식하기까지 8시간이 걸렸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회복과정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기에 안도의 숨을 쉬기엔 일렀다.
 
 
뇌사자 기다리다 환자 절반 숨져
 
지난해 10월 오화진(20·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수술에 성공한 뒤 박 교수와 가족들과 기뻐하고 있다. 아버지 오승택(55)씨는 폐 오른쪽 아래, 어머니 김해영(49)씨는 폐 왼쪽 아래를 떼어줬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지난해 10월 오화진(20·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수술에 성공한 뒤 박 교수와 가족들과 기뻐하고 있다. 아버지 오승택(55)씨는 폐 오른쪽 아래, 어머니 김해영(49)씨는 폐 왼쪽 아래를 떼어줬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수술대에 누운 화진은 3년 전 봄 등굣길에 숨이 찼지만 살을 빼라는 신호로만 알았다. 몸이 붓고 갈수록 숨 쉬기가 힘들어 병원에 갔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폐동맥고혈압. 원인도 모른다고 했다. 심장과 폐 사이에 피가 잘 흐르지 않아서 심장 기능이 뚝 떨어졌다. 2016년 7월 심장이 멈춰 저승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다시 심장이 멈추면 살 확률이 20%라고 했다.
 
화진이 살 수 있는 길은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는 것. 뇌사자 폐를 얻기 위해선 4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절반은 기다리다가 숨진다. 게다가 화진이는 이식 대기자 등록 때 폐의 기능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이유로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다.
 
부모는 딸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생체 폐이식’을 알아냈다.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고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불법이었다. ‘장기이식법’에서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뗄 수 있는 장기에 폐가 없었기 때문. 의사는 단지 수술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고, 한 사람이라도 숨지면 사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다고 했다. 화진의 부모는 청와대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폐 전부라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 이식을 허락해주세요.”
 
그러나 2주일 뒤 “안타깝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박 교수는 화진을 살릴 자신이 있었다. 군의관 시절 생체 폐이식 논문을 처음 본 뒤 이 분야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해왔고, 스승인 손광현 교수와 숱한 동물실험을 했었다. 뇌사자 폐 이식의 뛰어난 성공 노하우도 뒷받침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회의를 소집했지만 의사들조차 주저했다. 정부에 비공식으로 문의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안 된다”는 회신.
 
그러나 살릴 수 있는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화진 부모의 절규가 맴돌았다. 박 교수는 ‘임상연구’란 길을 찾았다.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에 문의해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으니 법적 문제를 고려해서 시행하라”는 답변을 얻었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도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대한이식학회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지지를 호소했다.
 
박 교수는 의사들의 7차 회의에서 논의를 멈추게 하고 입을 열었다. “19살 여자 아이가 숨이 차서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우리는 의사다. 환자가 살려달라고 하는데…. 법이나 윤리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지 않은가?”
 
수술을 결정하자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다. 얼굴은 잿빛이었고 복수가 차서 배는 부어올랐다.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었고 계속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입원부터 시켜야 했다.
 
화진이는 수술 6일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뗐다. 창 밖에는 부모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은 화진의 20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밤 박 교수는 호흡기내과 홍상범 교수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복도를 걷게 했는데 환자가 숨이 안 찬다고 합니다.” 화진은 성탄절 무렵 생생한 몸으로 퇴원했다. 박 교수의 수술이 성공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마침내 생체 폐이식을 허용했다.
 
 
새벽 5시까지 12시간 수술 매달려
 
박 교수는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심장수술 명의였던 이영균 교수의 특강을 듣고 흉부외과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어린이 심장수술을 주로 하다가, 어른 심장을 거쳐 폐식도(肺食道)를 전담했다.
 
그는 2008년 폐섬유증 환자(55)에게 첫 뇌사자 폐이식을 시도했다. 수술은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8개월 뒤 환자를 잃었다. 2010년 폐동맥혈관육종 때문에 폐 기능을 잃은 환자에게 수술해서 지금까지 편히 숨 쉬게 했다. 2011년 봄부터 폐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 기능을 잃은 아이들이었다. 13명을 연거푸 수술했지만 수술 실패가 한 건도 없었다. 그는 이 무렵 폐 이식 환자를 집중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박 교수팀이 10년 동안 폐 이식을 받은 환자 41명을 분석했더니 3년, 5년 생존율이 선진국 병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흉부외과 교과서도 따로 쓰게 만들었다. 혈액을 빼내 몸 밖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넣는 체외막형산화기(에크모)를 부착한 환자에게 폐를 이식하는 것은 금기사항에 가까웠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에크모가 없으면 숨을 거두는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박 교수는 에크모를 달아도 폐 이식이 가능하며 수술성공률에 차이도 없다는 것을 수치로 입증했다.
 
박 교수의 폐 이식 수술은 정규수술이 끝난 오후 4~5시에 시작한다. 다른 병원에서 떼어낸 폐를 전달하는 응급차가 병원 바로 부근에 도착하면 환자의 폐를 떼기 시작해서 새벽 4, 5시까지 수술에 매달린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선다. 몸은 고달프지만 쉴 수가 없다. 화진이처럼 박 교수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이 두근두근, 맘껏 숨을 쉴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건강포털 코메디닷컴 대표. 매일 아침 33만 명에게 ‘이성주의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황우석의 나라』등 11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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