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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나의 백두산 여행기

 손민호의 레저터치
백두산 일출은 귀한 장면이다. 북한에서 바라본 백두산 일출은 더욱 귀한 장면이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가 열렸을 때 백두 최고봉 장군봉 아래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일출은 귀한 장면이다. 북한에서 바라본 백두산 일출은 더욱 귀한 장면이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가 열렸을 때 백두 최고봉 장군봉 아래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4·27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평양냉면만큼 화제에 오른 명물이 있다. 백두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한 뒤 저녁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그 소원을 꼭 들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꼭’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구사했다. 이로써 백두산 관광 개시는 옥류관 서울 분점 개소만큼 남북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백두산 하면 나도 할 말이 있다. 현재 백두산 등정 루트는 모두 3개다. 중국에 북파와 서파가 있고, 북한에 동파가 있다. 여기에서 ‘파(坡)’는 중국어로 언덕이라는 뜻이다(남파는 압록강 쪽 루트로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관광단지가 형성된 ‘장백폭포’ 쪽 루트가 북파고, 금강대협곡과 왕지가 있는 고산평원 쪽이 서파다. 유일한 북한 쪽 루트 동파에는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2750m)이 있다. 
 
나는 이 세 루트를 모두 경험했다. 2004년에는 서파 5호 경계비에서 북파 달문까지 중국 쪽 천지를 끼고 13㎞를 걷는 ‘서파∼북파 트레킹’도 해봤다(서파∼북파 트레킹은 2014년 안전사고가 난 뒤 금지됐다). 우박 섞인 비바람 아래서 언 도시락 깨 먹으며 10시간 넘게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은 2005년 7월 23일 새벽에 일어났다. 1년에 20일도 채 안 열린다는 백두산 하늘이 이날 열렸다. 한없이 펼쳐진 구름 바다 위로 시뻘건 해가 불끈 솟았다. 장군봉 아래 모여 있던 남북 작가 150여 명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고은 시인은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다 엉엉 소리 내 울었다. 
 
평양·백두산 등지를 오가며 민족작가대회가 열렸던 13년 전 여름. 그때는 백두산 가는 길이 곧 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백두산은 여전히 중국 휴양지 ‘장바이산(長白山)’일 뿐이다. 하여 나는 대통령의 ‘꼭’과 ‘꼭’에서 다짐보다 설움의 정서를 먼저 읽는다. 
 
지금은 많이 정비됐다지만, 14년 전 서파 쪽 국경은 허술했다. ‘5호 경계비’라고 적힌 비석과 경계비 양옆에 박힌 철사가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알렸다. 하도 어설퍼 차라리 서글픈 국경선을 나는 기꺼이 넘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철사를 툭툭 밀었다. 북한 영토가 10㎝쯤 늘어났다. 
 
서파∼북파 트레킹 마친 뒤 적어놓은 게 있다. 천지 둘레길의 나머지 절반을 걸어야 내 여행은 비로소 끝난다고 다짐했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종주를 나도 ‘꼭’ 마무리하고 싶다. 
 
손민호 기자·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동파 - 유일한 북한 쪽 루트
백두산 천지. 흔치 않은 앵글이다. 북한 땅에서 중국 땅을 바라보고 찍었다. 멀리 연봉 사이로 작은 골짜기가 보이는데 여기가 중국 쪽 북파의 달문이다. 달문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장백폭포를 이룬다. 천지에서 물은 하나가 아니다. 천지의 남쪽 60%는 북한 물이고, 북쪽 40%는 중국 물이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천지. 흔치 않은 앵글이다. 북한 땅에서 중국 땅을 바라보고 찍었다. 멀리 연봉 사이로 작은 골짜기가 보이는데 여기가 중국 쪽 북파의 달문이다. 달문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장백폭포를 이룬다. 천지에서 물은 하나가 아니다. 천지의 남쪽 60%는 북한 물이고, 북쪽 40%는 중국 물이다. 손민호 기자

2005년 7월 23일 남북작가대회가 열린 직후 기념사진. 남북 작가 150여 명이 모였다. 손민호 기자

2005년 7월 23일 남북작가대회가 열린 직후 기념사진. 남북 작가 150여 명이 모였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아래 '백두산 밀영'의 북측 안내원. "북한 노래를 불러달라"는 남측 작가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이내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줬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아래 '백두산 밀영'의 북측 안내원. "북한 노래를 불러달라"는 남측 작가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이내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줬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아래 ‘백두산 밀영’은 북한의 성지다. 김일성의 항일 투쟁 근거지이자 김정일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김일성이 대원들을 위해 달았다는 ‘노루발 문고리’다. 한겨울 쇠로 만든 문고리가 얼어 대원들이 손을 다치자 노루발을 달았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아래 ‘백두산 밀영’은 북한의 성지다. 김일성의 항일 투쟁 근거지이자 김정일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김일성이 대원들을 위해 달았다는 ‘노루발 문고리’다. 한겨울 쇠로 만든 문고리가 얼어 대원들이 손을 다치자 노루발을 달았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북파 - 중국의 국민 휴양지
장백폭포. 중국 쪽 루트인 북파의 대표 명소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68m 높이의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장백폭포는 중국 쪽 이름이다. 북한에선 비룡폭포라고 부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백폭포. 중국 쪽 루트인 북파의 대표 명소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68m 높이의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장백폭포는 중국 쪽 이름이다. 북한에선 비룡폭포라고 부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백폭포 오른쪽 천문봉(2670m) 정상에 서 있는 천지 표지석. 천문봉 정상 아래까지 버스가 다닌다. 손민호 기자

장백폭포 오른쪽 천문봉(2670m) 정상에 서 있는 천지 표지석. 천문봉 정상 아래까지 버스가 다닌다. 손민호 기자

백두산 북파 달문 골짜기에서 바라본 천지 너머 북한 쪽 백두산 봉우리. 손민호 기자

백두산 북파 달문 골짜기에서 바라본 천지 너머 북한 쪽 백두산 봉우리. 손민호 기자

 
서파 - 천상의 화원
서파~북파 트레킹에서 만난 백운봉. 백두산에는 천지를 에우고 16연봉이 있다고 하는데, 해발 2661m의 백운봉이 중국 쪽 백두산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에서 만난 백운봉. 백두산에는 천지를 에우고 16연봉이 있다고 하는데, 해발 2661m의 백운봉이 중국 쪽 백두산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 손민호 기자

백운봉 오르는 길. 손민호 기자

백운봉 오르는 길.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에서 만난 천지. 평균 수심 213m, 최고 수심 384m다. 평균 수온이 2.2도로 아주 차다. 그래도 물고기가 산다. 북한이 1986년 산천어를 풀어놨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에서 만난 천지. 평균 수심 213m, 최고 수심 384m다. 평균 수온이 2.2도로 아주 차다. 그래도 물고기가 산다. 북한이 1986년 산천어를 풀어놨다. 손민호 기자

서파 산문 어귀 금강대협곡 아래는 고산평원이다. 여름이면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다. 손민호 기자

서파 산문 어귀 금강대협곡 아래는 고산평원이다. 여름이면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 중국 쪽 천지를 끼고 해발 2000m 이상 고산지대를 10시간 이상 걷는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 중국 쪽 천지를 끼고 해발 2000m 이상 고산지대를 10시간 이상 걷는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 해발 2000가 넘는 백두산 자락의 평원은 7월에도 눈이 녹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서파~북파 트레킹. 해발 2000가 넘는 백두산 자락의 평원은 7월에도 눈이 녹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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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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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