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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제 다음날 폭탄 때렸다···트럼프 '고무줄 철강관세'

 
 미국 정부의 철강관세 정책은 ‘이현령 비현령(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국가 면제와 개별제품 면제를 미국 정부 입맛에 맞게 혼용하면서 어느 누구도 관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물망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까지만 해도 한시름 놓는듯했던 한국 철강업계가 바로 다음날 당한 굴욕이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3월 22일 오전 경북 포항 한 철강회사 제품창고에 열연코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2일 오전 경북 포항 한 철강회사 제품창고에 열연코일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백악관은 전날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의 수정안을 승인 발표하면서, 한국에 가장 먼저 관세면제 지위를 인정해줬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호주산 철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쿼터 등 무관세 합의에 도달했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최종 합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ㆍ멕시코에 대해서는 관세 유예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해줬다. 무기한 관세면제를 주장하는 EU와는 협상기간이 더 필요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협상과 연계해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첫 면제 처분을 받은 우리 제품이 당분간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하루 만에 물거품이 됐다. 1일 미 무역위원회(USITC)는 한국산 탄소ㆍ합금강 선재 제품이 미국의 철강 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최종 판정, 41.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위는 이날 성명에서 한국과 함께 이탈리아ㆍ터키ㆍ스페인ㆍ영국 등 모두 5개국의 탄소ㆍ합금강 선재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영국 제품에 가장 높은 147.63%의 반덤핑 관세가 매겨지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각각 11.08∼32.64%, 12.41∼18.89%가 부과된다. 터키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율은 4.74%∼7.94%로 가장 낮았다.
 
선재는 추가 가공을 거쳐 못과 나사, 철사 등으로 팔린다. 우리나라의 탄소ㆍ합금강 선재 관련 대미 수출금액은 전체 철강 수출액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미국 정부가 국가별로 관세면제를 해주고 개별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수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국가 관세면제 지위를 부여하더니,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 관세라는 ‘철퇴’를 휘둘러대고 있으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물망 관세 정책인 셈이다.
 
이미 한국의 관세 면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최고위층은 이견을 제시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날 경제전문채널 CNBC에 출연해 “한국은 2015년부터 3년간 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매우 낮은 쿼터로 합의했다”면서 “나는 그것을 면제라고 부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중앙포토]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중앙포토]

 
‘매우 낮은’ 쿼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실질적인 관세면제 혜택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4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에서 로스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철강업체에 부과되고 있는 반덤핑 관세 발동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 미 상무부는 백 장관이 방미하기 전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해 업체별로 많게는 7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괘씸죄’ 논란을 낳기도 했다.  
 
유정용 강관 대미 수출 1위 업체인 넥스틸이 상무부에 자료 제출을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비판정에서 받은 관세 46.37%보다 29.44%포인트 높아진 75%의 반덩핌 관세를 매긴 것이다.  
 
조사받는 기업이 자료 제출 등 조사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미 상무부가 자의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산정하는 ‘불리한 가용정보(AFA)’ 규정을 적용했다. 이 때문에 관세 부과 자체가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속출했다. 2위 업체인 세아제강은 미국에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6.75%의 비교적 낮은 관세를 부과했다. 바꿔말하면 수백억 원을 들여 미국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지 않으면 고율의 관세를 마음껏 부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철강시장에서 수입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5% 수준이었다.(왼쪽) 수입물량 가운데 16.1%가 캐나다산으로 가장 많다. 자료=미 상무부

미국 철강시장에서 수입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5% 수준이었다.(왼쪽) 수입물량 가운데 16.1%가 캐나다산으로 가장 많다. 자료=미 상무부

 
미국 정부가 이처럼 고무줄ㆍ그물망 관세 정책으로 미국내 철강기업을 비호하더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초 삼성과 LG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청원을 해 실적개선을 노린 미국 세탁기업체 월풀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반토막이 난 것으로 발표됐다. 월풀은 1분기 9400만 달러의 순익을 거뒀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억5300만 달러에 비해 62.8% 수준이다. 매출은 49억 달러로 비슷했지만 월풀 주가는 지난해 7.2% 하락한 데 이어 올해 들어 10% 가량 더 떨어졌다. 반면 삼성과 LG전자의 세탁기는 세이프가드 타격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월풀은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를 계기로 올해 실적 개선을 노렸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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