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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코딩 황제’ 구글을 혼내준 ‘김정은 키즈’의 운명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경제학자들과 비핵화 이후 북한을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편입시킬 방안에 대해 토론하던 중 북한의 소프트웨어 코딩 실력이 화제에 올랐다. 김일성대학 학생들은 2015년 인도에서 열린 세계적 인터넷 프로그램 경연 ‘코드 셰프’에서 정상에 올랐다. 2013년에는 ‘코딩 황제’라는 미국 구글팀을 혼내주고 우승했다. 일반인의 인터넷 접속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출발점이다. 김정은은 ‘세계 첨단 수준의 과학기술’을 강조해 왔다. 올해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과학과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은 만년대계의 사업”이라고 했다. 수학 영재를 대학 정보과학 소조(동아리)에 가입시켜 밤새 고강도 학습을 시키고 매일 시험을 보게 한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어 ‘단박 도약’을 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가 보인다. 평양 코딩 천재들은 ‘김정은 키즈’인 셈이다.
 
북·미 간 세기의 담판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윤곽이 잡힐 것이다. 북한이 첨단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정직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듣기 좋은 주례사 같은 레토릭이 아닌 의지가 담긴 확실한 이행계획서다.
 
안타깝지만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핵실험 중지를 선언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지만 ‘핵 폐기’가 아닌 ‘핵 군축’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으로 남겠다는 언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신속한 일괄타결’이 아닌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적 비핵화’로 갈 경우에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제재 해제와 보상을 받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게다가 북한은 단기간에 핵실험을 연이어 하고 핵무력을 완성한 뒤 서둘러 동결선언을 했다. 인도·파키스탄과 닮은꼴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에 면역력을 갖게 해 인도·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한다는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하경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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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합리적 의심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의심을 박살낼 충분한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의 친서를 받아 든 트럼프 대통령이 6·12 정상회담을 공식화하면서도 “두 번째, 세 번째 회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북·미 회담을 했을 때 곧바로 어떤 서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과 트럼프는 성공으로 포장된 합의문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 모두 ‘성공한 회담’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불량품’으로 드러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김정은은 중대 결심을 해야 한다. 진정으로 비핵화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래야 산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있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불신을 거둬 들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 박근혜는 북한이 붕괴한다고 믿고 남북접촉을 올스톱시켰다. 반면 문재인은 반대세력의 격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을 남·북, 북·미 대화의 출발점으로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김용 세계은행(WB) 총재와 나카오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각각 비공개로 만나 북한 경제개발 지원을 요청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을 빌려 “미국은 강하고, 세계와 연결돼 있으며, 안전하고, 번영하는 북한을 마음에 그리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을 믿어야 한다. 이제는 합의와 파기라는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직후 모두가 최악의 북·미 관계를 걱정할 때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오히려 북핵 해결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때는 믿지 않았지만 현실이 됐다. 문재인과 트럼프가 전환적 발상으로 판을 바꿨기에 가능했다. 김정은도 “개성공단 같은 것을 14개 더 만들라”고 지시했던 지도자다. 그뿐인가. “조선의 현 경제시스템으로는 힘들다. 다른 나라들의 경제시스템을 모두 연구해 보라”고 했지 않은가. 이제 판은 제대로 벌어졌고, 회심의 승부수가 필요하다.
 
북한이 ‘가짜(fake) 비핵화’를 꿈꾼다면 국제사회의 지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한국과 미국의 대화파 입지를 뒤흔들 것이다. 폼페이오는 “세상을 바꿀 평생에 한 번 있는 기회를 잡으려면 김 위원장의 대담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핵 개발에 올인한 북한에는 9200명의 관련 인력이 존재한다. 핵을 해외로 반출하려면 지난한 내부 설득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평양의 코딩 천재들이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떨치고 북한이 ‘단박 도약’을 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진정성을 담아 모든 카드를 던졌다. 이젠 김정은 위원장의 차례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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