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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마음의 굳은살을 키워 당당하게 살길 바래요

김남중의 공감현장 
가수 인순이의 ‘해밀학교’ 
해밀학교 학생들이 합창 수업 시간에 강예슬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바람의 빛깔’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11일 개교 5주년 기념식 행사 때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 앞에서 전교생이 이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최정동 기자]

해밀학교 학생들이 합창 수업 시간에 강예슬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바람의 빛깔’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11일 개교 5주년 기념식 행사 때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 앞에서 전교생이 이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최정동 기자]

‘함께 비를 맞고 서로 우산이 되어 주는 학교’. 강원도 홍천에 있는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의 소개글 첫 대목이다. 이 학교는 가수 인순이가 5년 전 세웠다. 흐린 날씨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게 맑은 하늘 같은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학교 이름을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란 의미를 담아 ‘해밀’이라 지은 연유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배움의 공동체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마음의 굳은살을 키워 당당한 한국 사람으로 잘 어울려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해밀 교육의 요체는 ‘혼자가 아닌 함께’다. 그 어울림 현장을 따라가 봤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2층짜리 붉은 벽돌의 해밀학교는 아담했다. 학교를 찾은 9일은 마침 이틀 뒤로 다가온 개교기념식 준비로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오후 3시25분 2층 큰 교실. 전교생 38명이 한데 모여 진행하는 ‘합창 수업’이 시작된 지 5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강예슬(32) 선생님이 반주 준비를 하는 틈을 타서다.
 
“선생님, 모레 비 온대요~.” “선생님, 여기 좀 봐요. 언니가 때렸어요.” 칠판에 적힌 ‘조용히 하세요’란 경고는 안중에도 없다. 여느 중학교 교실 풍경과 다를 게 없을 듯싶었다. 반주가 시작되고서야 아이들이 달라졌다. 장난기가 가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합창을 했다. 영화 폰카혼타스의 삽입곡 ‘바람의 빛깔’. 개교기념식 공연 때 부를 곡이기도 했지만 다문화라는 특성을 가진 아이들로선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듯했다.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위스타트 인성교육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종이로 탑을 쌓는 협업 모습. [최정동 기자]

위스타트 인성교육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종이로 탑을 쌓는 협업 모습. [최정동 기자]

합창 수업은 마음을 모으고 화합하는 공감의 시간이다. “다양성 존중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모두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되 다른 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얘기해 주죠.” 강 교사는 “아이들이 출신 국가 배경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는 게 아니라 누구와도 어울리는 유연함을 보이는 게 어른들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졸업할 즈음이 되면 ‘난 사랑받는 존재였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합창이 끝나자 일부 아이들이 우르르 1층 다목적 교실로 몰려갔다. 김은정(49) 선생님과 함께하는 ‘위스타트 인성교육 수업’이 이어졌다.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함께 소통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요리’ ‘사진’ ‘매거진’ ‘가면’수업으로 꾸며집니다.” 김 교사의 설명이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매거진’ 수업. 4명이 한 조를 이뤄 낡은 잡지에서 찢어낸 종이로 탑을 쌓는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협업’이 배움의 주제다. 부모가 중국동포인 김미나(16)양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다 같이 모여 하는 거여서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더 친해질 수 있는 점이 정말 좋다”고 했다.
 
인성교육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김 교사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게 됩니다. 아이들 안에서도 상처고 있고 소외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면 수업에서 아이들은 그런 자기 내면의 얘기를 꺼냅니다. 드러내지 않던 아이들이 당당해지지요. 처음에 아이들은 사진 찍히는 걸 두려워합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옆모습 아니면 뒷모습만 찍으려고 하지요. 지금은 정면 모습을 찍어 학교 복도에 전시까지 할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안쓰러웠던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밝은 모습으로 바뀌는 걸 지켜보면서 제가 오히려 행복합니다.”
 
해밀학교 후원자 이름이 쓰여진 교실 벽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인순이 이사장. [사진 위스타트]

해밀학교 후원자 이름이 쓰여진 교실 벽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인순이 이사장. [사진 위스타트]

해밀학교의 ‘혼자가 아닌 함께’ 교육은 전교생이 함께 학교생활 규칙을 정하는 ‘해밀총회’로 이어진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 여는 ‘끝장토론’형 전교생 총회로 정규 교육과정이다. ‘평일 휴대전화 사용 금지’ ‘점심 식사 때 친구 돌아가면서 앉기’도 여기서 아이들이 스스로 정했다.
 
지난 4일 해밀총회 안건은 ‘패션데이’였다. “우리들이 마음껏 멋을 내는 날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화장하고 머리 염색하고 짧은 치마 입어도 허용해 주세요.” 아이들은 이날 총회에 이사장을 ‘모셨다’. 인순이 이사장은 “사실은 소환당한 거다(웃음)”고 했다. 그는 이미 입학식 때 “우리 학교는 화장 안 된다”고 공언했다.
 
