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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 철도, 분단의 상징 아닌 번영의 마중물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철도라는 운송 수단이 꽤 오랜만에 세간의 화제로 등장했다. 그것도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의 발언을 통해 촉발됐다는 점이 이채롭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교통 상황에 대해 ‘불비’ ‘불편’ ‘민망’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면서 평창 겨울올림픽의 고속철도 이야기를 불쑥 꺼내 들었다.
 
이런 대화 내용은 ‘판문점 선언’에 그대로 녹아 있다.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마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2007년 10·4 선언의 ‘개성-신의주 철도 공동 이용을 위한 개보수 합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이다.
 
“왜 철도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북한은 철도를 ‘나라의 동맥이며 인민 경제의 선행관’이라고 정의한다. 김일성은 철도 운행을 인체에 비유해 혈액이 순환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울러 철도가 잘 운영돼야만 공업과 농업 생산이 보장되고 경제 건설이 빨리 추진될 수 있으며, 인민 생활도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철도의 중요성이 유독 강조되는 이유는 철도가 대량 수송과 정시성이 확보되는 안전한 수송 수단이며, 소요 시간도 짧고 원가가 저렴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철도의 수송 원가는 자동차의 34%, 해상 운송의 53%라고 한다. 그렇다면 혈관·혈액과 같은 역할을 하는 북한의 철도 상태는 과연 어떨까. 그 대답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비·불편·민망의 대상이다. 매우 절망적이다. 북한은 철도가 화물의 90%, 여객의 60%를 분담하는 철도 중심 국가다. 철도의 총연장은 2013년 기준으로 약 5300㎞다. 남한보다 약 1700㎞가 길다. 그러나 만성적인 전력난으로 철도의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하게 된 지 20년 가까이 된다. 북한 열차 시각표상으로 가장 빠른 기차인 평양-신의주 간 국제열차의 표정속도(scheduled speed)는 시속 45㎞에 불과하다. 북한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열차는 시속 20㎞ 이하이다.
 
1877년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파견된 김기수가 철도를 난생처음 보자 ‘불을 내뿜는 수레’라는 뜻에서 열차를 화륜거(火輪車)라고 불렀다. 그는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같이 날뛴다’고 묘사했다. 평창을 방문한 북한대표단은 우레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같이 날뛰는 21세기 화륜거인 고속철을 체험한 셈이다.
 
시론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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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속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 북한은 최단기간 이내에 최상의 성과를 내는 사업방식으로 ‘속도전’을 추진해 왔다. 북한의 속도전은 1956년 ‘천리마 속도’를 시작으로 ‘평양 속도’ ‘비날론 속도’ ‘강선 속도’를 거쳐 ‘마식령 속도’ ‘만리마 속도’까지 발전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 생활 향상’ ‘인민 대중 제일주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혹시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부귀영화의 징표 중 하나로 지금보다 열 배 빠른 ‘나르는 철도’인 고속철도를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속도전을 구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남북한 교통망 연결사업은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단절 구간의 복원은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상업적 운행은 실패했다. 따라서 경제성에 입각한 시범사업을 추진해 사업의 성공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관련 산업과 패키지로 묶어 경제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철도망 건설에 따르는 막대한 투자비용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일방적인 지원방식보다 북한 교통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도 가능한 대안이다. 북한 철도망 건설 시 남측에서 생산된 침목을 사용할 경우 개당 가격은 1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남측의 기술과 자재 지원으로 북한 시설에서 생산한다면 20% 가격으로 조달할 수 있다. 나진-하산 철도망 연결사업의 다자간 협력 모델은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은 북한이 철도 용지를, 러시아가 사업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공동 건설 및 운영되고 있다.
 
북한 철도 현대화사업은 퍼주기의 상징은 아니다. 북한의 철도는 주변 국가와의 연계성, 배후시장의 잠재력 측면에서 수익성 창출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인민의 피가 스며있다고 하는 철도와 토지도 남북 경제협력의 대상으로 과감하게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한반도에서 철도는 침탈·분단·아픔의 상징이 아닌 새로운 희망과 번영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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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