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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만원짜리 고무 장갑, 명품이라 부르지 말자

 
하다하다 고무장갑까지 나왔다. 캘빈 클라인이 내놓은 신상품 이야기다. 브랜드 측은 2018 봄·여름 컬렉션에 나왔던 분홍색 고무장갑을 ‘신상 액세서리’로 최근 선보였다. 캐나다 온라인 편집숍에서 판매했던 제품의 가격은 390달러. 한화로 42만원대다. 이 값이면 뭐라도 다르겠지 싶지만, 딱히 특징은 없다. 100% 합성고무 소재에 로즈 핑크라는 컬러라는 설명이 붙었을 뿐. 로고마저 없었다면 부엌에 걸린 여느 고무장갑과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업계 반응 역시 냉소적이다. 하퍼스바자·호주 보그 등 패션 전문 매체들조차 제품을 소개하며 “이 고무 장갑을 누가 과연 사겠냐”는 우려와 “정말 우리가 아는 그 고무 장갑이냐”는 허탈감을 드러냈을 정도다.  
 
대체 왜 캘빈 클라인이라는 유명 브랜드가 이런 걸 내놨을까 궁금하다면 일단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의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의 혼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고무장갑은 남의 손에 설거지를 시킬 정도로 부를 축적한 미국인의 심리를 상징하는 것일까.  
 
여전히 해석이 어렵다면 이번 시즌을 돌이켜보자. 최고의 유행 소재가 고무와 비닐 아닌가. 이미 샤넬·버버리 등 유수 브랜드가 이 값싼 소재를 활용해 가방·신발 등을 선보인 마당에 캘빈 클라인이 이를 놓치지 않은 것이리라.
 
목적이 무엇일지라도 고무장갑의 탄생은 한낱 해프닝이라 하기 어렵다. 최근 패션계엔 고무장갑 말고도 ‘황당 럭셔리’가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해 발렌시아가가 이케아의 1000원짜리 쇼퍼백을 모방해 200만원 대 가죽 가방으로 만든 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프라다는 로고만 찍혀있을뿐 딱히 별다를 게 없는 문구용 클립을 20만원 대에 내놨고, 슈프림은 벽돌 한 장에 3만원 대에 팔았다. 올해 구찌 역시 목욕탕에나 들고 갈 법한 고무 가방을 100만원대에 선보였다. 트위터에서 공개된 미국 팝가수 카니예 웨스트의 고무 슬리퍼는, 미국 죄수용 신발 같다는 등의 혹평 속에서도 60만원 대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 제품들에 딱히 비난할 것도, 논란을 삼을 것도 없다. 제아무리 비싸다한들 누군가는 원하고(대부분 품절 사태를 빚는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사하는 바는 있다. 우리도 ‘럭셔리’의 의미를 재정립할 계기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써 온 럭셔리라는 용어는 업계에서, 언론에서, 명품이라는 말과 혼용돼 오기 일쑤였다. 명품이 뭔가. 남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최고의 재료와 기술로 만든 제품이라는 의미다. 지금껏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내세운 것도 이와 같았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가죽과 털, 거기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장인의 손길로 그네들의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고품질을 기대할 수 없는 럭셔리라면 ‘극소수를 위한 사치품의 끝판왕’쯤으로 해석되는 게 맞지 않을까.  
 
여기서 사족 하나. 상식을 뛰어넘는 가격은 어찌 보면 저렴하다 할 만하다. 럭셔리 브랜드가 지켜온 오랜 가치를 서서히 희석시키는 대가일 테니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우리를 웃기는 값, 놀래키는 값이라고 해 두자.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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