아이들의 반격이 들어왔다. “화장하면 학생이 아닌 건가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게 ‘정공법’이지 싶었다. “아니다. 다만 너희들이 이쁘게 자라도록 하고 싶다. 지금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한 시기다.” 인순이 이사장 표현을 빌리면 ‘긴장감 있게 치고 받는 공방’이 더 이어졌다. 결국 이날 해밀총회에선 매달 하루 패션데이를 시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인순이 이사장은 “이왕 패션데이를 하는 건데 아이들한테 옷도 직접 만들어 입어보라고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초청해 피부 보호 화장법 교육도 할 예정”이라며 웃었다. 검정색 티셔츠와 모자 차림을 즐긴다는 곽민석(15)군은 “평소 옷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패션데이가 생겨 좋다. 대학에 진학해 디자인 공부를 해서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농사 수업’도 빼놓을 수 없는 해밀학교의 특색 프로그램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오전 시간을 이용해 전교생이 생활관(기숙사) 옆 300여 평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올해부터 해밀학교가 중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정규학교로 인가받았지만 농사 수업은 계속 유지된다. 10일 첫 감자를 심었다. 3년 전 일본에서 온 장서윤(16)양은 “문화 배경이 다른 여러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활동 중 하나가 농사다. 학교 생활이 재미도 있고 뭔가를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누구보다 인순이 이사장의 농사 수업 예찬이 대단하다. “옥수수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 신기해하고, 홍수가 나면 농작물이 잘 있나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이 농부의 마음을 배웁니다. 배추·무·고추를 심어 직접 김장도 담그고 옥수수를 내다 팔아 몇 푼 되지 않는 돈도 벌어보면서 돈 귀하고 부모 힘드신 거를 깨닫기도 하고요.”
 
농사 수업은 마을 주민이 도와준다. 생활관 옆 안골마을 이장을 지낸 고태상(70)씨가 ‘농부 선생님’이다. 고씨는 “어차피 농사를 짓고 있으니 밭도 갈아주고 씨앗 뿌리는 법도 가르쳐주는 것뿐”이라면서도 “아이들이 인사성도 좋고 시키는대로 열심히 잘 따라온다”고 대견해 했다.
 
농사뿐만이 아니다. 해밀학교는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하는 교육’에 신경을 쓴다. 안만조 교장은 “학교 주변 마을 이장과 노인회장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는 말처럼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매년 마을 주민을 학교로 초청해 여는 ‘다정한 마을 축제’도 그 일환이다. 아이들이 이웃과의 어울림을 몸으로 체험하는 자리다. 마을 주민 배호남(77)씨는 “5년 전 학교가 처음 생겼을 때 아이들이 무리 지어 마을 길을 오갈 땐 염려스럽기도 했다” 며 “지금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학교 취재를 마친 뒤 인순이 이사장과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사춘기 때 내 정체성으로 인해 광풍의 시기를 보냈다. 그런 환경에서 이만큼 성공한 건 기적이라 여겼고 어떻게 나눌까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다문화 아이들 졸업률이 고작 28%란 얘길 듣고 이거다 싶었다. 새삼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어서 두 달을 고민했다. 하지만 아픈 걸 끄집어내 드리는 선물이 이 나라에 가장 예쁘고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다.”
 
입학 후 아이들이 변하는 게 보이나.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기도 하고 마음의 문이 닫혀 있기도 해서 눈을 아래로 깔고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말대꾸를 시작하면 교사들도 ‘이 녀석은 됐다. 안심이다’ 한다. 졸업할 때쯤은 수다쟁이가 된다. 1기 졸업생 5명이 지금 일반고 3학년인데 그중 2명이 전교 3등 안에 든다. 다른 한 명은 전교 부회장을 했다. 처음 6개월은 힘들어하지만 여기서 단단해진 마음의 굳은살로 잘 극복해 내는 것 같다.”
 
어떤 아이들로 키우고 싶나.
“욕심은 많다. 성공한 인물로 키우고 싶은 부모 같은 마음이 왜 없겠나. 그러나 기본 목표는 바람이 불어도 많이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도록 하는 거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으로 잘 살 수 있게 성장했으면 한다. 다문화인 걸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말이다.”
 
대화 말미에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결혼 이주 여성은 한국인 남편과 나이 차가 많이 납니다. 시부모에 이어 남편도 죽고 나면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인구도 돈도 빠져나가는 거죠. 이들을 보듬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마음에 새겨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시기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순이 이사장이 전국 곳곳으로 ‘해밀학교’가 퍼져나가길 소망하는 이유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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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