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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조각상은 왜 역사의 죄인처럼 서 있나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 헝가리의 마르크스 기억 방식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 ‘메멘토 파크’로 끌려와 정문에 서 있는 마르크스(왼쪽)-엥겔스 석상.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 ‘메멘토 파크’로 끌려와 정문에 서 있는 마르크스(왼쪽)-엥겔스 석상.

카를 마르크스는 혼란스러운 영향력이다. 그의 고향은 독일의 작은 도시 트리어. 그곳이 지적 혼선의 진원지다. 5월 5일 그의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출생 200주년 기념물이다. 중국 정부가 만들어줬다. 그 무렵 헝가리 친구가 내게 e메일을 보냈다. “마르크스 유령을 중국이 살려내려 한다. 역사의 코미디다. ··· 헝가리의 ‘조각상 공원’을 잊지 않고 있겠지.”
 
조각상(Szobor) 공원-. 그곳의 풍광은 흥미롭고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나는 라요시 고비치(61·헝가리는 성을 앞에 씀)와 그 공원에 갔다. 그는 사보 에르빈 중앙도서관의 연구원 출신. 공원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외곽이다. 부다 쪽 명소인 왕궁에서 남서 방향 20분 거리(13km).
 
메멘토 표지판

메멘토 표지판

통상 명칭은 메멘토 파크(Memento Park·회상 공원) 박물관. 공원은 조형물의 집단 수용소다. 헝가리 공산주의 시대의 조각·동상·흉상·기념비들이 널려 있다. 정문은 붉은 벽돌의 높은 담장(12m) 형태다. 양편 아치형 공간에 인물상이 있다. 오른쪽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화강암 석상(높이 4.2m).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상 동지다. 왼쪽은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 공산주의 이념의 원조들이다. 그 풍경은 강렬하게 압박해 온다.
 
 
공산통치 시절 석상은 도시 중심가 공산당사 근처에서 위엄을 과시했다. 옆은 군 의장대. [중앙포토]

공산통치 시절 석상은 도시 중심가 공산당사 근처에서 위엄을 과시했다. 옆은 군 의장대. [중앙포토]

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조각상을 살폈다. 입체감을 강조한 큐빅 형태다. 왜 이곳에 전시돼 있을까. 사연은 극적이다. 1989~91년 세상이 뒤집혔다. 베를린 장벽, 동유럽, 소련 정권은 무너졌다. 마르크스 사상은 파탄 났다. 공산주의 우상들의 운명은 철거다. 동상의 목에 밧줄이 걸렸다. 헝가리 인민공화국(1947~89년) 시절 거리와 광장은 수백 개 조형물로 넘쳤다. 헝가리 민주화 정부는 고심했다. 파괴·철거냐, 이전·보존이냐의 논쟁은 이어졌다. 선택은 독특했다. “과거를 지우기보다 저지선을 치자. 어둠의 역사와 대면해 교훈을 얻고 극복하자.” (헝가리 교육부)
 
그 방식은 동상만의 공원 설계다. 조형물을 떼어내 야외 공원으로 옮겼다. 42개 기념상으로 ‘회상 공원’을 만들었다. 1993년 6월 27일 개관했다. 소련 주둔군의 철수 2주년 되는 날이다. 친구 라요시는 “기억의 광장이다. 공산주의 동상들의 공동묘지(temető)라고도 한다, 동상은 과거사의 증인이며 공산주의 유령”이라고 했다. 붉은색 담장이 교도소처럼 느껴진다.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당당한 마르크스 얼굴상. 받침대 위쪽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아래에 ’철학자들은 세상을...“이란 글귀가 있다.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당당한 마르크스 얼굴상. 받침대 위쪽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아래에 ’철학자들은 세상을...“이란 글귀가 있다.

조형물은 반전(反轉)의 드라마를 썼다. 다큐멘터리 가치와 상상력으로 구성됐다. 정문 출입구 가운데는 철문. 닫힌 채로 녹슬어 있다. 글씨가 빼꼭히 적혀 있다. ‘Egy mondat a zsarnokságról(폭정에 대한 한 문장)’이다. 헝가리 시인 이예시 줄러(Illyés Gyula)의 작품(1956년 발표). 시는 한 문장으로 끊어지면서 길게 연결된다. “폭정이 존재하는 곳은 총신(銃身)만이 아니다. 감옥에도, 취조실에도··· 폭정이 있는 곳에는 모든 게 쓸모없다. 모든 창조물, 내가 읊는 시도 헛된 것이다.”
 
시를 읽으면 기억의 공원은 바뀐다. 역사의 법정이 된다. 시는 판결문이다. 그 속에 공산주의 폭압, 공포, 슬픔, 무기력, 분노, 저항이 담겼다. 시인의 언어는 마르크스 철학의 신화와 환상을 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끌려 나온 듯하다. 역사의 단죄를 받는 죄인처럼 서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기세는 사라졌다. 그 외침은 기념상의 상투적인 문구다. 두 사람의 작품인 『공산당 선언』의 구절이다.
 
기괴한 몸짓의 거인상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조형물.

기괴한 몸짓의 거인상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조형물.

라요시는 안내하면서 비감(悲感)에 젖는다.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사진 속 마르크스-엥겔스 석상은 압도적인 권위를 드러낸다. 1970~80년대 헝가리 공산당 건물 옆에 서 있을 때다. 옆에 군 의장대가 서 있다. 그런 조각상이 초라한 몰골로 다가온다. 마르크스 추종자들에게 이곳은 좌절과 낭패다. 라요시는 “마르크스 이론은 자본주의 병폐 척결과 사회 정의, 평등을 외쳤지만 헝가리 시민의 자유 박탈과 좌파 사회주의 독재로 변질돼 진행됐다”고 했다. 나는 영국 런던 하이게이트의 마르크스 무덤 동상을 떠올렸다. 그 얼굴상은 여유롭고 당당하다.
 
