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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백의 천사 아닌 백일 전사"…김현아 씨의 또다른 편지

3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편지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긴 김현아 간호사. [중앙포토]

3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편지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긴 김현아 간호사. [중앙포토]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극에 달했던 지난 2015년 6월 중환자실 환자들과 함께 격리됐던 김현아(44) 동탄성심병원 간호사는 이런 제목의 편지를 썼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지키는 간호사의 모습이 중앙일보를 통해 알려지자 국민은 감동했고, 의료인에게 격려가 쏟아졌다.  
 
3년 뒤 김씨는 새로운 편지를 썼다. 이달 초 펴낸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간호사를 존중하고 용기를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간호사가 힘들면 환자에게 소홀해진다. 간호사가 살아야 환자도 산다. 간호사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김현아 간호사가 쓴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사진 쌤앤파커스]

김현아 간호사가 쓴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사진 쌤앤파커스]

최근 이대목동병원 수간호사가 신생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고,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태움(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교육하며 재가 되도록 괴롭힌다는 의미)’ 문화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 한편에서는 간호사가 환자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속출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어서 그것과 상관없이 시작했지만, 발간 전에 사건이 터지면서 집필 동기가 더 분명해졌다고 한다.
'메르스 편지' 김현아 간호사
집필 동기는 ‘공감대’라고 한다. 
"메르스 편지가 나갔을 때도 오빠가 ‘네가 그런 일 하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받았어요.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더 모르고 있습니다.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간호사의 삶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메르스 때도 느꼈지만 공감대가 형성돼야 세상이 바뀝니다."
 
김씨는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일의 전사’에 비유했다. 주사 놓고, 환자 옮기고, 비품 챙기고…. 매일 100가지 일을 처리하는 고된 직업이라는 의미다. 그는 “천사는 사람이 아니지만 간호사는 사람이다. 일하는 데 한계가 있고 슬픔과 좌절을 느낀다”면서 “겉으로 보면 주사나 잘 놓으면 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7년 전쯤 응급 수술 환자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도 대체 인력이 없어 3개월간 복대와 진통제로 참아야 했다”고 했다.
김현아 간호사의 편지를 실은 본지 2015년 6월 12일자 1면.

김현아 간호사의 편지를 실은 본지 2015년 6월 12일자 1면.

김씨는 지난해 7월 21년간 간호사 생활을 접었다. 평소 숨진 중환자를 양치시키고 면도하는 것도 허투루 하지 않던 그였다. 그는 “한 환자 보호자가 후배 간호사 멱살을 잡아끌고 나갔지만 아무도 간호사 편에 서지 않은 걸 보고 결심했다. 끊이지 않는 간호사 자살ㆍ과로사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움’ 문화에 대해선 “단순히 나쁜 간호사들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규 간호사가 잘못하면 환자 목숨이 왔다 갔다 해서 고도의 훈련과 기술이 필요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업무도 더 맡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고 말한다.  
한 대학병원 노조가 제작해서 간호사들에게 배포한 태움 방지 배지. [중앙포토]

한 대학병원 노조가 제작해서 간호사들에게 배포한 태움 방지 배지. [중앙포토]

작가를 꿈꿨던 김씨는 3개월 만에 책을 완성했다. 그는 “병원 안에 있을 때 둔감했던 문제들이 밖에 나오니 훨씬 잘 보였다”고 했다. 책이 나오자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우리 이야기가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간호사들의 문자를 많이 받았다.
 
주사기 대신 펜을 들었지만 김씨의 꿈은 여전히 환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사람을 더 잘 살리고 간호사들도 돕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간호학과 교수나 공무원도 해보고 싶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김현아 간호사가 전하고 싶은 말
간호사는 환자를 지키는 사람이다. 환자를 지키기 위해 저승사자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는 삶의 변덕을 피해갈 수 없다. 이것이 간호사의 존재와 일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이유이며, 그들의 용기를 꺾는 일을 더더욱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호사가 살아야 비로소 환자도 살 것이므로.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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