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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그대 앞에만 서면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집 벽에 그림을 걸겠다며 못 대신 벨크로 테이프(일명 찍찍이)를 샀다. 조금의 못 자국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발동한 탓이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찌직 찌직’하는 소리가 거실의 적막을 가르더니 ‘쿵’ 하고 누워있는 내 머리로 떨어졌다. 코와 뺨엔 상처가 파였다. 어처구니없는 그 황망함 속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맞아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거실은 당시 생후 6개월 젖먹이 아들과 육아휴직 중이었던 아내가 낮 시간을 보내던 곳. 액자가 그때 떨어졌다면, 아니 그 상상은 하지 않기로 하자. 어쨌든 나머지 액자도 다 떼버렸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안도감이 먼저 들었던 스스로가 멋쩍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다.
 
지난 이야기가 생각난 건 순전히 어버이날 때문이다. 어버이날은 내게 ‘숙제’ 같은 날이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털어내는 구원의 날이었다. 작은 선물을 드리며 ‘나는 괜찮은 아들’이라 생각했던 그런 날들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어색해 그저 선물만 건넸다. 대한민국 딸·아들이라면 그렇지 않을 이 어디 있을까. 솔직함을 무기로 불합리에 맞서며 당차게 살아가는 청춘들이지만, 이런 당당한 딸·아들로 길러내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던 부모님 앞에서는 ‘사랑한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다.
 
한 소셜마케팅 회사가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행인들을 상대로 부모님께 무작정 전화해 ‘사랑해’라고 말하게 했는데 대부분이 쉽게 말을 떼지 못했다. “낮술 했어?” “돈 필요해?” “나쁜 짓 한 거 아니지?”란 말로 답한 부모님들 반응은 대한민국 아들·딸의 무심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일주일간 연인과의 통화 시간은 140분, 친구는 97분인데 반해 부모님과는 단 6분이라고 한다(전국 19~40세 남녀 500명 대상).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에선 양어깨에 부모님을 업고 수미산에 백천 번 올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갚기는커녕 그 빚만 늘려가고 있다.
 
지난 주말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왔다. 위로 홀로 계신 할머니를 모시고, 아래로는 4명의 손자를 줄줄이 데리고 부모님은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이날 갔던 울산 자수정 동굴은 부모님이 최근 다녀온 곳. 이처럼 매번 좋았던 곳은 기억해뒀다가 우리를 꼭 데려간다. 여행 후 아버지가 아내에게 보낸 문자다. “엄마 아빠는 너희들 예쁘게 사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 항상 건강 조심하고 사랑한다.” 이 말,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간다. 우리네 부모님의 행복 기준에는 아직도 우리의 ‘안녕’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노진호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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