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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7. 현관 돌침대, 냉장고 전망대…고양이가 알려주는 내 집 활용법

과거 고양이는 쥐나 작은 새를 잡아먹고 사는 야생동물이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온 기간은 길게 봐야 9000년 정도라고 한다. 3만년에 달하는 개와 인간의 인연에 비하면 현저히 짧다. 그러니 고양이가 ‘제멋대로’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을 따르는 습성이 상대적으로 DNA에 덜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도 와주지 않고(때론 돌아보지도 않고), 살갑게 안겨 있다가도 갑자기 화들짝 놀라 도망가버리는 고양이. 수천 년에 걸쳐 길들이기에 실패하면서도 인간은 고양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려동물로서 고양이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일본은 지난해 반려묘 개체 수가 반려견을 추월했다. 한국에서는 “나만 없어 고양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집사와 반려묘의 기묘한 관계를 두고 이런 분석이 나온다. ‘인간이 고양이를 길들인 게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과의 생활에 적응한 것이다’. 인간에게 제압당하긴커녕, 인간의 집을 제멋대로 활용하며 적당히 배부르고 등 따숩게 묘생을 살다가는 요령을 고양이가 스스로 터득했다는 의미일 거다. 
 
같이 살아보면 그 말에 납득이 간다. 나무는 놀랍도록 빠르게 나의 집에 적응했다. 알려준 적도 없는데 가구와 물건의 쓰임새를 나름대로 파악하더니, 되레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걸 그렇게 써?!”라고 물어봤자 내 입만 아프다. 고양이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우리 집 현관은 나무의 돌침대다. 나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차갑고 딱딱한 타일 위에 누워 현관 턱에 고개를 걸치고 나를 관찰하는 걸 즐긴다. 시원한 바닥을 좋아하는구나 싶어 여름엔 대리석 조각도 따로 사줬지만 널찍한 돌침대를 이기지 못했다. 돌침대에 놓인 신발들은 쿠션이다. 나무가 한 번 누웠다 일어나면 사정없이 구겨져서, 아끼는 신발은 꼬박꼬박 신발장에 넣어야 한다.
 
돌침대에 누운 나무. 거실에 있는 누나를 바라보다 잠들곤 한다.

돌침대에 누운 나무. 거실에 있는 누나를 바라보다 잠들곤 한다.

문제는 현관이 외부의 흙과 먼지가 고스란히 모이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제발 깨끗한 곳에 누워 있으면 안 되겠냐고 빌어도 봤지만 소용이 있을 리가…. 나무는 절대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은데 좀 누워 있으면 안 돼?’라는 표정을 하지 않는다. ‘내 침대가 여긴데 어딜 가라는 거냥?’ 식의 당당한 얼굴이다. 집사는 그냥 현관을 물걸레로 자주 닦을 뿐이다.
 
고양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고 해서 캣타워를 2개나 샀지만 냉장고 등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싱크대로 폴짝, 정수기 위로 폴짝. 그리고 한 번 더 뛰어오르면 금세 냉장고 정상이다. 사람 손 닿을 일이 없어 먼지가 곧잘 쌓이는 곳인데, 나무는 여기에 수시로 올라가 배를 대고 누워서 집안을 관망한다. 집사는 환장한다. 거길 어떻게 매번 청소하란 말이냐!
 
하지만 별수 있나. 싱크대 물 소리가 들릴 때마다 후다닥 냉장고에 올라가 설거지하는 나를 내려다보는 나무가 귀여우니까 부지런히 먼지를 닦아줘야 한다. 참고로 나는 청소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무야,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한다.
 
내 가까운 친구들은 대부분 ‘1ㄴㄴㄴㄴㄴㅣㅣ;;’와 같은 메시지를 한 번 이상 받아봤다. PC용 메신저가 켜진 노트북을 급습한 나무의 작품이다. 맨날 현관에 눕길래 시원한 곳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열기를 내뿜는 노트북 자판은 전기장판으로 쓴다. 집에서 작업할 때는 회사에서보다 몇 배는 더 자주 ‘저장’ 버튼을 누르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가 언제 장판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무차별 타이핑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쇠로 된 틀에 천을 씌운 형태의 의류 수납함은 낮잠 전용 해먹(hammock)이다. 옷이 가득 담기지 않았을 때 윗부분이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철 지난 옷을 보관할 때도 수납함을 가득 채우지 않고 공간을 조금 비워둔다.
 
그 외에도 누나의 요가 매트는 발톱으로 뜯을 때 제일 신나는 스크래처이고, 택배 박스는 이빨로 물어뜯는 장난감이다. 누나가 옷을 사고 얻어 오는 큼직한 종이 쇼핑백은 나무의 ‘케렌시아(나만의 공간이자 휴식처)’가 된다. 나무는 나의 집안에서 매일 부지런히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새로운 물건에서 자기만의 쓰임새를 찾아낸 뒤 나에게 적응을 강요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거지 쇼 전망대를 열어 주스를 마시고, 낮잠용 해먹에서 옷을 꺼내 입은 뒤, 나무가 아끼는 쿠션을 신고 출근해서, 전기장판을 두드려 기사를 쓴다. 나무는 지금쯤 돌침대에 누워 있을까? 어서 퇴근하고 닦아주러 가야지!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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