 
붉은색 담장의 공원 정문과 마르크스-엥겔스(오른쪽), 레닌 동상. 가운데 철문에 ‘폭정에 대한 한 문장’ 시가 적혀있다.

붉은색 담장의 공원 정문과 마르크스-엥겔스(오른쪽), 레닌 동상. 가운데 철문에 ‘폭정에 대한 한 문장’ 시가 적혀있다.

멘토 파크의 설계자는 건축가 엘레외드 아코스(Eleőd Ákos). 당시 30세. 그의 설치미술은 민주화의 열망을 드러낸다. “메멘토 파크는 독재에 대한 것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다. 공산 독재를 말하고 기록하며 건축할 수 있는 순간에 공원은 민주주의 것이 된다.”
 
자갈 위에 무릎을 꿇은 듯한 레닌 동상.

자갈 위에 무릎을 꿇은 듯한 레닌 동상.

공원은 축구장만 한 공터다. 붉은 벽돌 받침대가 띄엄띄엄 배치돼 있다. 그 위에 조형물이 서 있다. 레닌의 동상은 세 개. 그중 하나는 자갈 위에 놓여 있다. 오랜 기간 그 동상은 거리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제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듯하다. 레닌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다. 그는 마르크스 사상에 계급폭력과 증오를 강화했다.
 
조형물 대부분의 크기가 엄청나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조형 기법이다. 프로파간다(선전·선동) 효과에 집중한다. ‘1919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기념상이 시선을 잡는다. 해군 수병이 ‘전투 준비’를 외치며 달리는 형상이다. 몸짓은 기괴하고 도발적이다. 대중동원과 주민통제의 선전물이었다. 그 시대에 사람들은 동상에 별명을 붙여 비웃었다. “휴대품보관소 종업원 동상, 손님이 두고 간 스카프를 흔들며 쫓아가는 종업원.” 관광객 10여 명이 동상의 과장된 몸짓을 흉내 낸다. 스마트폰에 익살스러운 포즈를 담는다.
 
인솔자는 “공산 통치 때 사람들은 경건한 눈으로 조형물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그 시절을 조롱하면서 회고하거나, 의미 있게 소화한다”고 했다. 회상 공원은 절묘한 타임머신이다. 공원에는 옛 소련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는 나치 독일 편이었다. 소련군은 헝가리에 해방군으로 진주했다. 높이 6m의 ‘해방 소련군 병사’상이서 있다. 붉은 군대의 상징인 따발총을 메고 깃발을 들었다. 동상은 과거에 겔레르트 언덕에 있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도나우 강의 풍광은 수려하다. 그곳의 거대한 해방 기념탑은 그대로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정체성이 바뀌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의 기억물 ‘스탈린 구두’ 동상.

1956년 헝가리 혁명의 기억물 ‘스탈린 구두’ 동상.

정문 반대쪽에 검은 구두가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스탈린의 구두’ 동상이다. 소련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잔혹했다. 1956년 10월 헝가리 혁명이 있었다. 그것은 소련의 압박에 대한 민중궐기였다. 시민들은 엄청난 규모의 스탈린 기념 건축물(동상 높이만 8m)에 달려갔다. 동상을 부쉈다. 구두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리고 복제품을 여기에 전시했다.
 
 
따발총을 어깨에 멘 ‘해방 소련군 병사의 동상’. 공산주의 시절엔 관광 명소인 겔레르트 언덕에 있었다. 옆은 박보균 대기자.

따발총을 어깨에 멘 ‘해방 소련군 병사의 동상’. 공산주의 시절엔 관광 명소인 겔레르트 언덕에 있었다. 옆은 박보균 대기자.

리는 부다페스트 시내로 갔다. 도시의 건축미는 고혹적이다. 영웅공원 쪽 시민공원을 걸었다. 예전 그곳에 스탈린 동상이 있었다. 헝가리의 역사적 감수성은 인상적이다. 라요시는 “헝가리는 마자르(Magyar)인의 나라다. 1100년의 우리 역사에 고통이 있었다. 그 속에서 경험과 지혜를 얻으려 한다”고 했다. 고난은 13세기 몽골의 무자비한 기습, 오스만 튀르크의 점령,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1차대전 패배, 약소국으로 전락, 소련의 위성국 시절 속에 있었다.
 
나는 조선총독부(옛 중앙청) 건물의 해체 장면을 생각했다.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 여당 대표 김종필(JP)은 건물 일부(중앙홀, 국기게양대)의 이전·복원을 건의했다. 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을 가린다. 일제의 교활한 설계였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 역사에 편입됐다. 중앙홀은 제헌국회 의사당이었다. 해방 후 처음 태극기가 올라간 곳이다. JP는 “역사란 영광과 오욕을 함께 엮는다”고 했다. 하지만 건물 전체가 파괴, 철거됐다.
 
메멘토 동상공원

메멘토 동상공원

2018년 마르크스는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련 도서 출판이 활발하다. 런던 마르크스 흉상의 받침대 하단에 이런 글귀가 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그 언어는 혁명가에게 변혁의 영감을 주입했다. 마르크스 철학은 세상을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메멘토 파크의 기억은 선명하다. “마르크스 사상의 영향력은 가장 컸지만 가장 파괴적이었다.” 그 시선은 마르크스의 재등장을 역사의 역류(逆流)라고 비웃는다.
 
부다페스트(헝가리)·런던(영국)=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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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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