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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남북 교류에만 정신 팔 땐가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성급한 남북 화해 무드가 온 세상에 가득 찬 느낌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의 관심에서도 한반도 선제공격설 따위는 봄눈 녹듯 사라졌다. 이런 축제 분위기가 없다.
 
그러다 퍼뜩 머리를 스치는 물음. “어라, 그럼 북핵 해결은?” 아뿔싸, 한 발짝도 진전된 게 없지 않은가. 지금도 북한 지하 벙커에서는 우라늄 농축기가 쉴 새 없이 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북핵 위기가 끝난 것 같은 집단착시의 늪에 빠져 있다. 핵 문제 해결 뒤에 추진돼야 할 남북 교류가 홍수를 이룬다. 이달 초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평양에 가서 꺼낸 카드만도 여럿이다. 경평축구 부활, 아시안게임 공동입장에 겨레말큰사전 편찬과 만월대 공동발굴이 제안됐다. 경기도 단체장 후보들은 너나없이 제2 개성공단 설치를 약속한다. 김정은도 “가을에 서울에서 공연을 하자”고 적극적이다.
 
평화적 남북 교류는 물론 소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풀린 뒤 해도 전혀 늦지 않다. 앞뒤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오죽하면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원로자문단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 간 비핵화 합의가 이행돼야 남북관계를 풀 수 있다”며 자제 촉구성 발언을 했겠는가.
 
허황된 착각에 빠져 우리는 워싱턴에 감도는 중요한 흐름을 놓치고 있다. 지난 12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에 대한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난 불길한 징조 말이다.
 
국내에선 무시됐지만, 외국 언론은 폼페이오가 북·미 정상회담 타깃을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에만 맞췄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다. 회담의 목적을 묻는 말에 그는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걸 완전히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여기엔 마땅히 포함됐어야 할 동맹국 안보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이를 느꼈는지 코리 가드너 공화당 상원의원은 “북한의 비핵화만이 이번 회담의 유일한 목적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더 직설적인 답이 돌아왔다. “동맹국 한국·일본에 전략적 억지력을 계속 제공할 필요는 있지만 이번 회담의 목적은 미국에 대한 위협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미 국익을 위해선 동맹국 안보도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 같은 자국 중심주의적 안보관은 트럼프 외교의 핵심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북한 핵무기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은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하지만 동맹국의 안전보장은 마지노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런 터라 17일 미국을 찾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에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제거하는 건 일본에 아무 의미도 없으니 중·단거리 미사일도 없애 달라”고 요청할 거라고 한다.
 
그럼 우린 어떤가. 이런 위태로운 발언이 쏟아지는데도 별 움직임이 없다. “핵무기는 남한이 아닌 미국을 향한 것”이란 북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다. 도리어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국 걱정을 해준다. 이들의 예상대로라면 북·미 회담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핵을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다. 한·일이 북핵을 이고 살든 말든 트럼프 행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을 거란 얘기다. 한국의 안보가 희생양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의 평화 공세가 시간 벌기용인지, 아니면 진정한 평화공존을 향한 결단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북핵을 어떻게 없앨지 온 지혜를 짜내야 할 판에 정부가 남북 교류에만 골몰해선 안 된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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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