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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색의 마술' 창조한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별세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이자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인 이영희씨가 오늘 별세했다. 82세. 사인은 폐렴이다.  
고인은 외국에서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고 불리던 우리 옷을 한복(Hanbok)으로 바로잡으며 한복의 현대화·세계화의 포문을 연 1세대 디자이너다. 1993년 파리에서 첫 번째 한복 패션쇼를 연 이후 고인은 우리 옷 ‘한복’을 들고 전 세계를 종횡무진 했다. 2000년 뉴욕 카네기홀 패션쇼 개최, 2004년 뉴욕 맨해튼 ‘이영희 한국 박물관’ 개장, 2007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 12벌의 한복 영구전시, 2010년 파리 오트 쿠튀르 쇼. 2008년에는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 ‘세계 60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됐고, 2015년에는 동대문 DDP에서 ‘한복의 세계화’ 40년을 집대성한 ‘이영희 전-바람, 바램’ 전시를 개최했다.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94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94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

“패션 디자인의 눈높이가 가장 높다는 파리에서 이영희의 ‘바람의 옷’ 전시 현지 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한국의 속담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 만들어낸 마술사 이영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바람의 옷’은 1994년 파리 쇼에 등장한 고인의 한복을 보고 당시 르몽드지 패션 수석기자였던 로랑스 베나임이 ‘바람을 옷으로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고 표현했던 말이다. 고인을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띄운 말인 동시에 보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평생을 자유로운 디자이너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말이다.      
94년 파리 무대에서 저고리 없이 치마로만 이뤄진 드레스형 한복들을 선보인 후 고인은 ‘국적 없는 옷’ ‘전통 한복이 아니다’ 등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때 고인에게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위로해준 사람은 전통복식학자였던 고 석주선 박사였다. 고인이 아이들의 과외비라도 벌어볼까 하고 41세에 부업으로 한복 만들기를 시작하면서부터 평생을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다. 2015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석 선생님의 믿음과 ‘바람의 옷’, 그리고 파리 무대로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내 상상력은 여전히 전통한복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생애 첫 파리 쇼 피날레 장면. 유명 일간지 르몽드 3면에 기사가 실렸다. 쇼 다음 날 10여 개 매체가 취재왔다. 바로 이날이 한복을 세계에 제대로 알린 첫 번째 순간이다.

1993년 생애 첫 파리 쇼 피날레 장면. 유명 일간지 르몽드 3면에 기사가 실렸다. 쇼 다음 날 10여 개 매체가 취재왔다. 바로 이날이 한복을 세계에 제대로 알린 첫 번째 순간이다.

고인은 ‘색의 마술사’라고도 불렸다. 늘 “한복은 우리 자연에서 더욱 아름답다”며 우리의 산천을 닮은 고운 빛깔의 옷들을 선보였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때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의 하늘과 바다, 땅, 기와 색을 띤 두루마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울릉도와 독도에서 최초의 한복 화보 촬영과 패션쇼도 진행했다. 배우 이영애와 함께 북한 금강산을 찾아 한복 패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평창겨울올림픽 오프닝 공연 의상도 선보였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경북 울릉군 서면 통구미 마을 해안가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경북 울릉군 서면 통구미 마을 해안가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선생이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기생 이미지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선생이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기생 이미지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

한국의 자연에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뽑아 선녀의 날개옷처럼 날아갈 듯 우아하고 자유로운 곡선을 만들었던 이영희. 하지만 고인이 정작 평생 자신의 색으로 여기고 살았던 건 ‘회색’이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회색을 쇼에 많이 등장시켰어요. 가장 좋아하는 색이고, 닮고 싶은 색이 죠. 왜냐하면 회색은 어떤 색깔과도 잘 어울려요. 치마·저고리의 색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 때 회색을 넣으면 양쪽을 다 편안하게 해주면서 멋진 어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죠. 사람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존재죠. 나는 깊고 깊은 색깔인 회색을 닮고 싶어요.”
얼떨결에 시작한 과외 일이었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복쟁이’가 돼 있더라. 고인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기 하루 전까지 쇼를 할 거예요. 쇼는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바람의 옷’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 이 시대 최고의 한복쟁이 이영희 디자이너의 명복을 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02-3410-6917). 유족은 남편 이종협, 장남 이선우, 차남 용우, 장녀 정우. 며느리 연지은, 사위 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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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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