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순미(1964~ )

시아침 4/17
혼자서 길을 간다
희고 차가운 벚꽃의 불길이 따라간다
내가 얼마나 어두운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피었다
저 벚꽃 논다
환한 벚꽃의 어둠
벚꽃의 독설,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내가 얼마나 불온한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진다
‘십리벚꽃길’을 누가 울며 걷는다는 뜻이겠다. 울음 속엔 여미어 감춘 에로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흰 벚꽃 아래 그건 어둡고 더러운 것이라 여겨졌을 수 있겠다. 너무 환해 미운 꽃잎들 보며 더 깊이 울었을 수도 있겠다. 십 리는 짧은 거리가 아니고 벚꽃은 그 길을 오래 식혔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신열에 싸여 있다. 슬픈 몸은 혼자서는 마를 줄 몰라, 꽃잎에 맞으면서도 장님처럼 끝까지 걸어간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