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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맞춘 스페인의 시간…표준시에 숨은 정치학

 
 
북한은 오는 5월5일부터 한국 표준시에 시간을 '통일'하기로 했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일 평화의집 1층 접견실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사진 청와대]

북한은 오는 5월5일부터 한국 표준시에 시간을 '통일'하기로 했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일 평화의집 1층 접견실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사진 청와대]

북한이 오는 5일부터 현재의 표준시인 '평양시간'을 한국의 표준시와 맞춥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 표준시에 ‘통일’하는 것이지요. 서로 다른 시간대(time zone)를 썼던 남과 북은 지난 4월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시작 시간도 각각 오전 9시30분(남), 오전 9시(북)로 달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만난다면 그땐 서울과 평양이 같은 시간으로 보도할 것입니다.
 
북한이 평양시를 도입한 것은 2015년 8월15일. 당시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평양시를 채택한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3년 만에 평양시를 포기하게 된 것은 남북한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 뿐 아니라 실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려는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시간 단위로 시차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30분을 끼워 넣어 계산하려면 아무래도 번거롭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30분 시차를 쓰는 나라가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네팔은 이웃 나라 인도와 시차가 15분 차이가 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알쓸신세가 세계 표준시에 숨은 정치경제학을 파헤쳐 드립니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의 대형 시계가 센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안쪽에서 찍은 사진. 이 시계는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사진 위키미디어]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의 대형 시계가 센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안쪽에서 찍은 사진. 이 시계는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의 역사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사진 위키미디어]

철도 여행 활발해진 19세기에 첫 도입
세계 시간의 기준점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입니다. 천문항해술 연구의 목적으로 찰스 2세가 1675년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에 설립했지요. 지금은 몇 만 분의 1초까지 다투는 시대이지만, 농경사회 때만 해도 일상에서 시간 개념은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시간 관리 필요성이 커진 것은 철도가 놓이고 선박 여행이 활발해진 19세기 이후입니다. 제국주의 국가들로선 동서양에 걸친 광활한 식민지 관리의 필요성도 반영됐을 겁니다.
 
1884년 미국 워싱턴 국제회의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본초자오선으로 하는 그리니치 표준시(Greenwich Mean Time) 즉 GMT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경도 15도마다 1시간씩 시차가 생깁니다. GMT는 1972년부터 협정세계시(Universal Time Coordinated, UTC)라는 공식 용어로 대체되긴 했지만 여전히 통용됩니다. 한국의 표준시는 UTC+09:00, 즉 그리니치 시간보다 9시간 앞섭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우리보다 30분 늦은 평양시(UTC+08:30)를 써오다 이번에 한국 시간과 다시 맞추게 됐습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모두가 경도 15도 기준으로 국경선이 나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국제 기준에 따라 시간 단위로 끊어지는 표준시를 채택합니다. 그런데 평양시처럼 30분 시차를 둔 나라가 있습니다. 이란·아프가니스탄·미얀마·인도·스리랑카 등입니다. 예컨대 인도는 UTC+05:30입니다. 특이하게도 바로 옆 나라 네팔은 UTC+5:45입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30분 엇박자를 뒀고, 네팔 왕국은 접경국가 인도에 예속되기 싫어서 인도보다 15분 빠른 표준시를 채택했다고 알려집니다.
 
반미주의자 차베스, 30분 차이 '삐딱 선' 타 
표준시가 국제 정치와 얽힌 또 다른 사례는 베네수엘라입니다. 2007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다 많은 ‘적절한’ 자연채광 시간을 준다는 명분으로 표준시간대를 30분 늦췄습니다. 실제로는 완강한 반미주의자인 차베스가 제국주의자들이 마련한 국제기준을 거부해 ‘삐딱 선’을 탄 것으로 풀이됩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016년 ‘전력난 해소’를 명분으로 다시 표준시를 30분 앞당겨 현재는 UTC-04:00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스페인의 시간이 가장 ‘정치적’입니다. 원래 스페인은 옆나라 포르투갈처럼 영국과 같은 시간대(UTC+0, 서머타임 땐 +1)를 썼습니다. 하지만 1940년 2차 대전 중에 나치 독일과 작전 협력을 위해 같은 시간대(UTC+1, 서머타임 땐 +2)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픽을 보면 아시겠지만 스페인의 시간대는 같은 경도상의 영국을 비껴나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등과 같은 기형적 형태입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13년 스페인 의회는 표준시를 1시간 늦추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적극적이었습니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1939~75) 치하에서 극심하게 탄압 당했던 카탈루냐는 “히틀러의 동맹이었던 독재자 프랑코가 우리를 나치 시간대에 놓았다”며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카탈루냐의 시간대 개혁 자문위원회장 파비안 모헤다노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특히 깨어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단지 시간대 변경이 아니라 지난 50년간 생활습관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시간대가 바뀌면 스페인 특유의 ‘시에스타’(낮잠)는 어떻게 되느냐 등 논의가 분분하다가 이후 카탈루냐 자치독립 등 다른 정치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시간대 전환 문제는 쑥 들어간 상황입니다.
 
