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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남북 NLL·DMZ 협상 ‘오사카 성 함락’의 교훈 되새겨야

2010년 11월23일 오전. “북측의 영해에 단 한 발의 총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적인 물리적 조치가 뒤따른다”는 북한군 전화통지문이 국방부로 날아왔다. 이날 오후 연평도 해병대는 우리 해상에 K-9 등 포병 사격훈련을 했다. 사격이 끝나자 북한은 연평도에 무차별로 포탄을 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 정상회담 후속조치에 NLL과 DMZ가 여전히 휘발성 강한 이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민간인과 해병대 장병 등 4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평도 시가지는 파괴되고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한 이유는 그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에 해병대가 사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병대가 사격한 곳은 NLL 남쪽 해상으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국이 관리해온 우리 구역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우리 해상을 ‘북측의 신성한 영해’라고 우기면서 연평도에 포격해 민간인까지 살상한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수용했다. 두 정상은 ‘10.4 선언’을 통해 이 특별지대에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11월27일 평양 대동강변에 위치한 인민무력부 휴양소 송전각 초대소에서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위한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렸다. 남측 대표는 김장수 국방장관, 북측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었다. 당시 최대 관심사는 남북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의 설정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그 기준선을 어떻게 정하느냐였다. 김 장관은 당연히 NLL을 주장했다. 그러나 북측은 그들이 선언한 해상경비계선을 내놨다. 그러면서 남측이 NLL을 포기하도록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경비계선은 2004년부터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에 걸쳐있는 이 선은 NLL보다 남쪽 해상의 우리 어장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 김일철은 회담에서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문제를 우선 논의하지 않으면 다른 논의를 할 수 없다”고 다짜고짜 위협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회담이고 뭐고 당장 서울로 돌아가겠다. 돌아가서 사퇴하면 그만이다”며 배수진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장관은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에게 NLL 문제를 일임해달라고 했고 노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마음대로 하고 오세요”라고 허락했기 때문이다.(이상철 ‘북방한계선’)
 
2박3일간의 국방장관회담에선 경계선 획정문제에 결말을 내지 못했다. 회담에서 남측은 NLL을 기준해 남북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고 했으나, 북측은 그들이 주장하는 해상경비계선과 NLL 사이의 우리 해상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고 했다. 남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7차 장성급군사회담을 가졌다. 우리측은 이홍기(전 3군사령관) 소장, 북측은 김영철 소장(현 통일전선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왔다. 그러나 결국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끝났다.
 
NLL은 한국전쟁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그땐 한반도의 모든 섬을 유엔군이 관할했다. 북한 해·공군이 완전히 무력화돼서다. 그러나 클라크 사령관은 정전협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동·서해 북쪽 섬들을 북한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또한 우리측 해·공군 초계활동이 북상하지 않도록 북방한계선(NLL: North Limit Line)을 정해 제한했다. 북한으로선 클라크 사령관의 조치가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해·공군 능력을 회복하자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군은 어민들의 생명줄이기도 한 NLL을 피로써 지켜왔다. 이번에 4.27 정상회담에서 평화수역과 남북공동어로구역을 다시 추진키로 했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차원에서다. 조만간 열릴 군사회담에서 북한의 행태가 과거처럼 반복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4.27정상회담의 또다른 과제는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다. DMZ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냉전의 유산이다. 남북 대결과 갈등의 상징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과 동시에 발효됐으며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고 있다.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씩 설정돼 있다. 유엔사령관의 핵심 임무가 DMZ에서 군사 충돌을 방지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새화된 DMZ의 비무장화는 그리 간단치 않다.
 
현재 DMZ는 말로만 비무장지대이지 중화기로 무장한 콘크리트 요새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정전협정은 DMZ내엔 요새, 병력 상주, 중화기 도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DMZ의 북한 쪽은 심각하다. 북한군은 철책을 아예 비무장지대 안으로 1∼1.5㎞나 들어와 구축했다. 그런 뒤 군사분계선과 철책 사이에 우리의 GP(전방초소)와 동일한 민경초소를 160여개나 설치했다. 또 북한 DMZ 안에 민경대대까지 배치했다. 이런 북한군의 공세적인 DMZ 활동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군은 DMZ 끝단을 따라 철책을 구축했다. 또한 DMZ 안에는 북한군 민경초소에 대한 감시 목적으로 GP를 60개 가량 운영하고 있다. 대대는 DMZ 밖에 두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군사회담에서 DMZ 평화지대화를 위해 GP를 철책 바깥으로만 이전키로 합의할 경우, 한국군은 DMZ에서 완전히 나가게 된다. 그러나 북한군 민경초소와 대대는 철책 밖이지만 DMZ 내에 상주하게 된다. 따라서 DMZ 안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우리측이 크게 불리해진다는 얘기다.
 
17세 초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머물고 있던 철옹성인 오사카 성을 함락하기 위해 꾀를 냈다. 이에야스가 오사카 성을 맹공했으나 희생자만 속출해서다. 오사카성은 바다와 강으로 둘러 싸인데다 2중의 깊은 해자(수로)를 가지고 있었다. 해자가 있는 한 공략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이에야스는 특사를 보내 전투를 그만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히데요리를 회유했다. 대신 이에야스가 평화의 상징으로 해자를 메우자고 제의했는데 히데요리가 받아들였다. 히데요리는 7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오사카 성을 둘러싼 8㎞에 달하는 해자를 메웠다. 몇달 뒤 이에야스는 오사카 성으로 총공세를 명령했고 난공불락의 성은 함락됐다. 히데요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도쿠가와 막부가 시작됐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냉전구조 해체 과정에서 히데요리와 같은 치명적 실수가 재현되지 않도록 신중하기 바란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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