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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홍준표가 미워도 품어야 한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엔돌핀이 솟는다”고 한다. 전쟁 위기를 평화 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자부심이 넘친다. 34세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뭔가 새롭게 하고 싶은데 나이든 저 사람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미국과 잘 지내면서 고도성장을 하는 베트남식 발전 모델을 선호한다는 의중도 털어놓았다. 문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신호다.
 
김 위원장과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트력제’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내 조선을 구한 명나라 만력제에 비유한 별명이다. 중국까지 끌어들인 강력한 제재와 군사적 위협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화가 상이다(Peace is the price)”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지금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가 넘는다. 이러니 이 정부 사람들의 엔돌핀이 솟을 만도 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최종 목표인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지뢰밭이다. 벌써 정상회담 당일에도 이상 신호가 발견됐다. 두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에 열린 만찬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는 초대받았지만 야당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북측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같은 보수 정당 사람을 왜 부르지 않았느냐”며 불만이었다고 한다. 야당이나 차세대 주자들과도 사귀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상회담은 희대의 위장 평화쇼”라고 저주를 퍼붓는 홍 대표인지라 초청해도 불참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당에서도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그가 돌출발언을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제1 야당 대표의 상징성을 감안해 초대했어야 한다. 북측도 홍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하거나 다소 거친 언사를 늘어놓더라도 ‘허허’ 웃으면서 넘긴다는 시나리오까지 준비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하경칼럼

이하경칼럼

이러고도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초당적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홍 대표가 만찬에 초대받아 김 위원장과 원샷을 하고 덕담을 나눴더라면 지금처럼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는 독설을 퍼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측 인사는 “보수 야당이 만찬에 참석했다면 나중에 딴지를 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북한보다는 청와대가 더 깊이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다원적 가치의 민주주의 국가다. 이념과 지향을 달리하는 여당과 야당이 공존하고 정권을 주고받고 있다. 그래서 국가를 지키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다각적인 지혜를 골고루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습 독재국가에 없는 그 힘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뤘고,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하려는 순간에 초당적 협력의 파트너가 돼야 할 제1 야당 대표를 패싱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건 홍준표라는 개인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 민주주의 시스템의 작동을 거부하는 협량(狹量)이다.
 
문 대통령은 진정성을 갖고 북·미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잘 해왔다. 이제부터는 남남갈등을 해소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이젠 보수 정부와 지도자의 공로도 합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최초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을 담았다. 무장 공비 31명을 보내 자신을 죽이려던 김일성 주석에게 심복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보내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낸 사람은 보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의 남측 주역도 보수인 노태우였다. 군인 출신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최초의 통일 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서울대 교수 출신 이홍구 통일원 장관에게 맡기고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세 야당 총재의 의견을 반영해 초당파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보수의 기여를 인정하면 모든 세력이 당파와 이념을 초월해 힘을 합쳐야 할 당위가 성립한다.
 
그런데도 끝내 야당과 보수를 배제하는 건 자해행위다. 내부의 남남갈등조차 해소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체제가 다른 남과 북의 화해협력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홍준표가 아무리 미워도 품고 같이 가야 한다. 그것은 숙명이고, 독재국가에 없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국가의 위대한 품격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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