표준시 원조국 영국도 변경 추진 
심지어 표준시 원조국 영국도 시간대 전환을 검토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대륙 국가들과 1시간 시차가 나는데 그게 여러 경제·일상 활동에서 불편을 준다는 이유죠.  
 
2011년 보수당 연립정부는 '신(新) 관광전략'을 발표하면서 `이중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 도입을 공론화했습니다. 이중서머타임제란 현행 시간대를 유럽과 1시간 격차 그대로 유지하되 서머타임 기간에만 시계의 시침을 두 시간 앞당기는 방안입니다. 이와 함께 아예 1년 내내 시간대를 1시간 앞으로 당기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추진자들은 아침엔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활동시간 대에 해가 길어져 근로시간과 야외활동에 편리를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 활성화와 건강 증진 등의 효과가 있고 난방비도 절약된다는 거죠. 무엇보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 주요 유럽국과 시간대가 같아져 혼란과 낭비가 없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북쪽 지방인 스코틀랜드는 시큰둥했습니다. 안 그래도 겨울철 출근시간이 어둑어둑한데 지금보다 더 일찍 나서야 하면 교통사고 및 어린이 안전사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반대론자들은 또 해가 길어지는 게 결국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이중서머타임제는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이탈)가 가시화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 2007년 영국 런던 템즈강변 국회의사당 빅벤을 배경으로 서 있다. 스페인과 영국은 1940년 전까진 같은 표준시(GMT)를 썼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 2007년 영국 런던 템즈강변 국회의사당 빅벤을 배경으로 서 있다. 스페인과 영국은 1940년 전까진 같은 표준시(GMT)를 썼다.

표준시는 정부의 통치행위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크라이나(UTC+02:00)에 속했던 크림반도는 2014년 3월17일 “오는 30일부터 모스크바(UTC+03:00) 표준시를 채택한다”고 발표합니다. 전날 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률로 러시아 합병안이 통과된 직후죠. 3월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의회에서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병합을 선포합니다. 서방 등 국제사회가 맹렬히 규탄했지만 지금도 크림반도의 시간은 모스크바와 함께 흘러갑니다.  
 
크림반도 병합되자 모스크바 시간대로  
러시아는 동서 길이가 9000㎞에 이릅니다. 가장 서쪽의 모스크바 시간대와 극동 마가단 주의 시간대는 9시간 차이가 납니다. 그나마 11시간 시차였던 걸 2010년 9개 시간대로 줄인 겁니다. 미국도 총 9개의 공식 시간대가 있는데 알라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북미 내륙은 대체로 4개 시간대에 속합니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는 광활한 영토에 단 한 개의 시간대를 사용합니다. 중국의 경우 1912년 중화민국 성립 당시엔 5개의 시간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49년 공산당 정부가 성립하면서 베이징 단일시간대(UTC+08:00)로 통일됐습니다. 시차를 인정하면 분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정치논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인도도 하나의 시간대(UTC+5:30)를 씁니다. 이러다보니 북동쪽 아삼 주 같은 경우 농작물 재배에 적합한 ‘가든 타임’이 표준시와 맞지 않다며 시간대 변환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인도 전체가 표준시를 30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UTC+6으로 변경할 경우 시간당 20억㎾의 전기 절약 효과가 있다는 2012년 연구도 있습니다.
 
인도처럼 요즘 시간대 변환은 경제적인 이유가 큽니다. 남태평양 사모아는 2011년 12월 30일 하루를 영원히 없애버림으로써 표준시를 1일 앞당겼습니다. 덕분에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나라’가 돼 관광상품도 바뀌었습니다. 북한이 표준시를 한국과 맞추는 게 북·일 수교를 염두에 두고 경제적 편익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글로벌 정치와 경제에서 앞으로 흐르기도, 거꾸로 흐르기도 하는 게 시간입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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